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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정책 분석해 온 여성 전문가 3인의 평가
①MZ세대 가치관
②청년 내 격차
③여성 목소리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경기 성남시 에이치디(HD)현대 아산홀에서 ‘2024년 저출산고령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출산은 굳이 선택하지 않으려 해요. 경력단절 두려움이 있고, 저와 배우자 둘다 시간을 낸다 해도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해요. (정부가 보육시설을 늦게까지 운영하겠다고 하지만) 부모는 밖에서 오래 일하고, 아이도 보육시설·학교·학원 등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면 그게 과연 진정한 가족일까 싶어요.” (기혼·무자녀 33살 여성)

“인생의 선택지에 결혼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출산은,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는 상황이라면 버겁고 어려운 문제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의 불이익이랄지 출산 전후 몸의 고통, 결혼 후 파트너와 양육을 잘 분담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출산은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에요.” (대학 졸업을 1년 앞둔 24살 여성)
윤석열 정부가 19일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하며 ‘2030년까지 합계출산율(여성이 15~49살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 1.0명’ 회복을 목표로 범국가적 총력대응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육아휴직 급여 인상과 아빠 출산휴가 기간 확대, 출산 가구에 대한 저금리 대출 문턱을 대폭 낮추는 방향의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총망라해 내놨지만, 전문가들은 2030세대의 ‘비출산 선택’ 추세를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젊은 세대가 출산을 선택하도록 하기 위해선 무한경쟁 환경에서 성장한 이들의 출산 기피 사유와 청년 세대 내 격차, 여성들이 일터와 가족 안에서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구조적 문제에 대한 통찰과 답변이 포함돼 있어야 하는데 이번 대책에선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① ‘엠제트’(MZ) 세대의 특성

성평등 관점에서 역대 정부의 저출생 정책을 분석해온 전문가들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출산’ 결정권을 지닌 젊은 세대의 가치관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밀레니얼(M) 세대’(1980년대∼1990년대 중반 출생)가 부모 되기를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제트(Z)세대(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출생) 일부가 결혼 적령기에 진입하고 있다.

최은영 충북대 교수(아동복지학)는 정부가 저출생 대책 첫 머리로 꼽은 ‘일·가정 양립’이 20·30세대에겐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짚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엠제트(MZ) 세대는 어릴 때부터 소득·자산에 따라 삶의 질과 기회가 현저히 달라지는 걸 지속적으로 목격하면서, 인생을 어떻게 설계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삶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을지 고민을 달고 산다는 특성이 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일·가정 양립’이 아닌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엠제트 세대는) 생계를 위해 노동 시장에서 시간을 많이 뺏기면 출산·양육이 아닌 최소한의 여가를 선택한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존재하는) 노동 시장과 노동 시간이 바뀌지 않는데 모두가 일·가정 양립을 희망할 거라는 건 현재 젊은 세대에 맞지 않는 추정”이라고 짚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이번 대책 발표에 앞서 지난 3월 말∼4월 초 전국 25∼49살 시민 약 2천명을 대상으로 결혼·출산·양육 인식조사를 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자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61.1%였으나, 같은 답을 한 25~29살 여성 응답자는 34.4%에 그쳤다. 최 교수는 “정책수요 조사를 할 때 ‘가임기’ 기준으로 25~49살을 그 대상으로 많이 삼는데, 이보다 더 어린 연령대를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생각과 사회경제적 여건에 대한 미래 전망이 향후 출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2023년 청소년종합실태조사’를 보면, 13~24살 청소년 가운데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38.5%로 2017년(51.0%)에 견줘 12.5%포인트 하락한 상황이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현판. 연합뉴스

② 청년 세대 내 격차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저출생 대책이 결혼을 했거나, 결혼할 계획이 있는 청년들에겐 효과적일 수 있으나, 결혼·출산이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쪽을 설득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평가했다. 비슷한 연령대라도 청년들이 각자 처한 사회·경제적 차이가 있는데, 이번에 발표된 대책에선 세대 내 격차에 대한 세밀한 고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아이를 낳아 키우려는 욕구를 갖는 건 ‘미래는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며, 내 아이 삶은 나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을 때”라며 “무한경쟁 체제와 국가가 개인의 삶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불안정성과 불안은 아이에 대한 욕구도 앗아가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계층 간 이동도 어려워지면서, 경쟁에서의 승자그룹에 자녀를 안착시키기 위한 사교육비 증가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최은영 교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저소득층 청년들은 결혼·출산을 인생 설계에서 뺀 지 오래”라며 “자녀에게 제대로 투자를 해주지 않으면 어차피 승자그룹에 들어가지 못해 힘들게 살 것이므로 그냥저냥 자녀를 키우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발표된 저출생 정책이 이런 세대 내 격차를 해소하기는커녕 외려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우리나라의 일·가정 양립 정책(육아휴직 및 보육제도 등)은 이미 선진국 수준”이라며 “정책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직,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는 다수 청년들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등 제도) 이용이 가능하지 않고, 오히려 계층 간 격차를 확대시키는 정책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육아휴직은 고용보험 재원으로 운영되므로, 고용보험 가입자만 쓸 수 있다.

정부는 그런데도 청년 세대 내 격차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청년 일자리 창출, 수도권 집중 완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 구조적 요인에 대한 대응 노력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입장만 밝혔다.

③ 여성 당사자의 목소리

출산한 여성에 대한 불이익은 저출생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성별에 따른 불평등’ 현실을 직시하는 성인지적 관점을 반영하기보다 인구 늘리기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을 비판했다.

신경아 교수는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여성들에게 훨씬 더 많으므로 (저출생 대책이 효과를 보기 위해선) 이들이 일터와 가정에서 무엇을 고민하는지 대한 답변이 정책에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특히 “30대 성별 고용률은 큰 격차를 나타내며, 극심한 성별 임금격차도 지속되고 있다”며 “성인지적 관점없이 일·가정 양립 정책을 제시한 건 일터에서의 불평등과 성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정책의 실효성도 높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2023년)를 보면 20대 여성 고용률은 63.4%로 20대 남성(58.4%)보다 높지만, 30대 남성 고용률은 88.9%로 급증하는 반면 30대 여성 고용률은 68.0%로 증가폭이 크지 않다. 여성가족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여성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268만3천원)은 남성(413만7천원)의 65.0% 수준이다.

정부는 저출생 대응을 위해 경제·금융·종교·언론계, 지방교육청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가족친화적인 사회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협력 대상에 여성이나 노동계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더구나 이런 방식의 출산 장려책은 효과가 없을 거란 지적은 꾸준히 나온 바 있다.

전윤정 조사관은 “국가가 자녀 수를 계획, (출산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방식 자체에 반감도 있는 만큼 이런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2030세대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일정한 소득을 보장받으며, 안정적인 주거가 마련되고, 남녀 간의 일·가정 양립 격차, 여성의 장기간 경력단절 현상 등이 해소된다면 특별히 장려하지 않아도 결혼과 출산, 양육은 긍정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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