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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15일, 3명의 사상자를 낸 충북 청주시 남이면 국도 25호선 절토사면 붕괴 사고 당시 모습.

국도 25호선 '절토사면' 붕괴… 피할 겨를조차 없었던 운전자

지난해 7월 15일, 충북 청주 오송에서 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하기 3시간 전인 새벽 5시 30분쯤.

시간당 25mm 안팎의 세찬 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충북 전역에 사흘 동안 내린 비의 양은 최대 350mm.

기상청은 이보다 1시간 앞선 새벽 4시 30분, "이미 재해가 발생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신속한 대피와 피난을 권고한 상황이었습니다.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그 날 새벽 5시 30분, 청주시 남이면 국도 25호선의 비탈면이 갑자기 붕괴 됐고, 순식간에 토사와 암석이 쏟아져 도로를 달리던 승용차 두 대를 덮쳤습니다.

미처 피할 겨를조차 없었던 20대 운전자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고, 2명이 다쳤습니다.

당시 토사에 묻힌 승용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난해 7월 15일 당시 폭우로 순식간에 붕괴된 절토사면의 모습

차를 몰고 출근하던 시민을 덮친 이 도로 비탈면은 2016년에 흙을 깎아 만든 '절토사면'이었습니다.

태풍이나 폭우 등에 붕괴할 위험이 커, 시설물 안전법상 정기적인 안전 점검이 필요한 제2종 시설물입니다.

사고 직후 경찰 조사에서 관련 공사를 발주했던 '청주시'나, 이후 도로 관리 주체가 된 '보은국토관리사무소' 모두 이 절토사면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사고를 키웠다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결국,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한 혐의로 관련 직원 6명이 지난 4월에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보은국토관리사무소는 현재 이 절토사면에 계단식 옹벽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준공 시점은 이달 말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이 사고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월, 겨울철 잦은 비에 무너진 충북 청주시 남이면 석판분기점 옹벽 모습

■ 근처 옹벽도 와르르… "임시 도로 설치한 뒤 복구 예정"

여름 호우에 3명의 사상자를 낸 절토사면에서 800m가량 떨어진 도로 분기점에서 지난해 2월, 비슷한 사고가 또 났습니다.

낮은 도로와 높은 도로를 연결하는 이른바 '램프 구간'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지난겨울, 잦은 비에 3m 높이의 도로 옹벽이 무너져 토사 50여 톤이 쏟아진 겁니다.

통행량이 적은 새벽에 발생한 붕괴 사고여서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지만, 출근길 도로가 통제됐고, 다른 도로로 우회해달라는 재난 안전 문자가 발송되기도 했습니다.

사고 발생 석 달여가 지난 지금, KBS가 다시 현장을 찾았습니다.

도로 통행을 위해 임시 보수한 옹벽 일대 모습 (지난 4일 촬영).

보은국토관리사무소는 KBS에 "해당 구간은 교통량이 많아 통제할 수 없는 만큼, 임시 도로(가도)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달 말까지 임시 도로를 완공한 뒤 그 이후에 옹벽 복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대를 지나는 운전자들은 "(천막) 속이 어떻게 돼 있는지도 모르겠고, 저렇게 천막만 쳐 놓으니 볼 때마다 또 사고가 날까 봐 불안하다"면서 마음을 졸이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암석과 토사 3천여 톤이 쏟아진 충북 충주시 산척면 도로 급경사지가 붕괴 현장

마을 고립시킨 '급경사지'"항구 복구는 아직"

지난 2월, 비슷한 시기에 충북 충주시 산척면에서도 도로 비탈면이 붕괴되 암석과 토사 3천여 톤이 쏟아졌습니다.

이번에는 급경사지였습니다.

급경사지는 급경사지법으로 관리되는 비탈면으로 도로와 철도, 공원시설 등에 부속된 경사 34도 이상의 자연 비탈면과 인공 비탈면을 모두 포함합니다.

당시 사고 직후, 추가 붕괴 가능성이 제기돼 안전 진단을 위해 복구 공사가 지연됐고, 마을 길목이 끊긴 근처 47가구 주민들도 고립 처지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일단 충주시는 긴급 예비비를 투입해 고강도 낙석 방지망과 방호시설을 설치한 뒤, 지난달 말부터 1차로를 부분 개통했습니다.

하지만 항구적인 복구는 정밀 설계 검토와 추가 예산 확보 문제로 해를 넘기게 됐습니다.

올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면 추가로 통제 가능성도 있어 주민들이 또 불편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지난 5월, 급경사지 일부가 무너진 충북 청주시 남일면 월오가덕로

지난달에는 충북 청주시 남일면 월오가덕로 급경사지에서도 일부 암석이 무너져 내려 도로가 긴급 통제됐습니다.

다행히 낙석이 방호 그물망에 걸려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이 급경사지는 청주시의 급경사지 관리 대상에 포함된, 지속적 점검이 필요한 C등급의 급경사지입니다.

이 급경사지 또한 정밀 점검이 끝나야 항구 복구가 가능한 상황입니다.

현재 충북에서 공식적으로 파악된 급경사지는 2,341곳입니다.

이 가운데 붕괴ㆍ낙석 등으로 국민 생명과 재산 피해가 우려돼 '붕괴 위험지역'으로 지정·고시된 곳이 254곳에 달합니다.

지난해 8월, 콘크리트와 토사 5백여 톤이 흘러내린 충북 영동군 국도 4호선 비탈면

■ "적은 비에도 낙석 위험… 유지·관리 문제 상존"

도로 절토사면과 급경사지가 잇따라 붕괴되는 사고, 왜 끊이지 않는 걸까요?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국지성 호우와 잦은 비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지반이 약해지는 만큼 토사 유실이나 낙석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는 건데요.

김동은 대전보건과학대학교 재난소방건설안전과 교수는 "특히 비나 눈이 암석이나 바위에 스며든 뒤 얼음이 됐다가 부피가 커지면서 틈의 공간을 벌리는 만큼, 작은 바람이나 비에도 낙석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유지 관리의 문제점도 거론됩니다.

KBS 재난방송 전문위원인 정창삼 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는 "이동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도로를 최대한 직선으로 짧게 설계하다 보니 산을 깎게 되고, 그만큼 늘어난 절토사면에 안전 보강 구조물을 설치하면서 점검과 유지 관리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래전 설치된 낙석 방지망 등 안전 시설을 교체하거나 개선해야 하는 문제부터 국지성 호우에도 버틸 수 있는 배수 시설 신설·증설, 시공을 위한 예산 확보와 유지 관리 인력 문제 등 낙석 방지를 위해 신경 쓰거나 고려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요.

꼼꼼한 재난 예방 계획과 예산 배정, 인력 확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언제든 급경사지 관리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그래픽: 오은지

■ 관리되는 급경사지만 20,128곳… "사각지대 발굴 시급"

상황이 이렇자 정부도 대책을 내놨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급경사지는 확인된 곳만 20,128곳인데요.

전체의 55%인 11,105곳이 도로 주변이고 주택 2,815곳, 철도 2,643곳 등입니다.

유형별로는 인공 비탈면이 전체의 85%인 17,160곳이고, 자연 비탈면은 2,968곳입니다.

지난 2월, 정부는 "국지성 집중 호우 등 이상 기후로 급경사지로 관리되지 않는 비탈면에서 사고가 잦다"면서, "인명 피해 예방을 위해 이 관리 사각 지대를 최대한 많이 줄여야 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도로나 택지 개발 사업으로 급경사지는 늘고 있는, 반면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전부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를 반영한 겁니다.

이달 초, KBS가 찾은 충북 단양군 매포읍의 한 도로 급경사지 위험지구

정부는 우선 실태조사를 통해 내년까지 급경사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급경사지 가운데 인공 비탈면의 기준을 높이 5m에서 3m로 강화하고, 실태조사의 범위와 방법이 명시된 '급경사지법 개정안'도 오는 8월부터 시행되는데요.

한국급경사지안전협회 등 전문 기관을 통해 붕괴 위험이 있는 급경사지를 발굴해도, 현장을 꾸준히 관리하고 점검할 지자체의 재난 부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최근 KBS가 급경사지 위험지구인 충북 단양의 한 도로 비탈면을 취재하면서 단양군 재난 담당 공무원과 현장을 살펴보는 과정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확인했는데요.

충북 단양군 재난 담당 공무원이 최근 지정된 급경사지 위험지구 현장을 살피고 있다

충북 단양군 1곳이 관리하는 급경사지는 140여 곳. 하지만 급경사지를 관리하는 직원은 1명뿐이었습니다.

곳곳에서 재난 발생 가능성이 커져 관련 부서 직원들이 비상 근무를 서야 하는 장마철에는 더더욱 관리와 점검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급경사지 관리를 위해 지자체가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소유주와의 보상 문제부터 낙석 방지 등의 안전 시설이나 배수로 설치를 위한 소유주 동의 문제가 불거지기도 합니다.

당장 지금으로선 공공기관이든, 소유주든, 주민이든, 현장이 위험한지 수시로 점검하고, 미리 도로 통제와 주민 대피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예보·경보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힙니다.

정창삼 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는 "지자체마다 예·경보 체계를 구축해 주민들에게 위험한 지점들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재난·재해 위험이 큰 지역은 사전에 신속하게 차단 조치한 뒤, 시민들에게 우회로를 이용하도록 알려주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예년보다 많은 비가 올 것으로 예보된 올 여름, 단 한 사람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도록 철저한 사전 대비와 점검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연관 기사]
[현장K] 순식간에 와르르…‘붕괴 위험’ 충북 254곳 (2024.6.4. 민수아 기자)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80130
[현장K] 관리 사각지대 급경사지 위험…안전 대책 필요 (2024.6.4. 송국회 기자)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8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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