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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철인의 탄생 ‘하프 아이언맨’ 코스

113.1㎞, 동호회 가입 뒤 첫 대회
자전거 타다 실수, 달리기 중 콰당
7시간22초…같은 연령대 중 꼴찌
지난 16일 경남 고성에서 열린 철인3종 대회에 참가한 정인선 기자가 사이클을 타는 모습. 최상혁 제공

지난 16일 경남 고성에서 열린 ‘2024 아이언맨 70.3 고성’ 대회는 내 생애 두번째 철인3종 경기였다. ‘하프 아이언맨’(수영 1.9㎞, 자전거 90.1㎞, 달리기 21.1㎞) 코스로 지난해 9월 강원도 삼척에서 처음 참가한 올림픽 코스(수영 1.5㎞, 자전거 40㎞, 달리기 10㎞)보다 두배의 거리였다.(70.3은 세 코스를 합산한 113.1㎞를 마일로 환산한 숫자다.)

첫 대회에서 나름 만족스러운 기록인 3시간13분에 결승선을 통과한 나는 막연히 6시간∼6시간30분을 목표로 잡았다. 여러 선배 철인들은 “거리가 두 배로 늘었다고 해서 기록도 딱 두 배만 늘 거라고 생각하다간 큰코다친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올림픽 코스와 하프 코스는 완전히 다른 종목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였다.

선배가 밀어주니 모터 단 듯

정인선 기자가 ‘2024 아이언맨 70.3 고성’ 대회에서 수영 경기를 마친 뒤 바꿈터로 달려가고 있다. 신현두 제공

걱정을 없애는 방법은 훈련과 준비뿐이었다. 최근 가입한 ‘네오 트라이애슬론 팀’의 단체 훈련을 틈틈이 따라나섰다. 대회를 열흘 앞둔 지난 6일 팀 훈련에 처음 참석했다. 새벽 5시, 훈련 장소인 서울 잠실한강공원에 도착하자 주차장이 이미 바글바글했다. 잠실 수중보가 서울에서 오픈워터(야외) 수영 훈련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인 데다 주차장에 세워 둔 차량을 ‘바꿈터’(종목간 전환하는 장소) 삼아 3종 훈련을 할 수 있어, 본격적인 경기 시즌을 맞은 철인들이 모였다.

서둘러 웻수트를 입고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준비운동을 한 뒤 강물에 몸을 적셨다. 물 속 시야가 생각보다 좋지 않았지만 주변에 네오 팀원들뿐 아니라 다른 동호회에서 나온 철인들이 많아 안심됐다.

수영 훈련 뒤 곧바로 차로 이동해 수건으로 간단히 물기를 닦고 자전거에 올랐다. 10여명의 팀원이 일렬로 ‘팩’(무리)을 이뤄 잠실에서 경기 양평 벗고개까지 왕복 80㎞가량을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혼자서만 자전거를 탔던 내게 첫 팩 라이딩은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선두가 앞에서 속도를 내면, 그 뒤를 다른 팀원들이 1m도 채 안 되는 간격으로 줄줄이 따라붙어 주행했다. 선두가 온몸으로 바람을 막아주는 덕분에 뒤에 오는 이들은 저항을 비교적 덜 받으며 힘을 아껴 쓸 수 있는 ‘드래프팅’(뒤따르기) 주행 기술이었다. 평균 시속 20㎞ 안팎의 비교적 느린 주행에만 익숙하던 내겐 시속 30㎞ 이상으로 내달리는 무리의 꽁무니를 쫓아가기가 힘에 부쳤다. 내가 좀처럼 속도를 올리지 못하자, 정숙 선배가 내 허리 뒤쪽에 손을 턱 얹더니 앞으로 쭉 밀었다. 나는 모터를 단 듯 속력이 붙었다. 말로만 듣던 ‘밀바’(‘밀다’와 ‘바이크’의 합성어)였다.

잠실로 돌아가는 길에는 형구 선배가 정숙 선배와 배턴 터치를 했다. 형구 선배는 “뒤에서 팩에 바짝 따라붙기도 해보고, 다른 사람들을 앞에서 직접 끌어도 봐야 실력이 금방 는다”며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로테이션’(순환) 훈련을 시켰다. 주행을 마치고 속도계를 확인하자 약 27㎞의 평균 시속이 찍혀 있었다. 내겐 전에 본 적 없는 놀라운 숫자였다. 라이딩을 마치고는 자전거를 다시 차에 싣고 5㎞를 천천히 달리며 마지막 근전환 훈련을 했다. 이 모든 훈련을 마치고 귀가했는데도 낮 12시밖에 되지 않았다.



수영 기록은 좋았지만…

정인선 기자가 ‘2024 아이언맨 70.3 고성’ 대회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신현두 제공

대회 전날인 15일, 네오 팀원들과 함께 전세버스를 타고 경남 고성으로 향했다. 바꿈터에 자전거를 입고한 뒤 팀원들과 사전 수영 훈련을 했다. 다행히 물살이 생각보다 세지 않았고, 비교적 높은 수온에 해파리도 거의 없어 수영 훈련을 잘 마칠 수 있었다. “경기 시작 3시간 전에 식사를 미리 해야 한다”는 은남 선배의 조언대로, 새벽 4시에 일어나 빵과 구운 계란, 사과 등 평소에 즐겨 먹던 구성대로 아침 식사를 했다. 대회장에서 사전 수영 훈련을 한 차례 더 했다. 전날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팔을 저으며 심박수를 올렸다.

혼자서 긴장을 풀어야 했던 첫 대회 때와 달리 팀원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니 긴장이 덜 됐다. 전날보다 물살이 잔잔했다. 오픈워터 훈련 때보다 빠른 100m 당 2분4초 속도로 헤엄쳤다. 30∼34살 여성 13명 중 3번째, 전체 여성 114명 중 12번째로 빠른 39분25초에 1.9㎞ 수영을 마쳤다. 이제 세 종목 가운데 가장 훈련량이 부족한 사이클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이클 대회와 달리 철인3종 대회에서는 ‘드래프팅’을 엄격하게 금지해,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90㎞를 달려야 했다. 속도를 무리해서 내기보다, 분당 평균 회전수(RPM)를 80∼100 사이로 유지하는 걸 목표로 꾸준히 페달을 밟았다. 수영에서 제쳤던 다른 선수들이 빠르게 내 앞을 지나쳐 갔다. 겨울 동안의 평롤러 훈련을 했지만 안장 위에서 한 손을 놓고 물을 마시거나 간식을 먹는 것이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이러다 탈수가 오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핸들에서 한 손을 떼 물병으로 가져갔는데 아차차, 물병의 뚜껑을 열어놓지 않은 상태였다. 한 손도 겨우 놓는데 양손을 놓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20∼30㎞마다 마련된 보급소에서 자전거를 멈춰 세워 수분을 보급하느라 시간이 더욱 지체됐다. 3시간30분 안에 자전거 주행을 마치는 걸 목표로 잡았지만, 3시간43분이 걸려서야 바꿈터에 도착했다. 같은 연령대 여성 선수 중 꼴찌였다.

자전거 경기 중엔 보급을 못해 문제였다면, 달리기에선 보급을 너무 많이 해 문제였다. 정오가 넘어가자 햇볕이 강했다. 1∼2㎞에 한 번 보급소를 마주칠 때마다 멈춰 서 물과 얼음, 수박, 바나나 등을 흡입했다. 남들보다 땀을 덜 흘리는 탓에, 중간에 화장실도 한 번 들러야 했다. 주머니에서 파워젤을 꺼내 먹으려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해 도로 표지판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손바닥이 까져 의무차에 멈춰 서 응급처치를 받기까지 했다.

겨우내 1㎞당 5분대 속도로 뛰는 데 익숙해지도록 나름의 훈련을 했지만, 6분을 넘어 7분대로 속도가 떨어졌다. 7㎞쯤 지나자 왼쪽 발바닥에 통증이 느껴졌다. 네오 팀 동료 매튜가 자신의 첫 하프 아이언맨 대회 참가 경험을 떠올리며 한 말을 계속 곱씹었다. “특히 달리기에서 진짜 힘들었어요. 근데 그때 참아야 해요.” 두달 전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기록한 1시간58분보다 30분 이상 늦은 2시간29분에 21㎞ 달리기를 마쳤다. 같은 연령대 여성 가운데 뒤에서 두 번째였다.

결승선을 통과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7시간22초. 30∼34살 여성 13명 중 꼴찌, 전체 여성 114명 중 81등, 전체 참가자 1107명 중 850등이었다. 대회 전에는 ‘완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같은 연령대 여성 중 꼴찌를 하자 창피한 마음이 올라왔다. 5시간35분37초 기록으로 65∼69살 남성 가운데 1위를 한 네오 팀의 ‘베테랑’ 백운 선배가 격려했다. “오늘보다 더 못할 수는 없으니 위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정인선 기자 [email protected]

한겨레신문 스포츠팀 기자. 일하지 않는 시간엔 요가와 달리기, 수영, 사이클, 케틀벨 등 각종 운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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