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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교수들이 말하는 휴진 선언과 철회 이유
"더이상의 휴진은 의사집단 고립·악마화 심화…의료정상화, 국민이 동의해야"
"상황 대충 봉합해 전공의 노예로 복귀시키려는 것 아냐…수련 환경 개선할 것"
"진료와 투쟁 병행…의료정책에 전문가 의견 반영되도록 정책 참여·감시하겠다"


의대 증원 반대하는 서울대병원 의료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예약을 조정하려고 차트를 보며 환자 한 분 한 분께 전화하는데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분들을 두고 무기한 휴진이 불가능하다는 건 사실 교수들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을 겁니다."

"전공의들이 돌아와서 당직을 서주고 노예처럼 일해주길 바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언젠가 병원에 올 친구들이 있다면 제대로 수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고, 생각이 같다면 함께 하자는 거예요."

17일 시작한 서울대학교 병원 교수들의 '무기한 휴진'이 닷새째인 21일 '철회'로 끝이 났다.

그들은 어떤 생각에서 '집단 휴진'이라는 강수를 쓰고, 또 철회한 것일까? 22일 휴진에 참여한 서울대 병원 교수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의대 교수들 중 처음으로 무기한 휴진을 선언하고 이를 닷새 만에 철회한 것을 두고 이들은 환자와 전공의 양쪽에서 비판을 받았다.

환자단체들은 교수들의 무기한 휴진 움직임에 반발해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 촉구 환자 총궐기대회'를 열 것이라고 선언했다.

전공의들에게서는 "그럴 줄 알았다", "교수들이 우리 편을 들어 싸워 주지 않았다"는 싸늘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문 닫은 진료과 앞 지나는 환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오승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환자들에게 폭력적으로 들렸을 수 있었던 '무기한' 휴진에 대해 정말 죄송하다"며 "내부에서도 모두 사실상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의료 정책, 대정부 투쟁, 이런 것들로 고민하다가 휴진이 결정되고 직접 예약 변경을 하는데 한 분 한 분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때부턴 그분들(환자들)의 '실제 문제'가 됐다"며 "다들 '진료를 언제까지 미룰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경 가정의학과 교수도 "예약환자 중에 췌장암이 의심돼 영상 촬영을 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분이 계셨다"며 "이분이 어떤 심정으로 다음 진료를 기다리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항암치료 등을 하는 혈액종양내과 교수들의 경우엔 대부분 '1주일 이상 미루기 어렵다'고 난감해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무기한 휴진을 선언하게 된 배경에 대해선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한다는 심정"이었다며 "전공의 면허 정지가 임박하자 '휴진선언 빼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오 교수는 "의료 현장에서 바라본 의대 증원과 의료 정책은 너무나 터무니없었지만, 지난 4개월간 정부는 어떤 노력에도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며 "휴진을 지속해야 한다고 답한 교수님들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고 토로했다.

'전공의 부재'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교수들은 일부 전공의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상황을 대충 봉합해 전공의들이 다시 교수 대신 당직을 서는 노예로 복귀하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하은진 신경외과 교수는 "'참의사 코스프레(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는 의사를 비꼬는 말)'를 한다고 생각한 교수님들께 화낸 적도 있다"며 "터지기 직전이었던 의료 체계에 대한 문제점을 알리려 나간 전공의들이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그러나 지난 20여년을 돌아봤을 때 휴진이라는 행동은 결과적으로 의사들을 사회로부터 고립시켰고, 정치권에서 의사를 악마화했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그래도 싸'라는 반응이 나오게 했다"며 "휴진 철회에 동의하게 된 건 결국 의료 정상화 정책에 동의해줘야 하는 국민과 환자를 두고 정부랑만 싸우는 게 목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 교수는 "전공의들에게 '들어오라, 말아라'를 말하는 게 아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병원 내 모자란 시스템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앞으로 시스템을 고치기 위한 공론장을 만들고 정책 수립에 참여할 예정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전공의들은 함께해 줬으면 좋겠지만, 안 하겠다고 해도 개인의 선택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 교수도 "그저 누군가 돌아온다고 하면 수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고, 의료 체계가 아무리 불합리하다고 해도 완전히 무너뜨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늘 하루 진료 대신 심포지엄 참석하는 의대 교수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의료 정책 관련 공론장을 만들고 여기에 전문가로서 참여해 정책 감시와 비판을 이어 나가며 '진료와 투쟁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의사단체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환자단체·병원 노조 등이 참여하는 공청회 등을 연 바 있다.

이 같은 행보에 의료계 내부의 강경파들은 반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오승원 교수는 "의사만 의료 정책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며 "유쾌하지 않더라도 의료에 얽힌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올라와서 얘기할 수 있는 공론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교수들은 특히 지금까지의 의료 정책에 현장과 전문가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의료계의 주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가인 의사로서 정책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곽재건 소아흉부외과 교수는 "의료정책 회의 등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 올 때마다 수술 일정 등으로 바빠 '위임장'을 냈었다"며 "소위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수십 년간 중환자실·수술실에 갇혀 정책에 관심 갖고 참여하지 못하는 동안 의료 정책이 이렇게 꼬인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배우경 교수는 "정부의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에서 추진하는 정책 중에는 좋은 제목을 가진 것들도 많다"며 20일 의개특위가 발표한 '수급추계 전문위·의사결정 기구'를 예로 들었다.

의개특위는 의사 인력 수급 추계의 과학적 전문성과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고자 전문가 중심의 '수급 추계 전문위원회'와 정책 의사결정 기구를 각각 꾸려 운영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배 교수는 "다만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될지 감시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제언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교수들은 의개특위의 정책을 감시하고, 제대로 된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참견하고 반발하고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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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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