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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박미향의 요즘 어디 가 경북 울진

111㎞ 해안선 따라 펼쳐진 풍광
차박 캠퍼 ‘나만 알고 싶은 성지’
프리다이빙으로 바닷속 유영
왕피천 품은 산촌마을 체험도
경북 울진군 월송정 일대에는 ‘맨발 걷기’(어싱)하기 좋은 길이 있다. 오는 12월에 5㎞ 구간 전체가 완성될 예정이다. 박미향 기자

“바다를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산이나 숲에 자주 가십니까?”

흔히 여행 취향을 물을 때 하는 소리다. 언론인이자 경제학자였던 정운영(1944~2005) 선생은 오래전 대학 강의에서 ‘물건 두 개가 있는데, 둘 다 마음에 든다면 무엇을 골라야 하냐’란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진 적이 있다. 그는 웃으며 엉뚱한 답을 했다. “두 개 다 가지면 만족감이 높아지겠지.” 농담 삼아 한 말이지만, 그 말에 기대어 여행지를 고른다면 어디가 좋을까. 한반도 남쪽 동해안에 있는 경북 울진은 바다와 숲 모두를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읍 2개, 면 3개로 구성된 소박한 동네 울진은 연평균 기온이 12.8도로 쾌적한 환경을 자랑한다. 111.8㎞나 되는 해안선과 바닷바람이 스쳐 가는 솔숲은 각기 다른 매력으로 여행객을 유혹한다. 교통이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오히려 그런 게 장점이다. 사람의 발길이 덜 닿는 바람에 자연은 제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었다. ‘불편함의 미학’이 촘촘히 박힌 울진에서 여름을 즐기는 3가지 방법이 있다.

수영할 줄 몰라도 바닷속 구경

무호흡 잠수가 특징인 프리다이빙은 마치 해양생물이 된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울진해양레포츠센터 제공

“준비 호흡하고, 숨 참기도 하고, (풀에서) 올라와서는 회복 호흡도 해야 해요.” 지난 6일 울진군 매화면에 있는 울진해양레포츠센터에 프리다이빙(스킨다이빙·자유잠수) 초보자 3명이 모였다. 강사 이시인(30)씨는 10년 경력의 해양레포츠 전문가다. 울진해양레포츠센터는 2022년께 설립된 한국프리다이빙협회가 울진군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해양레저 교육기관이다. 프리다이빙뿐 아니라 스쿠버다이빙 등도 교육한다. 최근에는 해녀·해남학교도 열었다. 무호흡잠수가 특징인 프리다이빙은 공기통 없이 숨을 참으며 수중에서 활동하는 해양레포츠다. 아이다(AIDA)·시마스(CMAS) 등의 국제적인 잠수협회가 매년 대회를 열 정도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마치 인어처럼 아름답게 유영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도 있다. 아가미가 없는 인간이 바다의 은밀하고 경이로운 속살을 탐험하는 데 이보다 좋은 수중레저는 없다. 지구의 70%는 바다다. 그 바다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에 해양레포츠가 있다.

“3초 들이마시고 6초 내뱉어야 몸이 충분히 이완됩니다.” 강사가 시범을 보이는 ‘1 대 2 호흡법’에 초보자들은 귀를 쫑긋 세운다. 하지만 서울에서 온 최아무개씨는 내심 걱정이 앞섰다. 수영을 못하는 그는 그저 울진 바다를 다르게 경험해보고 싶었다. “프리다이빙은 수영을 할 줄 몰라도 충분히 바다에서 활동할 수 있는 레포츠입니다.” 강사의 말에 겨우 안도한 그는 좌우로 팔을 돌리며 준비운동에 매달렸다. 프리다이빙은 충분히 교육받으면 15살 이상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수업은 더 풍성해졌다. 전문용어도 등장했다. “‘이퀄라이징’을 잘 해야 해요. 물속에서 귀가 먹먹해지면 큰일이죠.” 물속 압력은 지상과 다르다. 수압에 귀 안쪽의 압력을 맞추는 압력 평형 기술인 ‘이퀄라이징’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자칫 물속에서 패닉 상태가 될 수 있다. 낯선 ‘이퀄라이징’을 섭렵한 초보자들은 풀(pool)에서 난간을 잡고 ‘발차기’를 시작했다. 2500t 물이 들어갈 정도 규모의 풀에선 첨벙첨벙하는 물소리가 퍼졌다. 드디어 깊이가 15~20m인 물속으로 직행. 풀에 설치된 부표에 달린 줄을 잡고 내려간 그들은 숨을 참으며 작은 돌고래처럼 유영했다. 풀 밖 창에서 보이는 이들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공중회전이나 물구나무서기 등 어려운 동작들을 자유자재로 했다.

2시간 이어진 프리다이빙 체험을 마친 최씨가 말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었는데,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고, 다음에 또 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 강사는 “경쟁 없는 스포츠”가 프리다이빙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또 물속에서 ‘2인 1조’로 활동하기에, 무언의 교감이 주는 결속력도 신선한 체험이라고 했다. 침잠한 자신과 대화하며 영롱한 자연의 신비를 체험하는 프리다이빙. 온갖 스트레스는 그저 물 밖 일이다. 잠시나마 세상과 차단된 채 ‘고요의 바다’에 빠진다. 황혜연(29) 울진해양레포츠센터 대리는 “(프리다이빙은) 바닷속에서만 볼 수 있는 걸 접하게 하는 흔치 않은 취미”라며 “요즘 부쩍 교육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여기 유명해지면 안 되는데”


울진에는 산이 여러 개 있다. 해발 999m인 응봉산은 모양새가 매를 닮아 ‘매봉산’이라고도 부른다. 백암온천 서쪽에 자리한 백암산(1004m)이나 자연휴양림이 있는 통고산(1067m)도 울진에선 이름난 산이다. 하지만 해풍이 오가며 신비로운 소리를 내는 솔숲 여행은 등산만큼이나 선겁다. 감동을 일으킬 만큼 훌륭하다는 소리다. 숲이 마련한 그늘이 있는 한 폭염이 두렵지 않다.

솔숲으로 유명한 여행지는 월송정(평해읍 월송정로 517) 일대다. 이곳에선 두가지 걷기 여행이 가능하다. 장애인이나 노약자 등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무장애나눔길’이 있다. 2021년 조성된 이 길은 나무데크길(358m)과 야자매트길(220m), 황톳길(32m)로 구성돼 있다. 이 길을 자박자박 걷거나, 김덕용 문화관광해설사가 추천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는 “오는 12월이면 5㎞의 ‘맨발 걷기’ 길이 완성될 것”이라며 당장 양말 벗고 걸어보라고 했다. 폭이 1m도 안 되는 소담한 어싱(지구와 맨발로 교감하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운동) 길이 데크길 옆에 뻗어있었다. 발이 닿은 땅은 보드라웠다. 발가락 사이로 흙이 비집고 들어왔다. 울창한 소나무들이 만든 그늘은 듬직했다. 시인 유용주는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에 “그저 걸었”다고 했다. “속울음 삼”킨 세월을 견디게 한 것이 ‘걷기’였던 것이다. 그만큼 걷기는 힘이 세다.

월송정 인근에 있는 ‘평해사구습지 생태공원’. 독특한 풍광을 볼 수 있다. 박미향 기자

이윽고 도착한 월송정. 고려 시대인지 조선 시대인지 건립 이력이 분분한 누각이지만, 풍광만은 관동팔경(동해안에 있는 명승지 8곳)에 들 정도로 빼어나다. 하늘과 맞닿은 바다도 보였다. 짠 해풍이 누각을 너그럽게 품고 있었다. 여기가 ‘마침표’가 아니었다. ‘평해사구습지 생태공원’(평해읍 월송리 319-2)이 나타난다. 끝없이 펼쳐지는 사구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품격을 드러냈다. 사구는 강풍에 건조한 모래가 실려 와 쌓인 모래언덕을 말한다. 습지도 발달해 있는데,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이 서식한다. 수달·매·삵·말똥가리·새홀리기·가시고기 등이다. 생태관찰대, 조류관찰대, 사구·해안전망대, 광장, 쉼터 등으로 구성된 생태공원에는 오솔길이 이리저리 나 있다. 바위솔, 매화노루발 등 해풍에 마음을 빼앗긴 식물이 자란다. 이 공원의 미덕은 기수역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 강물이 바닷물과 섞이는 기수역에선 염분 농도를 종잡을 수 없다. 0.5~30% 정도로 차이가 난다. 이마저도 계절과 강수량에 따라 달라진다. 변화무쌍한 염분 농도에도 생존하는 생물들만이 이곳을 지킨다.

월송정 일대는 조용한 ‘차박’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맞춤한 곳이다. 박미향 기자

한참을 걷다가 생뚱맞은 스타렉스 차 한 대를 발견했다. 충북 청주에서 온 김옥주(42)씨 가족이 차박을 하고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머물고 있다는 그는 고향도 아닌 울진 자랑에 나섰다. “우선 맑잖아요. 사람 없어서 더 좋고요, 4년 전에도 여기서 캠핑했는데, 그때도 너무 좋았지요. 여기 유명해지면 안 되는데.(웃음)” 김씨 가족은 차박 경력만 10년이다.

파도가 부르는 소리에 발길을 옮기자, ‘어싱’하기 맞춤한 해변에 도착했다. 숲에서 한 ‘어싱’과 맛이 다르다. 발가락에 소금 절인 장아찌 같은 모래가 잔뜩 붙었다. 모래가 부린 욕심에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그래도, 싱그러운 체험에 만족감이 부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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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9개 넘어야 하는 ‘굴구지 마을’

환경부가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한 왕피천 일대. 박미향 기자

울진에서 여름나기 세번째 여행은 ‘오지마을’에서 묵고, 계곡 따라 걷는 것. 울진의 젖줄 왕피천이 끼고 도는 ‘굴구지 산촌마을’(근남면 왕피천로 634)은 주민들조차 ‘오지’라고 말하는 동네다. 김덕용 해설사도 “오지 중의 오지”라고 강조했다. 왕피천에서 고개 9개를 넘어야 도착하는 곳이어서 ‘굴구지’라 불리게 됐다. 수달·은어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마을에 사는 주민은 70여명. ‘왕피천 대나무 낚시’ ‘산나물 체험’ 등 다양한 산촌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한 마을 자치회는 펜션도 운영한다. 마을 누리집에 자세한 안내가 있다.

지난 7일, 김 해설사 안내로 왕피천 용소(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못)로 향했다. 왕피천 일대는 환경부가 지정한 국내 최대 규모의 생태경관보전 지역이자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이다. 풍부한 생물 다양성, 수려한 자연경관 등으로 보존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김 해설사가 당부했다. “숲이 원시림처럼 울창하기에 발 조심하시고, 나뭇가지도 잘 피해 걸으시라.” 용소로 향하는 길엔 웅장한 나무들이 빼곡했다. 밀림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좁은 숲길에서 김동만(60)씨를 비롯해 마을주민 3명을 만났다. 모두 같은 복장이었다. 김씨는 “5명씩 조를 짜 하루 1~2번 쓰레기 줍고 청소한다”고 말했다. 자연이 잘 보존된 데는 주민들의 노력이 있었다. 20여분 더 걸어 들어가자, 어디선가 졸졸졸 물소리가 났다. 왕피천이었다. 천변엔 크기도 모양도 다양한 돌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김 해설사는 “지하에서 열과 압력을 받은 암석들”이라고 했다. 커다란 바위와 어우러진 물길, 산자락에 흘러내리는 구름 떼, 그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상쾌한 바람, 바닥이 훤히 비치는 강바닥. 더위가 자취를 감췄다.

울진 맛집

구 동심식당

구 동심식당의 전복죽. 박미향 기자
지역민들에게만 유명했던 이 식당은 푸짐한 양과 고소한 맛 때문에 전국권으로 등극 중. 울진이 고향이 70대 남편과 그의 아내 홍영자(68)씨가 운영하는 식당. 홍씨 고향은 강원도 평창이다. 50년 넘은 이 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전복죽(1만4000원) 하나다. 여행객들은 주로 아침 식사하러 온다. 가게 이름 앞에 ‘구’자가 달린 이유는 과거 식당 두 개를 운영하다가, 하나를 팔았기 때문.(후포면 후포리 564-9)

바다횟집

바다횟집의 물회. 박미향 기자
2층짜리 건물인 식당은 바다로 창이 나 있다. 각종 회도 푸짐하지만, 돋보이는 메뉴는 물회(1만7000~2만2000원)다. 넉넉한 회와 국수를 먼저 건져 먹고, 밥을 마저 말아 먹으면 속이 든든하다.(울진읍 연지리 186)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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