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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의 “車”는 “거”로 읽는다

[서울경제]

한국 사람들은 “bada”와 “vada”를 듣고 둘 다 “바다”로 인식한다. “b”와 “v”를 구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어에도 구별하지 않는 발음이 있다. 우리는 “쌀”과 “살”을 구별하지만 영어의 “sign”의 발음은 “싸인”과 “사인”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 한국도 일부 지방에서 사람에 따라 “쌀”과 “살”을 구별하지 않는다.

특정 발음의 사용이 언어습득 기간 중에 제외되면 그 발음을 위한 뇌의 회로가 형성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두 발음은 같은 발음으로 인식된다. 둘이 아닌 하나로 존재하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기본적인 발음 수는 주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중국이 200 여개, 일본이 100 여개 정도라고 한다. 한국은 2700 개 정도이며, 한국의 경우 표기 가능한 발음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 중국의 한자는 글자 자체가 작은 그림이다. 사물/사건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문자라는 뜻이다. 중국어 사용자들은 말을 들으면 즉시 문자를 떠 올려야 한다. 같은 발음이 많기 때문이다. 위 표에서도 같은 발음의 한자들을 볼 수 있다. 같은 발음을 이용한 해음(諧音)이 미신을 만들기도 한다. ‘福’자를 거꾸로(倒) 문에 붙이면, ‘倒’(거꾸로)와 ‘到’(들어온다)가 발음이 같아, “福이 거꾸로 붙어 있네”가 “福이 집으로 들어오네”의 일상어로 읽히게 된다. 중국인의 발음 세계에서, “福이 거꾸로”와 “福이 들어오네”는 구별되지 않는다. 더 재미 있는 해음도 있다. 우산(傘)을 선물하면 헤어지자(散)는 뜻이 되고, 함께 앉아 “배를 잘라 먹으면”(梨開) “이별하자”(離開)는 선언이 된다. 모두 미신적 금기다.

한자의 장점은 말이 통하지 않는 민족 사이일지라도 한자를 사용함으로서 기록으로 소통이 가능했다는 점일 것이다. 한자 덕분에 중국 대륙은 문자 소통이 가능한 지역이 되었고, 정치적으로 하나의 국가를 이룰 수 있었지만, 언어가 다른 종족이 한둘이 아니었으므로, 온전한 통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자 아이콘은 사물/상황/동작을 표현하는 ‘작은그림’, 심하게 말하면 정지된 동영상이라고 할 수 있다. 글자 자체는 정지되어 있지만 이를 인식하는 주체에게 한자는, 시간을 부여 받은 심적 동영상으로 표상된다. 따라서 한자의 “작은그림”은 그 형태와 글자 모양의 짜임새까지 매우 중요하다. 짜임의 순서가 시간이기 때문에, 형태 구성은 글자의 인식, 암기, 의미 형성에 있어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최근 중국이 “풍부하다”의 ‘豊’자를 간자 ‘丰’으로 고친 것은 제 정신으로 한 일이 아니다. ‘丰’은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豊’을 암시하는 ‘기호’에 불과하다. 다르게 말하면, 한자 정신의 파괴다. 영어도 문자 모양을 중요시한다. ‘knife, knight, know’를 ‘naif, nite, nou’로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그림’의 모습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자의 그림적 특성도 그 만큼 중요하다. 한글의 글자 모양은 서구 알파벳의 수평적 제한을 넘어선 수평/수직의 결합으로 인해, 글자 모양이 놀랄 만큼 다양하다.

언어듣기의 메커니즘은 당연히 음악 듣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멜로디-듣기와 만들기에, 이미 형성된 언어의 신경회로가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둘 다 소리를 듣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음악이 도입되어 듣기에 익숙해지면, 멜로디-듣기의 뇌 회로가 그에 맞게 변하겠지만, 이미 만들어진 회로는 남아있을 것이다. 중국의 음악은 전통 음악이건 대중 가요건, 모두 한자의 문자적 이념 안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미 만들어진 뇌의 회로는 작동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음악은 제목의 시각적 이미지를 직접 표현한다. 쟁(箏)으로 연주하는 “고기잡이 배에서 황혼을 노래한다”는 ‘이저우창만’(漁舟唱晩)은 강변의 저녁을 음으로 그리고 있다. 화폭에 그림을 그리듯 쟁(箏)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만든 그림이다. ‘달빛 아래 매의놀이’(月江鷹遊)나 ‘봄날 강변의 아름다운 달밤’도 역시 같다. ‘春江花月夜’는 다음 그림의 상단에 쓰여 있는 시 제목이다.

春江花月夜


표음문자 사용자들은 소리를 듣고 곧 바로 의미 세계로 옮겨가는 반면, 한자 사용자들은 발음을 듣고 문자, 즉 ‘작은그림’을 떠 올리고, 그로부터 의미 세계로 진입할 것이다. 한자 사용자들은 음악을 들을 때에도, 음-형태로 구성되는 음악의 공간을 만들기 보다는 음-형태에서 ‘작은그림’을 찾게 된다. 쉽게 말해, 음악 듣기가 음악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작업이 아니라 그림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작업이 된다는 뜻이다.

반면, 음 자체로서 음악적 공간을 만드는 음악은 몇 개의 음으로 구성된 ‘게슈탈트’(gestalt, ‘모양새’의 뜻)를 건축적으로 조립해 나간다. 그 조립의 규칙은 우리의 생활 공간에서 유도된다. 질문/대답, 호응/거절, 상행/하행, 등장/퇴장 등이 그런 구조들이다. 생활과 언어의 대칭적 구조를 음악에 반영한 것이다. 운명 교향곡의 ‘미미미 도-’와 ‘레레레 시-’는 호응 구조이지만,



‘미미미 도-’에 대해 ‘레레레 솔-’로 대답하면, 거절 또는 길을 바꾸겠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변형하면 숨 가쁜 발전, 속도감 있는 상승이 된다.



게슈탈트의 구조는 생활 현실에서 빌려왔지만, 그것이 만드는 의미는 음악적 공간 안에서 생겨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형성된 의미는 느낌을 만들고, 그로부터 감정을 불러온다. 이것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음악을 듣는 메커니즘이다.

언어가 음악에 끼치는 영향은 중국의 경우에만 제한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음악도 언어와 문자에 기인하는 특이함을 지닌다. 유럽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에 따라 음악이 섬세하게 다르다. 이탈리아나 독일과 달리 영어의 경우, ‘knight’처럼 ‘문자그림’에 비중을 두는 것을 보면, 영국인의 음악듣기에도 언어 메카니즘이 틈입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유럽의 여러 국가들의 음악이 서로 조금씩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세계 여러 나라 중, 중국인의 음악듣기가 가장 특이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자의 특이함이 그 원인이다.

과거 한자를 많이 사용했던 조선이나 일본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한글 전용의 시대에 산다는 것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에 산다는 뜻이기도 한다. 지금 한국의 정신 세계는 중국, 일본과 달리 서방세계가 되었다. 그것이 아마도 일류(日流)나 중류(中流)가 아닌 한류(Korean-wave)가 세계적으로 범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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