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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2016년 10월 미국에서 열린 ‘사막 여행 축제’(데저트 트립 페스티벌)에서 폴 매카트니가 공연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6월18일, 1942년생 폴 매카트니는 또 한번의 생일을 맞이했다. 몇년 전에도 새로운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지난주에도 미공개 음원을 모은 ‘원 핸드 클래핑’을 공개한 그는 아직도 무대에 오르는 현역 가수다. 82살인 그보다 더 나이 많은 현역 가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했던 가수는 본 적 없다. 당장 2022년만 해도 세계 최대 록 페스티벌인 ‘글래스턴베리’에 참가해 입이 떡 벌어지는 공연을 펼쳤다. 무려 3시간 동안 36곡을 열창! 비틀스가 데뷔한 해가 1962년이니 60년 넘게 곡을 쓰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투어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진부한 격언에 따르자면, 폴 매카트니는 팝 음악 역사상 가장 강한 뮤지션이 틀림없다.

비틀스를 좋아하는 정도도 단계가 있다. 모든 앨범을 소장하고 모든 노래를 다 아는 수준을 최종 단계라고 한다면, 입문 첫 단계는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의 목소리를 구별하는 것이다.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과 드러머 링고 스타가 부른 몇 곡을 제외하고 비틀스 노래 대부분은 존과 폴이 따로 또 같이 만들고 불렀다. 둘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난 후기에는 목소리가 쉽게 구분되지만 단순히 내지르는 창법을 구사했던 초창기에는 비슷하게 들리기도 한다. 일단 둘의 목소리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되면 더 좋아하는 쪽이 생긴다. 내 경우엔 존이었다. 물론 폴의 노래를 싫어할 리가. 냉면 애호가 대부분이 물과 비빔 모두를 좋아하면서도 약간의 선호도 차이가 있는 정도랄까.

내가 만든 ‘존과 폴 테스트’를 소개한다. 초창기 앨범 ‘러버 솔’에 폴이 부른 ‘미셸’과 존이 부른 ‘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둘 다 2분대의 짧은 길이에 최소한의 악기를 편성한 소품(이면서 명곡)이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듣는 사람의 취향을 가늠하기 제격이다. 한번 들어보시라. 어떤 노래가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드는지?

비틀스에 대한 지분은 존과 폴 어느 쪽이 더 큰지 비교하기 어렵지만, 1970년에 비틀스가 해체된 후 솔로 활동에 대한 내 평가는 압도적으로 존 레넌 쪽으로 기운다. 충격적인 암살 사건이 영향을 줬는지도 모르겠다. 비극적인 최후만큼 영웅 서사를 더 웅장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없으니까. 어쨌든 내 취향은 바뀌지 않고 세월이 흐를수록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 그러다가 몇달 전 폴 매카트니의 전속 사진사 김명중(MJ KIM) 작가를 만났다. 폴 매카트니의 전속 사진사가 한국인이라는 화제성 때문에 국내 언론에서도 자주 다뤄졌고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적도 있는 분인데, 다른 일 때문에 만났다가 정작 일 얘기는 젖혀두고 비틀스와 폴 매카트니를 안주 삼아 밤늦게까지 신나게 떠들며 술잔을 기울였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말년의 폴 매카트니를 지켜본 그에게 전해 들은 따뜻한 일화들 때문이었을까? 다음날부터 폴 매카트니의 솔로 활동을 되짚어보며 충격에 휩싸였다. 내 짐작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결과물 때문이었다. 비틀스 해체 이후 폴 매카트니는 26장의 앨범을 발표했는데 이 중 8장이 빌보드 앨범차트 1위, 9곡이 싱글차트 1위를 차지했다. 전세계를 누비며 숱한 공연을 다녔고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도 무려 10장. 비틀스 경력을 빼고도 명예의 전당에 넉넉히 입성할 정도다. 존 레넌의 노래처럼 마음 깊은 곳으로 단번에 밀고 들어오는 느낌은 적지만 매끈하게 노래를 완성해내는 작곡 솜씨는 ‘천의무봉’(바느질 자국 하나 없는 선녀의 옷처럼 완벽하다)이라는 고색창연한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을 함께 만든 존과 폴은 사사건건 반목하고 갈등을 빚다가 결국 그룹을 해체하고 말았다. 그 뒤로도 계속 사이가 안 좋았던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는 연인처럼 그들은 비틀스 해체 후에도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했고, 존이 살해당했을 때 폴은 하루 종일 펑펑 울고 추모곡에 남은 슬픔과 그리움을 담았다. 그 노래 ‘히어 투데이’의 가사를 보자.

‘내가 널 잘 안다고 말하면 넌 뭐라고 할까?/ 지금 네가 여기 살아 있다면 말이야 /아마 웃으며 이러겠지/ 우린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하지만 난 여전히 좋았던 그때를 기억해’

요즘 새로운 술친구가 된 김명중 작가에게 또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82살 폴 매카트니가 외국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와우, 늦은 생일 축하 인사와 함께 경의를 표합니다.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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