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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의원 “정부가 국민-의사 사이 이간질”
환자들 “의사 무서워서 말도 함부로 못해”

대한의사협회(의협) 주도로 대학병원과 동네병원 일부가 휴진에 돌입한 18일 오전 11시쯤 서울 서초구의 한 내과 앞. 세 남매를 키우는 40대 여성 손모씨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손씨의 막내는 아침부터 감기 증세를 보였다. 손씨는 오전 내내 서초구 일대를 돌며 문을 연 병원을 찾았다. 동네 이비인후과와 소아과를 가봤지만 휴진으로 문이 닫혀 있었다. 세 번째로 찾은 내과도 마찬가지였다. 손씨는 “진료하는 병원을 찾으면 막내에게 병원으로 오라고 하려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세 살짜리 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소아과를 찾은 30대 여성 A씨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는 서울 서대문구 한 아파트 상가 건물 내 소아과 앞에 굳게 닫힌 철문을 보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A씨는 “아이가 미열이 있어 인근 소아과 한 곳을 먼저 찾았는데 문을 닫았다”며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에 진료를 보는 곳이 있다고 들었다”며 급하게 발길을 돌렸다.

의협의 총파업 선언으로 이날 서울의 동네 의원 다수가 휴진에 들어갔다. 이에 1차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국민일보 취재진이 서울 서대문구·강남구·관악구·종로구·영등포구 일대 동네병원 21곳을 돌아본 결과 16곳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복지부에 따르면 18일 휴진을 신고한 의료기관은 모두 1463곳이다. 전체 3만6371곳의 4.02%에 그쳤다.

그러나 의료 현장 곳곳에서 환자들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한 소아과 정문에 붙은 휴진 안내문에는 ‘젊은 의사들이 필수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루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영유아 검진을 위해 딸과 함께 이곳을 찾은 B씨는 문 닫은 병원을 보고 허탈해 했다. B씨는 “아내가 18일 오전 진료를 예약해서 방문했는데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며 “오늘 휴진한다는 안내 문자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가 의대 증원 등 의료개혁을 규탄하는 집단 휴진에 나선 18일 오후 울산 동구 울산대병원 본관입구에 한 환자가 휴진을 선언하며 시민들에게 드리는 문구를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40대 부부인 허모씨와 우모씨는 33개월 된 자녀와 함께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인근 한 소아청소년과를 찾았다. 부부는 “아이가 콧물감기 증세를 보여 늘 다니던 이비인후과를 가려고 했는데, 갑작스럽게 휴진이라는 문구를 보고 당황했다”며 “이 병원은 진료를 본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처음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애플리케이션(앱) 예약시스템과 문자메시지 안내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이 병원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리는 상황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서울 종로구 한 재활의학과가 입주한 건물 경비원은 “오전에만 어르신 3~4분이 병원에 왔다가 헛걸음을 했다. 예약이 미뤄졌다는 문자를 확인 못 한 분들인데 너무 안타까웠다”며 “원래는 일요일만 쉬는 병원인데 제가 근무한 이래 휴업한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18일 서울 관악구 휴진을 한 의원 앞 철문이 내려가 있다. 한웅희 기자

종로구 한 비뇨의학과 의원은 휴진 이유를 설명하며 문 앞에 ‘왜곡된 통계와 정보로 국민과 의사 사이를 이간질해 조용히 진료 중인 개원 의사를 악마화한 정부에 소심하게 항의하는 수단으로 하루 휴진한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안내문에는 ‘앞으로는 어떤 단체행동도 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리니 오늘 휴진을 이해해 주십사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적혀 있었다.

이 병원을 찾은 박모(35)씨는 “대형병원만 휴진하는 줄 알았다”며 “항의하는 의미에서 쉰다는 건데 아픈 환자들만 고생”이라고 말했다. 회사에서 짬을 내 병원에 온 박씨는 급히 다른 병원을 찾아 떠났다.

바로 옆 내과 의원을 찾은 최모(43)씨는 “저런 걸 붙여놓으면 환자들이 의사를 이해해 줄 거로 아는가 보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휴진에 동참하지 않는 병원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18일 서울 서대문구 한 소아과 의원 앞 굳게 닫힌 철문 앞에 휴진 안내문이 써있다. 김용현 기자

근처 소아과 의원을 찾은 환자들도 휴진을 뒤늦게 확인하고 발길을 돌렸다. 약국에서 만난 조모(80)씨는 “의사들도 고생이지만, 우리도 모두 고생스럽게 산다. 의사는 고생을 더 하는 만큼 돈을 더 벌지 않나”라며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데 본인들 밥그릇 챙기기보다는 봉사한다는 직업정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자들은 의사 무서워서 함부로 말도 못 한다. 환자들이 ‘데모’라도 하면 나라도 나가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병원을 떠난 의료진의 무책임함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컸다. 강모(68)씨는 “로스쿨 도입 때 법조인들 밥그릇 싸움도 이러지는 않았다. 모든 국민이 법률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지만, 의료서비스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라며 “친구 딸도 의대생인데, 선배들이 휴학하니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 위계서열이 군대보다도 센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씨는 “신참 전문의 월급이 1200만~1500만원 수준이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지방에 의사를 구한다고 몇 억원을 줘도 안 가지 않나. 의사를 늘려서 500만원 월급 받는 의사들이 생겨야 해결될 문제”라고 주장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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