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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뒹굴뒹굴 다코야키 팬의 재발견
| 정연주 푸드 에디터

다코야키 팬은 캠핑에서 정말 유용한 도구다. 동글동글한 귀여운 공 모양의 겉바속촉 ‘캠핑밥’을 만들면 오며 가며 집어먹기도 좋다.


내 추억 속의 캠핑은 ‘캠핑 놀이’였다. 분명히 사진첩을 보면 물놀이 튜브보다 자그마한 내가 잠든 캠핑 사진이 있고, 계곡에서 물놀이도 하고 수박도 먹었다고 하는데 기억에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더 이상 캠핑을 다니지 않게 된 초등학생 시절 우리 집에는 던지면 쫙 펼쳐지는 간이 텐트가 있었다. 얼마 전 내가 다니는 피트니스센터에서 탈의실 공사를 할 때 간이 탈의실로 사용한다고 가져다 놓은 텐트가 딱 이런 종류였다. 본격적으로 캠핑에 나가면 아무 쓸모가 없을, 바람이 불면 나풀나풀 통째로 날아다니는 홑겹 텐트다.

하지만 초등학생 자매가 캠핑 놀이를 하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여름방학이 되면 가끔 거실에 이 텐트를 펼쳐놓고 이부자리를 깔고 자기도 하고, 한낮에 마당에 펼쳐 놓고 친구를 불러 같이 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밖에서 오래도록 놀 수 있도록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 주셨다. 당시부터 음식이 나오는 책을 좋아해서 사진 없이 그림만 그려진 꼬마 요리사를 위한 요리책을 마르고 닳도록 읽었는데, 그 책에 ‘캔디 주먹밥’이라는 메뉴가 있었다. 분홍색 햄을 다져 넣은 밥을 동글동글하게 빚은 다음 랩에 싸서 양쪽에 리본을 묶어 캔디 모양으로 만드는 음식이었다. 그릇에 잔뜩 담은 동글동글한 캔디 주먹밥을 하나씩 랩을 벗겨가며 먹은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평소라면 어머니가 절대 해주지 않을 영양소 균형도 뭣도 신경 쓰지 않은 메뉴였지만, 그만큼 초등학생의 ‘캠핑 놀이’에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음식으로 장난치기

그 시절의 캠핑 놀이는 정말로 놀이였지만, 본격적으로 캠핑을 다니기 시작한 지금도 캠핑은 놀이나 마찬가지다. 단 이삼일을 위해 만든 공간에 알전구와 갈랜드를 두르며 장식하고, 가볍고 자그마한 캠핑 식기를 오밀조밀하게 차리고, 활활 장작을 태우며 불장난을 하는 어른을 위한 놀이 공간이다. 길어야 30분인 주중의 식사 준비 시간에는 굳이 하지 못할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는 것 또한 요리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된 지금 가장 즐거운 놀이다. 번철을 달구고 양꼬치를 뒤집고 삼겹살에서 흘러나온 기름에 미나리를 볶고, 라면으로 똠얌꿍을 끓이고 치즈를 훈제한다. 그러다 정말로 장난 같은 음식을 만들고 싶을 때면 꺼내는 것이 있다. 바로 다코야키 팬이다.

시판 팬케이크 믹스에 과일을 넣어 만든 디저트 공.


캠핑용 주방 도구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위시리스트가 크게 두 범주로 나뉜다. 하나는 기본 버너와 냄비 같은 필수 아이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없어도 되지만 갖고 싶어’템이다. 그리고 동글동글한 구멍이 파여 있는 다코야키 팬이 어디에 속하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다. 이를 구분하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오직 한 가지 음식에만 최적화되어 있을 것’을 꼽는다.

‘겉바속촉’ 귀여운 공 모양 밥 만들기

긴 꼬챙이로 굴려가며 굽는 게 포인트

어릴 적 소꿉놀이하듯 요리하는 재미

해물파전·팬케이크 등 다양하게 응용

단순 간식 넘어 한 끼 식사로도 ‘든든’


예를 들어 푸드 프로세서를 구입한다면 반죽도 하고 마늘도 다지고 고기도 갈고 휘뚜루마뚜루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달걀 트레이가 딱 박혀 있는 손바닥만 한 달걀 찜기를 산다면? 오로지 달걀만 찔 수 있다. 물론 삶은 달걀을 자주 먹어서 저 찜기가 있으면 아주 딱이다!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미니 달걀 찜기를 산다면 이유는 ‘없어도 되지만 갖고 싶어’일 것이고,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찬장 어딘가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런 단독 아이템은 사지 않는 것이 좋다는 깨달음을 힘들게 얻었고, 또 캠핑은 공간 활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활용도가 높은 물건만 사려고 한다. 하지만 구입한 휴대용 버너 구이바다에 딱 맞는 크기의 다코야키 팬이 있다는 소식에는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이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동그랗게 만들어줄 테다!

아기자기한 ‘캠핑밥’ 만들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코야키 팬은 캠핑에서 꺼내기 정말 좋은 도구다. 의외로 다양한 음식을 동글동글 귀엽게 만들 수 있어 아이들이 집어먹기 좋은 것은 물론이고, 굴려가며 골고루 구울 수 있으니 제대로 ‘겉바속촉’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 홈의 개수가 많다. 그래서 여럿이 구역을 나누어 맡아서 누가 잘 굽는지 경쟁해보는 것도 재미다! 각자 원하는 재료를 넣고 이것저것을 구워보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활용해서 동글동글한 캠핑밥을 다양하게 만들어보자.

우선 다코야키는 기본적으로 문어를 넣고 반죽을 부어서 굴려 굽는 음식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팬으로 해물파전도 구울 수 있다. 홈마다 기름을 두르고 잘게 썬 모둠 해물을 나누어 넣은 다음 노릇하게 볶는다. 적당히 익으면 파나 부추를 다져 넣고 묽게 만든 반죽을 부어서 굴려 가며 굽는 것이다. 해물을 먼저 볶는 것은 충분히 익게 만들면서 노릇하게 맛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김치, 옥수수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서 어떤 전이든 노릇노릇 ‘겉바속촉’에 귀여운 공 모양으로 구워낼 수 있다.

냉동 볶음밥을 노릇노릇 익힌 누룽지 김치볶음밥 공.


또한 시판 냉동 볶음밥을 가져가면 와르르 부어서 동글동글 익혀 누룽지로 둘러싼 김치볶음밥 공을 만들 수 있다. 방울토마토처럼 동그란 주먹밥 공을 산처럼 차곡차곡 쌓아서 고기와 함께 내 보자. 한입에 쏙 들어가면서 겉을 둘러싼 누룽지가 바삭바삭하게 부서져 바비큐에 구운 음식과 아주 잘 어우러진다.

디저트가 필요하다면 시판 팬케이크 믹스에 과일을 넣어서 머핀처럼 굽는 것도 방법이다. 아침으로 동글동글하게 팬케이크 공을 구워 잔뜩 담아두면 오며 가며 온 식구가 간식으로 먹기 딱 좋다.

동글동글한 캠핑밥을 성공적으로 겉바속촉으로 만들고 싶다면 기억해야 할 포인트가 있다.

첫 번째, 반죽은 묽게 할 것. 이미 달군 팬에 반죽을 부을 때 너무 되직하면 잘 떨어지지 않아서 모든 홈에 반죽을 다 붓기 전에 앞의 반죽이 익어버리기 쉽고, 속까지 잘 익히기 힘들다. 파전이나 팬케이크처럼 반죽을 부어서 굽는 요리를 할 때는 살살 흐르도록 평소보다 묽게 만들어서 빠르게 휙휙 부을 수 있도록 조절하자.

해물로 속 채우고 파 반죽을 넣어 부친 해물파전 공.


두 번째, 홈 크기보다 넉넉하게 부을 것. 해물파전이나 김치볶음밥 등의 음식을 구울 때는 홈에 딱 맞는 분량만 부으면 반쪽짜리 공이 되고 만다. 뒤집을 때 안으로 파고들 분량만큼 넉넉히 부어야 동글동글 예쁜 모양의 공을 만들 수 있다. 홈에서 넘쳐흐르더라도 안으로 밀어 넣으면 오히려 크고 둥근 공 모양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된다. 다만 팬케이크처럼 베이킹 파우더가 들어간 음식은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딱 맞는 분량만큼 넣는 것이 좋다.

세 번째, 꼬챙이를 이용해서 돌려가며 구울 것. 굳이 다코야키 팬으로 구울 때는 한입에 쏙 들어오는 바삭하고 촉촉한 대조적인 식감을 살리는 것이 묘미다. 그러려면 한 번만 뒤집는 것이 아니라 90도, 270도로 빙글빙글 돌려가며 전체적으로 노릇노릇 바삭해지게 굽는 것이 좋다. 이럴 때는 되도록 끝부분이 뾰족한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반죽이 잘 달라붙지 않고, 붙더라도 잘 떨어져서 속도감 있게 모든 공을 빠르게 뒤집을 수 있다. 요컨대 포크보다는 젓가락이, 젓가락보다는 캠핑에서 많이 사용하는 꼬치구이용 꼬챙이가 효과적이다. 아예 이쑤시개를 써도 좋지만 잘못하면 손목 등을 델 수 있으니 길이가 조금 긴 것을 고르도록 한다.

■정연주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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