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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섭취 금지인 해외 다이어트 보조제
10대 노린 편법 판매
비닐봉투에 낱알 담아 발송
정품 여부, 유통기한 몰라…부작용 수두룩
엑스(X) 운영 중인 다이어트 보조제 소분 판매 계정에 올라온 후기 사진. 엑스 캡처


“안녕하세요. 미성년자도 구매되나요(가능한가요)?”
“네네 종류별로 수량이랑 택배 (받을) 방법 알려주세용.”

기자가 카카오톡 오픈 채팅을 통해 한 판매자에게 문의를 시도하자 10여분 만에 답변이 돌아왔다. 신원을 알 수 없는 그는 극단적으로 마른 몸매를 추구하는 10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다이어트 보조제를 뒷거래로 팔고 있었다. 해외직구로만 구할 수 있는 알약 제품인데, 한 병의 완제품이 아니라 몇 알 단위로 팔았다. 이런 소분 판매는 불법이다. 그가 파는 보조제 중에는 아예 국내에서 유통할 수 없도록 금지된 제품도 있었다.

“하루에 몇 정을 복용하면 되냐”고 묻자 그는 “설명서에 따르면 하루 최대 6알인데 다들 밥을 안 드시니 저한테 묻지 말고 그냥 조금씩 먹어 보라”고 답했다. 미성년자에게 ‘다이어트약’처럼 여겨지는 제품을 불법으로 팔면서 “마음대로 먹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말한 ‘하루 최대 6알’도 성인 기준이었다.

기자가 다이어트 보조제 소분 판매자와 나눈 카카오톡 오픈채팅 대화.

판매자는 낱알로 된 보조제를 주문받은 수량만큼 일회용 비닐봉지에 담아 택배로 발송하고 있었다. 위생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구매자 입장에서는 진짜 제품이 맞는지, 유통기한이 지나지는 않았는지 등의 정보를 확인할 길이 없다. 그는 엑스(X)에 개설한 판매 계정에 ‘제품이 훼손되지 않게 잘 왔다’ ‘항상 믿고 구매한다’ 같은 카카오톡과 다이렉트 메시지를 캡처한 이미지를 구매 후기처럼 올려놓고 있었다. 이 역시 진위를 알 수 없었다.

최근 10대들 사이에서 ‘프로아나’(자발적 거식증 유발)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무분별한 다이어트 보조제 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엑스나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 장터’에서 해당 제품의 줄임말과 ‘소분’을 합친 키워드를 검색하면 관련 게시물이 수백 건이 나온다. 제품은 보통 한 알에 500~1000원 사이에 거래된다. 청소년들은 이 제품을 편법으로 구입한 뒤 부모 몰래 복용하면서 적잖은 부작용을 겪고 있다. 과다 복용 사례가 적지 않다.

미성년자 상대로 대놓고 암거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다이어트 보조제 불법 판매가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는 사실을 언론이 확인하기는 처음이다. 이 보조제는 미성년자 섭취를 금지하고 있다. 일부 제품은 국내 유통 자체가 금지된 ‘위해 식품’으로 분류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의 다이어트 보조제는 정식 판매 창구보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낱알’로 거래된다.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는 이 판매 방식은 어디까지나 미성년자를 겨냥하고 있다. 10대에게 몇 만원씩 하는 완제품은 비싸다는 점, 이들이 복용 사실을 가족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한다는 점을 노렸다. 한 통에 수십알씩 든 완제품은 쿠팡에서 종류에 따라 약 3만7000~5만5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고등학생 A양(18)은 “중·고등학생이 대부분인 프로아나 세계에선 부모님께 구매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중학생 때부터 이 제품을 먹었다가 끊은 B양(18)은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편의점에서 택배 수령이 가능한 소분 거래를 이용했다”며 “해외 직구는 제품을 받는 데 오래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프로아나는 살을 빼기 위해 음식 섭취를 극단적으로 줄이는 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로, 10대들에겐 익숙한 용어다. 이들은 약이나 보조제를 이용해 스스로 섭식 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른바 ‘뼈말라’(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몸) 수준의 체중 감량을 원하는 이들의 위험한 다이어트 정보는 곳곳에 넘쳐난다.

더구나 SNS 소분 판매는 명백한 암거래다. 해외직구 제품을 되파는 것도, 소분해 파는 것도 모두 불법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20일 “해외직구 식품을 직접 소비하지 않고 소분 및 판매하는 행위는 현행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입식품관리특별법 제15조는 무등록 식품 수입과 판매를, 식품위생법 제4조는 미신고 수입 식품 판매를 각각 금지한다. 판매 성공 여부를 떠나 이런 제품을 팔려고 진열·소분·운반만 해도 불법이다.

위경련·구토에 정신 흐려지기도
이 보조제 일부 종류는 식약처가 관리하는 ‘해외직구 위해 식품’으로 등록돼 있다. 식품에 사용이 금지된 의약 성분 ‘시네프린’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성분은 흉통, 불안, 혈압 상승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카페인과 함께 복용 시 발작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 보조제는 고함량 카페인을 기초로 한 제품이라 무조건 시네프린과 카페인을 함께 먹게 된다.

위해 식품을 팔면 정식으로 등록한 국내 구매대행업자라도 영업정지, 영업허가·등록 취소 같은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제품은 회수돼 폐기되지만 이미 복용한 사람에게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이 제품 포장 겉면에는 ‘18세 이하 미성년자는 섭취하지 말라’고 적혀 있다. 성인도 하루 6정을 초과해 복용하지 말라고 당부 돼 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위험을 무릅쓰고 문제의 보조제를 먹었다가 신체적 부작용을 겪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A양은 이 보조제를 먹고 어지러움, 두통, 구토를 동반한 위경련을 겪었다고 전했다. B양도 시험 기간 커피와 함께 제품을 복용한 뒤 심한 어지러움과 복통을 경험했다. 위액이 나올 정도로 토하기도 했다고 한다.

중학생 C양(15)은 하루 최대 10정까지 먹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구토감뿐만 아니라 몸이 떨리고 정신이 멍해지는 증상을 경험했다고 한다.

심장이 너무 심하게 뛰어 응급실을 방문한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보조제를 네 알씩 잇따라 2차례 복용한 적이 있다는 D양(19)은 “의식이 흐릿해지고 심박수가 160을 넘는 지경이 돼서 응급실에 실려갔다”며 “병원에서는 카페인 부작용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안정제와 수액을 처방받았는데 이후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지금은 카페인을 아예 섭취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두 알에 ‘벤티 사이즈’ 카페인
해당 제품은 한 알에 매우 높은 함량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카페인이 중추신경 흥분을 유발하고 에너지 대사를 촉진해 식욕을 잃게 하고 체중이 줄도록 유도한다.

서울 성북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제품 성분을 살펴본 뒤 “2정당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와 비슷한 수준의 카페인(300㎎)이 함유돼 있다”고 말했다. 일일 최대 복용량인 6정이면 벤티 사이즈 아메리카노 석 잔을 마시는 것과 같다. ‘카페인 폭탄’인 셈이다.

왼쪽부터 스타벅스 톨, 그란데, 벤티, 트렌타 사이즈.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 없음. 스타벅스코리아 제공

식약처가 제시하는 일일 카페인 권장량은 성인 400㎎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은 몸무게 1㎏당 2.5㎎ 이하다. 미성년자는 체중이 50㎏이라면 125㎎, 60㎏이라면 150㎎을 넘기지 말라는 얘기다. 해당 제품은 한 알만 먹어도 이 용량을 훌쩍 넘어선다. 두 알 넘게 먹으면 성인 기준으로도 카페인 과량 섭취고 미성년자에게는 더욱 과한 용량이 된다고 약사는 설명했다.

그는 “뇌가 아직 발달 중인 어린이와 청소년은 카페인 부작용과 의존성이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고함량 카페인을 권장하지 않는다”며 “해당 제품은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으로 분류되지 않아 안전성 정보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체중 강박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은 보조제를 끊지 못하고 있다. A양은 “현재도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며 “식욕 억제와 체중 감량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고교생 E양(18)은 “이제는 제품을 복용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몸이 된 것 같다. 지금 이 순간도 소분 판매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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