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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아파트단지 입주자대표회의서
단지 국공립어린이집 유지 여부 투표 추진
학부모들 “임대료 받아도 월 관리비 500원 수준 효과 불과”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국공립어린이집. 어린이집 홈페이지 캡처

서울 한 아파트 단지 내 국공립어린이집이 존폐 갈림길에 놓였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가 임대료 수익이 안 나는 국공립어린이집을 닫고 민간어린이집으로 변경하기 위한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신뢰·선호도가 높은 국공립어린이집이 폐원되는 건 이 지역에서 전례 없는 일인 가운데 학부모들의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일 국민일보 취재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입대의는 단지 내 국공립어린이집 유지 여부를 두고 지난 15일부터 입주민 대상 찬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해당 아파트 단지는 2010년부터 15년째 강동구청과 계약을 맺고 국공립어린이집을 유치해 왔다.

“임대료 못 받는 국공립어린이집 필요 없어져” 투표 올린 아파트단지
아파트 입대의는 국공립어린이집으로 인해 경제적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국공립어린이집은 무상임차가 원칙인 탓에 임대료 수익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입대의는 아파트에 붙인 ‘국공립어린이집 운영에 관한 입주민 의견 청취 안내’ 안내문에서 “개원 초기부터 국공립어린이집으로 운영되어 어린이집에서 임대료 수익이 전혀 발생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5년 된 아파트 단지인데, 입주민 변동 적어 입주 초기에 비해 (어린이집) 이용자가 많이 줄어 이용하는 원생 대부분이 인근 단지 주민이다”고 덧붙였다.

입주 초기에는 단지 내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입주민이 많았지만, 현재는 성장해 단지 내 이용이 상대적으로 줄어 효용가치가 떨어졌다는 주장이다.

“줄 서는 국공립, 월 500원 이득보자고 없애나” 비상걸린 학부모
어린 자녀를 둔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국공립어린이집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운영돼 상대적으로 투명하고 양질의 보육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보육 시설이다. 그런데 이를 더 늘리지는 못할 망정 잘 운영되는 곳을 닫자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해당 어린이집 입소 경쟁은 치열하다. 한 학부모는 이 어린이집 입소 대기가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도 이어진다고 전했다. 재학 중인 원생도 정원 60명 중 54명으로 인근 민간어린이집에 비해서는 월등히 많은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운영 주체 변경시 당장 보육공백 발생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두 아이를 둔 입주민 김모(34)씨는 “국공립어린이집은 국가 지원금을 받다보니 아이들이 먹는 양도 넉넉하게 줄 수 있고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교구도 신경써서 마련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맞벌이라 곧 둘째 아이도 이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했는데 당장 국공립어린이집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하니 정말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사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김씨는 “아파트 전제 단지를 통틀어서 국공립어린이집이 두 곳밖에 없다”며 “나머지 한 곳도 입소 대기가 70명이 넘어가던데 거주민 우선 입소를 위해 거기로 이사를 해야하나 고려 중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맞벌이 부부인 입주민 전모(37)씨 역시 “당장에 아이가 갈 곳이 없어진다”며 “다른 어린이집에 가려고 해도 대기를 걸어 기다려야하고 순서가 되어 입소한다 해도 아이들은 적응기간을 다시 거쳐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이다”고 말했다.

민간어린이집으로 변경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가 불분명하다는 것도 문제다. 임대 수익금으로 관리비를 차감한다고 했을 때 각 세대가 얻을 이득은 500원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입주민 김씨는 “(입대의가) 민간어린이집을 운영하면 이로 발생하는 임대 수익금은 관리비 차감용도로 사용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있다”면서 “어린이집 월 임대료를 바탕으로 계산해보면 단지 전체 841세대가 매달 500~600원 정도 관리비를 차감받는 데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대단지 아파트 국공립어린이집 의무됐지만… 재계약 강제 못해
강동구청 측도 자치구 내에서 처음으로 국공립어린이집이 폐원될 위기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2010년에 들어선 이 단지는 당시 대규모 공공주택에 대한 규정에 따라 단지 내 어린이집을 설치했는데, 입주민 투표 결과 국공립어린이집을 선택했다고 한다.

문제는 국공립어린이집이 지자체와 아파트 입대의 간에 장기임차 계약을 통해 운영되는 시스템인 탓에 재계약 시기를 맞아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것을 달리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구청에 따르면 처음 10년 계약 기간이 끝난 뒤 2019년 5년 기한으로 재계약해 올해 말 만기가 돌아온다. 2019년 재계약 당시 지자체는 입대의 측에 아파트 시설 유지 보수 지원 명목으로 우회적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9월 개정된 현행 영유아보육법은 500세대 이상 단지에 국공립어린이집 설치 의무를 규정했지만, 이 단지에 이를 적용할 수는 없다. 국공립어린이집 설치가 의무화되면서 단지에 무상 임대 대가로 다른 보상금을 지급할 근거도 사라졌다.

구청 측은 투표 결과가 나오는 오는 29일까지 입대의 측과 최대한 협의한다는 입장이지만, 결과를 낙관하긴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청 관계자는 “구 내에서 국공립어린이집이 폐원한 사례는 아직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 “구에서 국공립어린이집 유치를 강제할 순 없지만 최대한 국공립어린이집을 유치할 수 있게 입대의 측과 협의 중이다. 현재 다니는 아이들이 내년 2월 졸업식까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읍소하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국공립어린이집 폐지가 미래에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일이라며 대책을 호소했다.

입주민 박모(38)씨는 “저출생 고령화 시대에 모든 단지들이 겪게 될 일 같다”면서 “국공립어린이집을 두고 단순히 임대료 수익에 대해서만 논의가 되면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씨 역시 “저출생에 아이를 기를 수 있게 지원하자는 상황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게 아이러니하다”며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많아져서 부모가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게 중요한데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걸 보면 둘째 낳는 건 상상도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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