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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 고갈 원인 ‘생수 생산’ 지목
“업체선 지하수 고갈이 왜 자기 탓이냐며
우리한테 증거를 대보래요” 주민 호소
경남 산청군 삼장면 덕교리에 있는 샘터 ‘구시새미’. 샘이 말라서 바닥을 드러내자, 지난봄 산청군은 관로를 설치해서 물을 인공적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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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지하수 판 게 2007년일 거예요. 먹는 물이랑 허드렛물로 쓰려고. 근데 2020년부턴가? 흙탕물이 나와요. 어떤 때는 물이 아예 안 나오고.”

지난 14일 경남 산청군 삼장면 덕교마을에서 만난 장용식(58)씨는 “백번 설명해 무엇 하느냐”며 집 마당으로 기자 손을 잡아끌었다. “좀 보소. 내 말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는지.” 장씨가 마당의 지하수 펌프를 작동시키니 흰색 들통에 누런 흙탕물이 가득 찼다. 그는 “이 물을 받아 뒀다가 맑아진 윗물만 떠서 생활용수로 쓰고, 식수는 사다 먹었다”고 했다. 옆집에는 고장 난 펌프가 방치돼 있었다. 바닥난 지하수를 끌어올리려다 망가진 것이라고 했다.

주민들이 지하수 개발을 시작한 건 20년이 채 안 된다. 그 전엔 뒷산 계곡에서 물을 끌어와 썼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계곡 수량이 줄자 한집 두집 지하수 관정을 파기 시작했다. 현재 삼장면의 21개 모든 마을에는 한두개씩 공동 관정이 뚫려 있고, 개인이 판 지하수 관정도 322개에 이른다. 하지만 3~4년 전부터 지하수마저 마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가물어도 1년 내내 맑은 물이 솟아났다는 마을 샘터 ‘구시새미’도 몇년 전 바닥을 드러냈다. 산청군은 지난봄 구시새미로 관로를 설치해 물을 흘려보내고 있다. 하촌마을 이장 현재두씨는 “인공적으로 물을 흘려보내 원래 모습을 되살렸지만, 이제 아무도 이 물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마을 정자 ‘파고정’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던 아름드리나무 두 그루도 지난봄 말라 죽었다. 사과·밤 농장의 나무들도 고사했다.

경남 산청군 삼장면 덕교리의 정자 ‘파고정’에 서 있던 나무 두 그루가 지난봄 말라 죽었다. 최상원 기자

주민들은 지하수 고갈의 ‘주범’으로 덕교리 생수공장 2곳을 지목한다. 덕교리에는 1996년 지리산산청샘물, 2000년 엘케이샘물이 공장을 짓고 생수를 생산하고 있다. 이 업체들이 매일 생산하는 생수의 양은 각각 600t과 400t에 이른다. 공장 가동에 소모되는 생활용수까지 포함하면 두 업체가 뽑아 쓰는 지하수는 하루 1300t이 넘는다.

경남 산청군 삼장면 덕교리에 있는 ㈜지리산산청샘물의 공장 내부 모습. 이곳에선 하루 600t의 생수를 생산한다. 최상원 기자

그런데 최근 지리산산청샘물이 생수 생산량을 지금의 2배인 하루 1200t으로 늘리겠다고 경상남도에 사업허가 신청을 했다. 경상남도는 법령 검토와 산청군과의 협의를 거쳐서 지난 2월 이 업체에 ‘샘물 개발 임시허가’를 내줬다. 주민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올해 초 삼장면 주민들이 결성한 ‘삼장면 지하수보존 비상대책위원회’는 “취수 증량 계획을 백지화하고, 생산량을 줄이라”고 업체들에 요구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는 생수업체의 취수 증량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지난 14일까지 전체 주민(1782명)의 65%가량인 1167명이 서명했다. “업체 사람들이 그래요. 지하수 고갈이 왜 자기들 탓이냐고. 그러면서 우리한테 증거를 대보래요. 아니, 우리 같은 농사꾼들이 대체 무슨 수로 과학적 증거를 댄다는 말입니까?” 표재호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이다.


경남 산청군 삼장면 덕교리에 설치된 ‘산청-0007’ 지하수 수위 보조측정망의 측정 결과 그래프. 지하수 수위가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알 수 있다. 환경부 국가지하수정보센터 측정자료 갈무리

주민들이 지하수 고갈을 생수회사 책임으로 보는 데는 그럴 만한 근거 자료가 있다. 환경부 국가지하수정보센터가 전국 3148곳에 설치해 운영하는 ‘지하수 수위 보조측정망’ 자료다. 덕교리에도 생수업체 두곳에서 직선거리로 140여m 떨어진 삼장생활체육공원 부근에는 2021년 12월 ‘산청-0007’ 보조측정망이 설치됐다.

“지하수 수위는 장마철에 오르고 겨울에 내려가는 식으로 변해요. 계절별 강수량 차이가 있으니까. 근데 폭이 완만해요. 변하더라도 일정한 범위를 안 벗어나는 거죠.” 표 위원장이 말을 이었다. “근데 덕교리 측정망 자료를 보면 수위가 널뛰듯이 매일같이 요동쳐요. 가장 높을 때와 낮을 때 차이가 8.98m나 된다니까요.”

국가지하수정보센터 쪽은 “정밀조사를 하지 않아 단정하긴 어렵지만, 자연적 현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하수를 많이 뽑아내 일시적으로 수위가 내려갔다가 회복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센터 관계자는 다만 “생수업체가 들어서기 전의 기록이 없어 이 자료만으로 업체와의 관련성은 단정짓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의 반발에도 생수업체 쪽은 당장 증산 계획을 바꾸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리산산청샘물 관계자는 “최근 환경영향 조사를 시작했다. 결과가 나오면 취수량 확대가 지하수에 미치는 영향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주민 피해가 입증돼야 계획 변경이 가능하다”고 했다. 업체 쪽은 주민자치회와 마을 이장들로부터 증산 계획에 압도적 동의를 받았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생수업체가 보여준 삼장면 마을 이장들과의 지난해 11월 합의서에는 취수 증량에 동의하면 업체가 삼장면 모든 마을에 각각 1천만원씩 지원하고, 여기에 더해서 장학금과 체육대회 후원금, 생수 등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 마을 이장은 “매년 봄 주민 야유회를 가는데, 경비 마련이 쉽지 않다. 마을당 1천만원이 지원되면 비용 걱정은 없겠다 싶었는데, 주민들이 나중에 피해를 봤을 때 생수업체가 책임진다는 내용이 없더라. 그래서 서명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바닥난 지하수를 퍼올리려다가 고장 나서 버려진 펌프. 경남 산청군 삼장면 덕교리에는 이렇게 버려진 지하수 펌프가 곳곳에 널려 있다. 최상원 기자

경상남도 수질관리과 담당자는 “샘물 개발 임시허가는 취수를 위한 환경영향 조사를 사업자에게 허가하는 것”이라며 “사업자가 2년 안에 환경영향 조사를 해서 도에 허가 신청을 하면, 도는 낙동강유역환경청 심사를 거쳐서 허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경상남도는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최소 2년 반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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