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어떤 동사의 멸종

한승태 지음

시대의창 | 404쪽 | 1만8500원


텔레마케터(0.99), 화물·창고 노동자(0.99), 레스토랑 요리사(0.96), 청소노동자(1.0). 괄호 안 숫자의 의미는 무시무시하게도 ‘대체 확률’이다. 1에 가까울수록 컴퓨터나 기계에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나열한 4개 직업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멸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다양한 일터의 모습을 기록해 온 르포 작가 한승태는 어느 순간부터 이들 직업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우리의 일상을 먹여주고 씻겨주고 가끔씩은 꿈꾸게도 해준 세계”에 대한 격식 갖춘 작별 인사가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어떤 동사의 멸종>은 한승태가 언제나처럼 직접 자신의 몸으로 부딪혀 건넨 진한 작별 인사다. <퀴닝>(2013년 출간된 <인간의 조건> 개정판), <고기로 태어나서>(2018)에 이은 그의 3번째 노동 에세이이기도 하다.

저자는 콜센터 상담원, ‘까대기’라 불리는 택배 승하차, 뷔페식당 주방 요리사, 빌딩 청소노동자로 취업한다. 도시민이 하루 한 번은 이용하거나 마주치게 되는 친밀한 직업들이다. 그는 ‘전화받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의 동사로 구성된 각 부에서 노동의 렌즈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담는다. 그에게 이들 직업의 소멸은 ‘동사(動詞)의 멸종’과 같다. 전화받고 운반하고 요리하고 청소하는 세계가 사라지면 그 세계가 만들어내던 특정한 종류의 인간 역시 사라진다.

일종의 ‘장례식 풍경’에 관한 기록이지만, 곡소리만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 안에는 함께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드는 흥겨운 순간이 있다. 저자는 특유의 익살넘치는 문장으로 “노동의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고통과 욕망, 그것들의 색깔, 냄새, 맛까지 전부 기록”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힘이 있어 400여쪽을 한 번에 내달리게 만든다.

그러나 멸종의 현장을 지켜보는 일은, 그것이 저자를 한 번 통과한 ‘찍먹’에 불과한 경험이라 해도 씁쓸할 수밖에 없다. 특히 중간중간 각주로 등장하는 수많은 직업의 대체 확률 중 내 것을 발견할 때면 그때까지 쿡쿡 새어나오던 웃음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린다.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4022 전국 35도 안팎 폭염…중부 내륙·남부 소나기 랭크뉴스 2024.08.04
34021 경기 뛰지 않은 4명도 올랐다…유도팀 11명 시상대 오른 까닭 랭크뉴스 2024.08.04
34020 독대 없었던 윤-한 90분 회동…정책의장 사퇴 갈등으로 냉기 확인 랭크뉴스 2024.08.04
34019 냉기 감도는 윤-한 회동…“만나자 해서 만나준 것, 독대 없어” 랭크뉴스 2024.08.04
34018 순창 지산마을 트럭 운전자 음주운전 사고‥동승자 3명 숨져 랭크뉴스 2024.08.04
34017 "어디에 고소해야 하나요"…글로벌 셀러는 망연자실 랭크뉴스 2024.08.04
34016 만취 여성 성폭행한 성동구의원, 구속 안 된 까닭은 랭크뉴스 2024.08.04
34015 가격이 낮으면 매력도 낮을 수밖에…‘한화 에너지’ 공개 매수에 시장 냉담한 이유는?[박상영의 기업본색] 랭크뉴스 2024.08.04
34014 안바울, 한 체급 높은 상대 맞아…5분25초 혈투 끝에 극적 승리 랭크뉴스 2024.08.04
34013 하루 600발, 주7일 활 쐈다…끝내 울어버린 양궁 막내 남수현 랭크뉴스 2024.08.04
34012 머스크도 반한 사격 김예지 "너무 잘 쏘려다 격발 못했다" [올림PICK] 랭크뉴스 2024.08.04
34011 하루 2번 음주운전 적발된 30대…알고보니 말다툼한 여친이 신고 랭크뉴스 2024.08.04
34010 순창서 1톤 트럭 가드레일 충돌… 삼남매 사망 랭크뉴스 2024.08.04
34009 경기 직전 어깨 탈구됐는데…체조 여홍철 딸 여서정의 투혼 랭크뉴스 2024.08.04
34008 한 체급 높은 상대 꺾은 안바울 “함께 훈련한 선수들 생각에 힘내” 랭크뉴스 2024.08.04
34007 '세대교체 완료' 남녀 사브르... 단체전 금·은 동반 수확 쾌거 랭크뉴스 2024.08.04
34006 "싸이 흠뻑쇼 보고 싶어요" 유도 영웅들 6인6색 인터뷰 랭크뉴스 2024.08.04
34005 美·英 세계 각국들 “즉시 레바논을 떠나라” 권고 랭크뉴스 2024.08.04
34004 ‘모스크바 사정권’ 美 미사일 배치에…獨 집권여당 ‘발칵’ 랭크뉴스 2024.08.04
34003 경기 2시간 전 어깨 탈구됐는데…체조 여서정 '투혼' 빛났다 랭크뉴스 2024.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