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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서울 시내 한 은행 입구에 영업점 통합 이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한때 정부가 앞장서 권장하던 ‘관계형 금융’이 지역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기로에 놓였다. 관계형 금융에서 두각을 드러낼 것으로 꼽혔던 지방은행은 대형화에 나섰고, 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 등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피에프) 부실 덫에 빠졌기 때문이다. 관계형 금융은 재무제표 같은 숫자로는 드러나지 않는 우량한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장기적인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돈을 빌려주거나 지분을 투자하는 금융 기법을 가리킨다.


8년 새 9배로 늘었지만…

19일 금융감독원 설명을 들어보면, 지난해 말 기준 관계형 금융 잔액은 16조5천억원이다. 당국 집계가 시작된 2015년 말(1조8637억원)과 견주면 8년 동안 약 9배 성장했다. 최근 3년 동안 매년 약 2조원씩 불어났다. 시중은행 등 제1금융권에서 관계형 금융 방식으로 집행된 3년 이상 장기 대출과 지분 투자 잔액을 취합한 수치다.

수치만 보면 관계형 금융은 순항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무엇보다 관계형 금융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은행은 물론 저축은행과 같은 2금융권 사정은 딴판이기 때문이다. 이들 금융회사는 규모가 작고 지역 거점 영업에 특화된 금융회사인 터라 시중은행에 견줘 관계형 금융을 구현하기 좀더 용이한 업태로 평가받아왔던 터였다.

지난해 7월 대구 수성구 대구은행(현 아이엠뱅크) 전경. 연합뉴스

지역경기 침체에 지역밀착 대신 대형화 선택

50년 넘게 대구·경북 지역에서 영업해 온 대구은행은 올해 시중은행으로 전환했다. ‘아이엠뱅크’로 간판을 바꿔달고 ‘대형화’ 승부수를 띄웠다. 이에 따라 기존 지역과의 ‘밀착 관계’가 옅어지면서 영업 행태와 전략도 ‘지방은행 시절’ 때와는 완연히 달라질 거란 전망이 적지 않다. 아이엠뱅크의 40대 고객 ㄱ씨는 “아이엠뱅크가 전국적으로 잘 나갈수록 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은행이 대형화를 시도하는 등 변화를 꾀하는 건 관계형 금융이 쉽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비재무적인 정보를 따져 우량 차주를 선별한다는 관계형 금융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많다”며 “지역에는 (관계형 금융 기법으로 발굴할 만한) 우량 기업 자체가 적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지역 경기가 꾸준히 침체에 빠져 있는 상황은 관계형 금융의 위기를 높이는 핵심 요소다.

서울의 한 저축은행 간판. 연합뉴스

PF 덫 빠진 저축은행·새마을금고…당국도 주문하기 ‘난감’

피에프 대출 부실 등으로 업권 자체가 위기에 빠진 저축은행·새마을금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하익준 전 금융노조 정책실장(경제학 박사)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관계형 금융의 필요성이 더 강조됐지만, 지역 경기 부진으로 대출 부실이 누적되고 수익이 나지 않으면서 부동산으로 눈을 돌렸다”라고 말했다. 하 실장은 “관계형 금융에 필요한 연성정보는 사람과 네트워크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량지표보다 획득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대출로 외도했다가 대규모 부실로 이어지면서 이제는 직원 확충 등 관계형 금융을 강화할 여력 자체가 소진됐다는 뜻이다.

이런 까닭에 금융당국도 관계형 금융에 이전만큼 힘을 싣지 않는 분위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역 경기가 너무 안 좋으니까 과거 관계형 금융을 내세운 곳이 더욱 어려워졌다고도 볼 수 있다”며 “‘지역 경제라는 기반 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하라는 거냐’는 소리가 금융 현장에선 나온다”고 귀띔했다. 올해 들어선 관계형 금융 실적을 당국은 공개하지 않는다.

서울 명동거리에 붙은 대출 광고물. 연합뉴스

소상공인·개인사업자를 상대로 한 정책금융이 불어난 것도 관계형 금융을 위축시켰다는 진단도 있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장은 “코로나 이후 정책금융이 크게 강화되면서 민간 금융회사가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강화할 유인이 작아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기존에 은행과 거래하던 중소기업도 정책금융이 들어오는 순간 갈아타기를 반복한다. 수요자(기업 등)와 금융기관이 오래 관계를 유지할수록 ‘윈-윈’이라는 경험을 쌓기도 어려워졌다”이라고 말했다.

물론 관계형 금융의 필요성은 여전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수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연성정보를 바탕으로 한 관계형 금융 기법은 여전히 소규모 금융회사가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익준 전 실장은 “금융사가 적극적으로 인력을 채용하고 네트워크를 쌓으면 풍부한 연성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이들이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당국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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