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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유전의 과학 : 에너지 전문가 최종근·조용채 서울대 교수
최준호 과학전문기자, 논설위원
‘바이킹의 후예’ 노르웨이는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북유럽의 평범한 어업·해운 국가였다. 하지만 1970년대 초 북해에서 유전이 터지면서 단번에 세계 10대 석유 수출국의 반열에 올랐다. 현재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만 달러를 넘어서 서유럽 국가 중에서도 최선두권이다. 노르웨이가 산유국이 되기까지는 10년 가까이 북해 대륙붕 이곳저곳의 유전 후보지 탐사를 진행한 인고(忍苦)의 시간이 있었다.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우리나라도 노르웨이처럼 석유 부국이 될 수 있을까.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은 예고에 없던 국정브리핑을 통해 “포항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추정 매장량은 최대 140억 배럴. 1990년대 후반에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다. 금세기 발견된 최대 심해 유전이라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매장량 110억 배럴보다도 더 많은 양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었다. 개발 성공률도 20%에 달한다고 한다.

140억 배럴 매장, 상상초월 수준
초기 중동 대형 유전보다 큰 규모
논란 잠재울 방법은 시추하는 것
발표 방법 등으로 정쟁화 아쉬워

최종근 교수가 서울대 연구실에서 석유와 가스가 나올 수 있는 지층의 구조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희소식임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반응은 엇갈렸다. 석유 부국의 희망에 부푼 여론도 있었지만, 지지율 하락에 내몰린 대통령의 국면 전환용 발표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논란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더불어민주당은 급기야 “정부가 명확한 해명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밀어붙일 경우 단 한 푼의 예산도 지원할 수 없다”고 나왔다. ‘산유국의 꿈’이 여야 간 뜨거운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혼란스럽다. 진실은 어디쯤 있을까. 답을 말해줄 수 있는 건 결국 주장이 아닌 팩트에 기반을 둔 과학기술이다. 지난 17일 서울대 관악캠퍼스를 찾아 한국석유공학회장을맡고 있는 최종근(59)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에게 ‘포항 앞바다 유전의 과학’을 물었다. 최 교수는 자신이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이지만, 글로벌 석유·천연가스 탐사기업 슐럼버거와 쉘에서 경력을 쌓은 물리탐사 전문가 조용채(37) 교수와 함께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물었다.

140억 배럴은 상상 초월의 규모


Q : 윤 대통령이 발표한 포항 앞바다 유전은 시추할 가치가 있나.

A :
“당연하다. 탐사 성공률 20%라는 것은 통상의 석유개발사업에서 꽤 높은 확률이다. 성공하면 얻는 이익이 너무너무 크지 않나. 안 할 이유가 없다.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시추해서 확인하는 거다.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시추를 못 하면 엄청난 기회를 포기하게 되는 거다.”

Q : 매장량 140억 배럴은 세계 다른 유전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인가.

A :
“상상 초월 수준이다. 과거 중동에서 발견된 ‘초대형 유전’보다도 큰 규모다. 당시 그런 유전은 매장량 10억 배럴 정도였다. 140억 배럴이 진짜 있으면 대한민국이 바로 (노르웨이 등과 같은) 부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 140억 배럴은 최대 추정치다. 대부분 실제 시추해보면 이 정도로 나오진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으로 봐도 35억 배럴은 되는데, 이것도 아주 큰 규모다. 최근 50년 이내에 이 정도 규모의 유전이 발견된 적이 없다. 다만 이는 탐사 결과이므로, 정확한 매장량 도출을 위해서는 시추가 필요하다.”

Q : 물리탐사는 뭐고, 해석은 뭔가.

A :
“물리탐사는 석유가 있을 만한 좋은 구조를 찾는 거다. 인공지진파 탐사 또는 탄성파 탐사라고 하는데, 다양한 매질이 있는 해저 지층에 반사돼 돌아온 파장으로 실제 석유가 있을 가능성이 큰 지층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액트지오의 비토르 아브레우 박사는 노르웨이의 대형 지질탐사 기업 쉐어워터가 수행한 물리탐사의 자료를 해석했다. 석유·가스 개발엔 워낙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런 세밀한 과정을 거쳐 가능성을 확인한 후 시추에 들어가게 된다.”
다섯 번 뚫으면 성공 의미는 아냐

조용채 교수가 서울대 연구실에서 석유와 가스가 나올 수 있는 지층의 구조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Q : 탐사 성공률 20%는 어떤 의미인가.

A :
“다섯 번 시추하면 한 번 성공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탐사 성공률을 이해하려면 유전이 생성될 수 있는 지층의 구조부터 알아야 한다. 바다 밑 지층에 유전이 있으려면 일단 석유가 생성될 수 있는 네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석유 생성의 시작인) 유기물 함량이 높은 지층, 즉 근원암이 있어야 한다. 둘째, 석유가 있더라도 어느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지질 구조가 필요하다. 셋째, 그런 구조가 있더라도 위로 새어나가면 안 된다. 덮개암으로 잘 덮여 있느냐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그 지층의 입자 사이의 공극률(孔隙率)과 투수율이 높은지도 관건이다. 공극률이 높으면 석유가 들어갈 공간이 커지고, 투수율이 높으면 시추가 쉬워진다. 성공률은 이 네 가지 조건을 곱하는 거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확률이 낮아진다. 개별적으로 70%의 확률이라 하더라도 곱하면 24%가 나온다.”

Q : 석유나 가스가 있을 가능성이 큰 ‘유망 구조’, 즉 그릇을 확인했다지만, 비어있거나 물이 차 있을 수도 있지 않나.

A :
“물과 석유를 통과한 탄성파는 좀 헷갈릴 수 있으나, 가스의 경우 탄성파에서 보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자세한 해석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서 알 수 없으나 석유공사 측에서 가스가 70%라고 말했으니 어떤 근거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Q : 왜 성공률 20%의 자세한 근거를 내놓지 않는 걸까.

A :
“기업에 분석 결과와 자료를 해석한 것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건 자산을 내놓으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자료를 공개하고 나면 외국의 다른 기업들이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나라 영해의 구조를 보게 되는 거다. 국회에서 계속 압박하고 있고 석유공사는 공기업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전체든 부분이든 공개할 거라 생각한다. 걱정스러운 건 공개를 하더라도 그걸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란 점이다. 공개된 자료가 다시 불필요한 논란을 낳을 여지도 크다.”
자료 해석업체, 소수 전문가면 충분


Q : 하필이면 1인 기업 액트지오에 물리탐사 해석을 의뢰한 것도 의문이다. 물리탐사를 수행한 쉐어워터가 직접 하면 안 됐나.

A :
“물리탐사 이후 해석 단계에서 결정적인 정보가 많이 도출되기 때문에 석유공사 같은 운영사에서 직접 해석하거나 액트지오와 같은 용역사에 해석을 의뢰하는 게 일반적이다. 1인 기업이라니까 일반인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미국 휴스턴에 가면 액트지오와 같은 1인 기업이 수백 개나 있다. 엑손·쉘 같은 메이저 석유 기업에 오래 근무한 후 퇴직해 그 경험과 전문성으로 1인 기업들을 많이 차린다. 특히 해석업체는 이 분야에 지식과 경험이 많은 몇 사람이면 된다.”

Q : 액트지오의 비토르 아우레브는 어떤 인물인가.

A :
“석유 메이저 엑손모빌에서 그룹장을 지냈고, 미국 해양 지질학회 학회장도 역임했다. 미국 기업의 한 그룹장이 학회장을 한다는 건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논문도 많이 써 기업뿐 아니라 학계에도 충분히 기여해 온 분이다. 업계 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해양 지질학 분야의 전설 같은 인물’이다. 그 누구도 그를 비전문가라 얘기할 수 없다.”

Q : 지난해 1월 철수한 호주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는 이 지역의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했다는데.

A :
“이번에 발표된 지역과는 다른 곳을 얘기한 거다. 이미 10여년 전 8광구 두 군데에서 실패한 전례도 있어 소극적인 해석을 내렸을 가능성도 있다.”

Q : 물리탐사 해석 결과만 가지고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건 지나친 것 아닌가.

A :
“이 사안에 대해 정치적 논란이 많으니 이 질문은 그냥 넘어가자.”

Q : 대통령의 말이 팩트(fact) 상으론 문제가 없나.

A :
“그렇다. 앞에서 말했듯이 탐사 성공률 20%면 보통보다는 높은 거다. 이 정도 가능성에 이 정도 매장량이라 기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추를 허락했다고 하면 별문제가 없었을 텐데, 140억 배럴이 너무 강조되고 발표 시점도 좀 그렇고 해서 정치 이슈화가 돼버렸다. 심히 아쉽다. 지금은 정치적 싸움을 할 게 아니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잘 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석유 시추사업은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항상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최종근=서울대 자원공학과 학·석사를 마치고, 미국 텍사스 A&M대에서 석유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한국석유공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해양시추공학』 『석유와 석유공학 이해』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조용채=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학·석사를 마치고, 미국 텍사스 A&M대에서 지구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석유·천연가스 탐사기업 슐럼버거의 지구물리연구소와 쉘 탐사기술연구팀 선임연구원을 거쳐 2022년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로 임용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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