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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경찰서 김용만 경위. 사진 서초경찰서 제공
20일 오전 8시 서울 서초경찰서 구내식당에 검은색 야구모자를 쓴 한 남성이 들어섰다. 아침 식사를 하는 다른 직원들과는 달리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는 익숙한 듯 식판을 집어 밥과 반찬을 담은 뒤 자리를 잡았다. 경찰서에서 승용차로 5분 거리인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일대에서 2년째 노숙 생활을 하는 박경수(가명·55)씨다.

그의 맞은편엔 27년차 경찰인 서초서 강력계 형사 김용만(54) 경위가 앉았다. 김 경위는 셀프 코너에서 직접 만든 계란부침을 박씨의 짜장밥 위에 얹어줬다. 두 사람은 1980년대 인기 그룹가수인 ‘배따라기’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본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두 사람은 지난 2월 경찰과 피의자로 처음 만났다. 김 경위는 분실 신고된 신용카드 사용 사건을 수사하다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박씨를 붙잡았다. 박씨는 5000원, 1만원 등 소액을 음식을 사는 데 썼다. 조사 과정에서 박씨가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김 경위는 “이런 짓 하지 말고 경찰서로 아침밥을 먹으러 오라”고 했다.

이튿날 아침 8시 박씨가 경찰서로 찾아오면서 두 사람은 아침밥 친구가 됐다. 1인당 5000원인 식사 비용은 김 경위가 낸다. 김 경위는 박씨가 경찰서까지 버스를 타고 오거나 쉬는 날 끼니를 챙길 수 있도록 종종 교통카드에 돈을 충전해준다. 낯선 인물과 매일 아침밥을 먹는 김 경위를 수상하게 여기던 동료들 사이에선 이내 선행이 입소문을 탔다.
박경수(가명)씨가 고속터미널에서 주워 김용만 경위에게 건넨 분실 카드들(위). 20일 박씨가 주워온 카드와 주운 일시 등이 적혀 있는 메모. 이보람 기자
박씨도 김 경위 호의에 화답했다. 그는 터미널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흘린 신용카드나 지갑 등을 주워 경찰서에 갖다 줬다. 박씨가 4개월 동안 주워 온 신용카드는 90장에 이른다. 박씨는 이날 아침에도 카드를 주운 일시와 장소 등이 적힌 메모와 함께 카드 한 장을 김 경위에게 건넸다. 터미널 일대 노숙인들의 건강 상태 등 근황을 알려주기도 한다.

박씨는 “김 반장님은 죽으려던 저를 다시 살린 사람”이라고 말했다.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던 시절 김 경위를 만나 다시 한번 삶의 의지를 다지게 됐다는 것이다. 점유이탈물횡령 등 혐의로 벌금형 처벌을 받은 박씨는 최근 다시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요즘엔 다시 사회에서 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노숙인 자립센터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라도 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서울 서초경찰서 형사인 김용만 경위 사무실에 붙어 있는 화이트보드. 서초구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노숙인들의 사진과 특징 등이 적혀 있다. 이보람 기자

김 경위는 박씨와 연을 맺으면서 범죄 노출될 가능성이 큰 노숙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사무실엔 터미널에 살며 범죄를 저질렀던 노숙인들 사진과 정보가 빼곡히 적힌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다. 김 경위는 “더 힘든 일을 하는 경찰이 많은데 이런 일로 주목받게 돼 민망하다”며 “이제는 박씨가 친구 같다. 매일 아침 환하게 웃으면서 경찰서에 들어서는 박씨 생각에 지각도 못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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