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프랑스 파리 시청광장 앞에서 유대인 소녀에 대한 반유대주의 성폭행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프랑스에서 12살 유대인 소녀가 또래 소년들에게 반유대주의적 모욕을 듣고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한 뒤 ‘반유대주의’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건은 지난 15일(현지시각) 파리 북서쪽 쿠르브부아에서 벌어졌다. 12살 소녀는 이 지역 한 공원에서 12~13살 소년 3명을 마주쳤는데 이들 중 한 소년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고 한다. 소년들은 피해 소녀를 근처 건물로 끌고 가 종교를 물은 뒤 “더럽다”면서 반유대주의적인 욕설을 퍼붓고 때린 뒤 성폭행을 했다. 이들은 경찰에 신고하면 죽이겠다고 협박도 하며 범행 장면을 촬영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17일에 체포된 가해 소년들은 집단 성폭행, 반유대주의 모욕, 폭력, 살해위협 등의 혐의로 기소된 상태라고 프랑스 언론 르 몽드가 보도했다.

19일 프랑스 파리와 리옹 등 곳곳에서 반유대주의적 공격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민들은 “당신의 여동생일 수도 있었다”, “성폭행당한 유대인 소녀, 위험에 처한 공화국” 같은 펼침막을 내걸고 연대의 뜻을 밝혔다. 프랑스는 유대인 인구가 50만명가량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에 이어 유대인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정치권에서도 반유대주의적 범죄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프랑스 학교가 반유대주의 재앙에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니콜 벨루베 교육부 장관한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증오심의 표현이 교실에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학내 인종 차별과 유대인 증오에 관한 토론을 며칠간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벨루베 장관은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공포에는 한계가 없다. 성폭행과 반유대주의: 이 범죄의 모든 부분은 혐오스럽다”고 적었다.

특히 지난해 10월 가자전쟁 이후 관련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프랑스 유대인단체대표회의(CRIF)가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22년부터 2023년 사이 프랑스에서는 반유대주의 행동이 28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지난해 반유대주의 행위의 약 13%가 학교에서 벌어졌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전했다. 가브리엘 아탈 총리는 현지 언론에 “안타깝게도, 지난해 10월7일(가자전쟁 시작일) 이후 우리나라에서 반유대주의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며 “정말 비열하고, 참을 수 없으며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한겨레

김미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