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대통령이 달라지지 않았다. 뭉개고 버틸수록, 채상병·김건희 특검은 윤석열 특검이 될 게다. 분기점은 진실과 위법이 가려졌을 때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6·15와 6·25. 한반도 평화와 전쟁을 상징하는 두 날이다. 2000년 6월15일 남북 정상의 첫 회담이 열렸고,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터졌다. 북 탱크가 밀고 내려온 개성·철원·금강산 길은 50년 뒤 경협·관광·이산상봉 길이 되었다. 지금, 그 육로엔 지뢰가 재매설되고, 철도 침목이 뽑히고, 벽이 쳐지고 있다. 그 하늘로는 전단·오물 풍선·확성기 소리가 오간다. 핫라인 끊기고, 두 적대국이 험담하며, 9·19 군사합의는 파기됐다. 6월 한반도는 ‘정전(停戰)의 땅’으로 되돌아갔다.

안보뿐인가. 민초들의 아우성이 차오른다. 금사과·금배가 가을까지 간다더니, 귤·복숭아·김에도 ‘금’자가 붙었다. 삼겹살 2만원이 뚫렸다. 버스·택시·난방·전기요금 다 올랐다. 물가·전셋값 뛰니, 씀씀이 줄고, 일자리·소득도 마르는, 참 모질고 긴 불경기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최고치로 치솟고, 한우 농가는 ‘소 반납 시위’를 잡고, 더워지는 바다에 양식장은 잠 못 잔다. 어찌 살라는 건가. 안전하고 먹거리 많은 곳에 새는 둥지 틀고 알을 낳는다. 사람도 다를 리 없으나, 오늘 이 땅은 그렇지 못하다.

난세다. 나라가 서 있다. 20%대 대통령 지지율은 두 달째 서 있다. 의·정 치킨게임은 출구 없이 120일째 서 있다. 한덕수 총리 사표를 물린 후 인사가 섰고, 1% 차로 좁힌 연금개혁이 섰다. 여야 대화가 섰고, 두 쪽 난 국회에선 민생 입법이 섰다. 국정 동력도 민심도 국회도 서버리니, 뭐 하나 매듭되는 게 없다. 부릉부릉 공회전만 하는 나라가 됐다.

그 이유는 삼척동자도 안다. 대통령이 달라지지 않았다. 총선 참패 후 대통령은 “국민 뜻 존중” “국정 쇄신” “민생 안정”을 약속했다. 지켜졌는가. 대놓고 대통령 거부권을 활용하라니, 여의도와 용산 사이에서, 소수 집권당은 설 자리를 잃었다. 야당·비판언론에만 칼 휘두르는 ‘검찰국가’도 그대로, 미래세대 부담이 될 세수 펑크에 부자감세로만 달려가는 것도 그대로다.

이 여름, 용산은 ‘불난 호떡집’이다. 의혹투성이 동해 석유가스전으로, 김정숙 여사 인도 방문으로, 중앙아시아 순방으로 화두를 돌리려 하나 힘이 부친다. 대통령의 첫 국정브리핑(동해 유전)을 성인 60%가 안 믿는다. 새 민정수석 얼굴이 파래졌을 게다. 세상은 채 상병과 김건희에 꽂혀 있다. “이런 일로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 해병대에 알려진 ‘격노’든, 여권에 흘러나온 ‘역정’이든, 대통령실이 인정한 ‘야단’이든 거기서 거기다. 공교롭게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에 전화한 그날, 이 사건은 180도 바뀌었다. 장관이 승인한 수사 이첩이 멈추고, 사단장 혐의가 빠지고, 해병대 수사단장이 항명죄로 몰렸다. 들통난 녹취와 증언이 묻는다. 외압 시발점이 ‘대통령’이냐고, 그 목적이 ‘임성근 구하기’였냐고. 김건희 명품백은 ‘외국인이 줘 문제없다’는 국민권익위 궤변이 다시 불질렀다. 선사후공(先私後公)하고 부끄러움을 잊은 성역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협치냐, 대치냐. 대통령은 기로에 섰다. 임기 내내 여소야대일 첫 대통령이 택할 국정은 협치뿐이다. 영수회담 정례화, 구동존이를 찾는 민생협의체 같은 것이다. 하나, 총선 후 야당의 특검법과 연금개혁안을 거부한 대통령의 착점은 반대다. 힘 대 힘으로 가보자는 쪽이다. 뭉개고 버틸수록, 채 상병·김건희 특검은 윤석열 특검이 될 게다. 분기점은 진실과 위법이 가려졌을 때다. 권력자의 악몽이라면, 세 가지가 아른거릴 게다. 벼랑 끝에서, 대통령이 절충·주도할 마지막 리더십은 ‘임기 단축’을 열어둔 개헌이다. 1987년 ‘6·29 선언’이 그랬다. 그 길까지 벗어났을 때, 1972년 미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거짓말로 사임했고,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농단과 국민적 분노로 탄핵됐다.

“진실을 마주하고 밝히는 힘이 있는 나라가 진정한 국민의 나라다.” 2022년 6월, 윤 대통령은 서해에서 아버지가 북한군에 피살된 후 ‘꿈과 봄날을 잃었다’는 아들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대통령의 말은 ‘아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 모든 게 멈췄다’는 채 상병 어머니에게도 보내져야 한다. 절절한 그 편지는 1주기(7월19일)까지 진실 규명, 지휘관 문책, 박정훈 전 수사단장의 명예회복과 선처를 갈구했다.

한 달 뒤다. 이 대치면, 정치는 출구 못 찾고 세상의 긴장은 계속 높아질 게다. 21일 국회 청문회에서, 이 사건의 ‘키맨’ 이종섭·임성근·유재은·박정훈이 공개 대좌한다. 마지막 답은 국가가 해야 한다. 대통령의 몫이다. 있는 대로 밝히고, 국민 눈높이로 참회·탈태하고, 책임 있게 결단해야 한다. 그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0897 조지호 "채상병 수사, 경북청이 증거·법리에 따라 결과 도출했을 것" 랭크뉴스 2024.07.28
30896 "로또? 담배나 사라" 핀잔 줬다고…5분간 80대 때려 '사망' 랭크뉴스 2024.07.28
30895 60대 기사가 몰던 택시 상가로 돌진…"브레이크 오작동" 주장 랭크뉴스 2024.07.28
30894 폭우 와도 태풍 불어도 출근한 'K직장인'…"직장인 60% 정시 출근" 랭크뉴스 2024.07.28
30893 신유빈과 임종훈이 승부처에 강한 비결 “우리 서로를 믿으니까” 랭크뉴스 2024.07.28
30892 노상방뇨 막겠다고 길거리 다닥다닥…파리 男화장실에 "충격" 랭크뉴스 2024.07.28
30891 방송법 2개 처리에 54시간… 나흘째 '필리버스터' 대치 이어가는 여야 랭크뉴스 2024.07.28
30890 폭염·폭우에 일하는 기사들…"새벽배송 안 받을래요" 소비자도 랭크뉴스 2024.07.28
30889 야 “친일 넘어 내선일체…정부,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에 꽃길 깔아” 랭크뉴스 2024.07.28
30888 티메프 피해자들, 오늘 큐텐 본사서 집회 연다 랭크뉴스 2024.07.28
30887 기쁨과 슬픔 뒤섞인 올림픽···역대 최소 선수단 꾸린 우크라이나 랭크뉴스 2024.07.28
30886 美 증시 기술주 폭락에…서학 개미, 엔비디아 '팔자'로 돌아서 랭크뉴스 2024.07.28
30885 [올림픽] IOC,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 올리고 문체부에 사과 서한 랭크뉴스 2024.07.28
30884 日 언론 “파리올림픽은 침몰하는 한국 상징” 조롱 랭크뉴스 2024.07.28
30883 정부 권고는 립서비스? “회사원 61% 태풍 뚫고 정시 출근” 랭크뉴스 2024.07.28
30882 '사격 국대' 김민경, 해설위원 깜짝 데뷔…"첫 메달 함께해 영광" 랭크뉴스 2024.07.28
30881 민주 당대표 충남지역 경선…이재명 88%, 김두관 9% 랭크뉴스 2024.07.28
30880 부산 20대女 옥상서 떨어져 사망…고압선 절단돼 606가구 정전 랭크뉴스 2024.07.28
30879 '불어 사랑'에 빠진 문승현 통일부 차관의 거짓말 [문지방] 랭크뉴스 2024.07.28
30878 연구용 자동차 운행한 대학원생에 '유죄' 판단…헌재서 구제 랭크뉴스 2024.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