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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권모 칼럼니스트

사실 윤석열 대통령이 동해 석유가스전을 발표했을 때 엄청난(?) 내용보다 그 발표에 대한 시민들의 차가운 반응에 더 놀랐다. 아마도 지지율 상승과 국면 전환을 기대, 대통령이 직접 ‘동해 석유가스’ 국정브리핑을 했을 터이다. ‘매장량 최대 140억배럴’, ‘2200조원 가치’라는 어마한 장밋빛 발표는 잠시 주식시장을 격동시켰을 뿐 지지율에는 외려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지난주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동해 석유가스전 발표’가 대통령 직무수행의, 긍정이 아닌 부정 평가 요인으로 지목됐다. 물리탐사 자료 분석을 수행한 미국 업체의 석연찮은 정체, 호주 에너지 대기업이 ‘장래성이 없다’고 철수한 사실 등이 드러나 대통령 발표 내용의 신뢰성에 의문이 커진 때문이다.

애초 윤 대통령이 예고도 없이 국정브리핑을 자처해 ‘동해 석유가스 대량 매장’을 발표했을 때부터 반향은, 대통령실의 기대와는 너무 달랐다. ‘세계 15위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데 환호와 설렘보다 불신과 냉소의 반응이 태반이었다. 시추 확인 없이 물리탐사 자료 분석에 기반한 ‘추정치’, ‘실패 확률 80%’ 같은 한계 때문만이 아니다. 대통령 발표가 나오자마자 내용을 따져보기도 전에 “뭔 헛소리냐”, “무슨 꿍꿍이냐”, “또 설레발친다”는 격한 반응이 온라인을 도배했다. 윤 대통령을 ‘양치기 소년’으로 만든 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가 소환되기도 했다. 발표 내용에 앞서 메신저인 윤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깊다. 애초 동해 석유가스전 발표를 담당 부처와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맡겼다면 이런 소동은 없었을 터이다. 최종적인 성공 여부와 별개로 ‘동해 석유’ 소동이 극명하게 드러낸 것은 윤 대통령이 봉착한 도저한 ‘신뢰의 위기’다.

윤 대통령의 ‘동해 석유가스전’ 발표 당일 온라인에 역술인 천공의 유튜브 영상이 빠르게 퍼졌다. 지난달 16일 “우리는 산유국이 안 될 것 같나. 앞으로 산유국이 된다”, “이 나라 밑에 가스고 석유고 많다”, “예전에는 손댈 수 있는 기술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다 있다”고 말한 영상이다. 대통령의 깜짝 발표를 의아해하는 사람들은 천공의 영상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대통령의 중대 발표가 천공의 해괴한 영상 하나로 희화화되는 현실, 이것만큼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바닥임을 보여주는 것도 없다.

윤 대통령이 처한 ‘신뢰의 위기’가 심각하다. 무신불립(無信不立), 공자는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고 했다. 극한의 여소야대 상황에서 신뢰의 위기까지 겹치면 윤 대통령은 국정을 온전히 이끌어갈 수 없게 된다.

이미 윤 대통령은 “거의 식물 대통령”이 됐다. 야당의 협조 없인 입법과 예산, 인사, 주요 정책 등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연금개혁 등 ‘3대 개혁’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야당과의 적극적인 협치로 돌파구를 모색해야 할 터인데 오히려 엇가고 있다. ‘거부권’과 ‘시행령 통치’로 돌파하겠다는 기세다. 입법과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은 시행령으로는 곁가지 정책만 추진할 수 있다. 한편에선 윤 대통령이 야당의 견제로부터 자유로운(?) 외교안보 분야에서 출구를 찾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근래 활발한 외교 행보가 예고편으로 읽힌다. 여하튼 어느 쪽도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라고 할 수 없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의 국정 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은 국민 신뢰와 지지밖에 없다. 갤럽 여론조사에서 총선 후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0%대에 고착되어 있다. 총선에서 혹독하게 심판당했는데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변화와 쇄신을 거부한 때문이다.

이제 윤 대통령은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여소야대의 위력, 국민 신뢰와 지지를 회복하지 못하면 정말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엄혹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동해 석유가스전 발표 같은 ‘한방’으로 역전을 고대했을 터이다. 앞으로도 국정이나 정책 등에서 깜짝 놀랄 ‘한방’ 어퍼컷이 계속될 공산이 크다. 혹여 그게 대북정책 등 국가 안위와 관련된 것에서 나오면 큰일이다.

하지만 신뢰가 바닥인 상황에서 아무리 큰 거 ‘한방’을 날려도 그게 지지율을 구하지는 못한다. ‘대박’ 이슈인 동해 석유가스전 발표가 반면교사다.

신뢰를 회복하려면 달리 길이 없다. 총선 직후 약속한 대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오만·독선·불통의 윤 대통령이 진짜 바뀌어야 한다.

양권모 칼럼니스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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