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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조민진의 꿈꾸기 좋은 날
감정과 마음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1893). 위키아트 제공

“결국 모두가 죽지 않아? 그것도 너무 빨리? 말해봐, 당신은 이 하나의 소중한 야생의 삶을 어떻게 살 작정이지?”

자연을 즐겨 노래했던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여름날’ 마지막 대목입니다. 이미 뜨거운 여름이 한창이네요, 여러분. 조민진입니다. 지금 계절과 같은 제목의 시를 떠올리자니 시인의 물음이 귓전에 맴돕니다. 빨리 가고 소중한 삶이라니, 짧은 답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낙관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사전적으로 조금 더 길게 풀어보자면 ‘인생이나 사물을 밝고 희망적으로 보는’ 겁니다. 물론 제가 늘 기쁘고 만족스럽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쁠 때도 있지만 슬플 때도 있고, 만족스러울 때도 있지만 불안하고 화가 날 때도 있지요. 하지만 때때로 부정적 감정에 휩싸일 때면 벗어나기 위해 노력합니다. 감정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란 걸 이젠 알고 있거든요. 게다가 감정 조절이야말로 자기관리의 기본이자 시작임을 살면서 거듭 깨닫고 있습니다. 성향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낙관에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 정말 좋은 건 거저 주어지지 않는 걸까요?

뭉크 ‘절규’ 속 태연히 걷는 친구들

최근 개봉한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를 봤습니다. 주인공 라일리가 13살 사춘기 소녀가 되었더군요. 그리고 라일리의 머릿속에 있는 감정 컨트롤 본부에 예전에 없던 감정들이 들어왔습니다. 전편(‘인사이드 아웃’, 2015년)에선 11살 라일리를 지배하는 감정이라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 전부였죠. 그런데 두살 더 먹으면서 낯선 감정들이 찾아온 겁니다. 이른바 ‘불안’, ‘당황’, ‘따분’, ‘부럽’. 그러니까 라일리가 자라면서 부정적 감정들이 더 많아진 거네요. 라일리는 새로 찾아온 감정들에 이리저리 이끌리며 성장통을 겪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새삼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더 까다롭고 복잡한 감정들을 알게 되는 것이란 걸요. ‘기쁘면서도 슬프고’, ‘좋으면서도 싫고’,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미묘하고 모호한 감정들까지 차츰 학습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른은 아이보다 복잡해지는 거겠지요. 다만 그만큼 성숙해졌다면 다양한 감정에 대처하는 방법들도 나름대로 익히게 됩니다. 경험상 기쁨과 즐거움, 행복감 같은 긍정적 감정에 대해선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만끽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다른 한편으로 따라다니는 슬픔과 권태감과 불행감 따위의 부정적 감정들은 되도록 빨리 떨쳐버리는 게 좋았습니다. 안 좋은 감정을 컨트롤하는 데 도움 되는 해법들을 나눠 보겠습니다.

먼저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그저 ‘감정은 변한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겁니다.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달라지거나 사라집니다. 예컨대 ‘화를 식히다’, ‘마음을 가라앉히다’ 같은 표현이 있지요? 감정이 변하기에 가능한 말들입니다. 23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도 “분노에는 세월이 약”(‘수사학’)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부정적 감정이 엄습할 때는 속으로 ‘괜찮아진다는 걸 알고 있어’라고 되뇌면서 그냥 할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럼 어느새 정말 괜찮아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더불어 우리가 감정에 따라 상황을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떠올리면 좀 더 차분해질 수 있습니다. 음, ‘절규’(The Scream, 1893년)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을 보실까요? 19세기 말~20세기 초에 활동했던 노르웨이 국민 화가 뭉크는 대상에 감정을 이입해 그렸던 ‘표현주의’ 선구자였는데요, 해골 같은 얼굴로 두 귀를 막고 선 자신을 중심으로 주변 풍경이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요동치게 그렸습니다. 해 질 무렵에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다가 혼자만 극도의 공포에 빠져 뒤처졌던 경험을 표현했대요. 실제로 그림 왼편에서 태연하게 가고 있는 친구들이 보입니다. 감정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상황을 실제와 다르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뭉크 그림처럼요. 이 사실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평정심 회복에 유리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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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감정은 세트

책 ‘감정이라는 무기’에서 소개된,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메타뷰’ 사례. 조민진 제공

이젠 조금 더 적극적인 대처법인데요, 생각을 통제해 감정을 조절하는 겁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요?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얘깁니다. 생각과 감정은 세트입니다. 세계적 신경과학자 앨릭스 코브가 쓴 책 ‘우울할 땐 뇌 과학’을 보면, 실제로 뇌에서 생각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과 감정을 맡는 변연계가 밀접하게 상호작용한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이 두 영역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면 감정 상태를 조절할 수 없게 돼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죠. 제가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좋아한다고 말씀드린 적 있었는데요, 무엇보다 주인공 스칼릿 오하라의 강렬한 캐릭터가 맘에 듭니다. 장단점이 있는 인물이지만, 강인한 그녀가 부정적 생각을 멈추는 걸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데 능하다는 점에 끌리지요. 근심·불안·고통·슬픔처럼 아픈 감정에 휩싸일 때면 스칼릿은 늘 이렇게 읊조려요.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마치 효험 좋은 주문을 외는 듯 말입니다. 나쁜 생각을 끊어내고 눈앞에 닥친 일에 몰두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을 저도 스칼릿에게서 배웠습니다. 종종 따라 해보는데 꽤 효과가 좋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나와 거리두기입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메타뷰’(metaview)의 관점에서 보면 심각하게 여겨졌던 일들도 의외로 별게 아닌 경우가 많거든요.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수전 데이비드는 저서 ‘감정이라는 무기’에서 메타뷰 기술이야말로 “자아성찰 능력의 핵심 요소”라고 말합니다. 책에는 관점이 변하면 전혀 다르게 보이는 재밌는 사례가 나오는데요, 예컨대 ‘A, l3, C’와 ‘12, l3, 14’의 차이입니다. 양쪽 모두 가운데 같은 이미지(l3)가 들어가 있죠? 하지만 아마도 전자에선 ‘알파벳 B’로, 후자에선 ‘숫자 13’으로 읽으셨을 겁니다. 상황을 보는 관점은 다양하고, 관점이 바뀌면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전편에서든 속편에서든 ‘기쁨’과 ‘슬픔’이 늘 함께 다니며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기쁨을 느끼려면 슬픔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 아닐는지요. 어떤 감정이든 나름대로 제 역할을 하는 중일 겁니다. 다만 우리는 필요에 따라 스스로 감정을 제어할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좀 괴로워도 내일은 즐거울 수 있습니다. 앞서 걱정하지 말아요,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요!

작가

신문·방송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작가나 강사로 불립니다. 꿈꾸며 노력하는 여러분께 말과 글로 힘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아, 유튜브(‘조민진의 웨이투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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