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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기획] 우리 안의 세계화 - 이주민
“한국 사람 애 안 낳으니 외국인 왔냐는 말 들어”
“저출생 구조 두고 이주민 채워 넣겠다는 인식”
베트남 다낭 해변에서 아기와 함께 사진을 찍는 엄마의 모습. 이 사진은 기사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게티이미지.

한국 사회에 ‘이민 확대 불가피론’이 확산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기존 보수정부와 달리 이민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 올해 비전문취업(E-9) 비자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 규모를 역대 최대인 16만5천명으로 늘렸고,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이민청 설립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우려도 나온다. 인구절벽 문제의 손쉬운 해법으로 이민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여러 이주민 당사자, 활동가, 전문가들을 만나 ‘이주시대 전환’을 앞둔 한국 사회의 선결 과제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민청 필요” 한목소리…속내는 달라

캄보디아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이수민(33)씨는 정부의 이민 확대와 이민청 설립이 “정말 필요하다”고 했다. 이씨는 “처음 한국말을 못할 때는 어디서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몰라서 힘들었다”며 “이민청이 생긴다면 이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초등학생 아들 둘을 키우는 그는 “육아와 교육에 돈이 많이 든다. 이민청을 통해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좋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민청이 신설돼도 그의 바람을 이뤄줄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밝혀온 이민청 설립의 목표는 이주민 관리·통제 효율화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필요한 외국인만 정부가 정교히 판단해 예측 가능성 있게 받아들이고, 불법 체류자를 더 강력히 단속하는 등 ‘그립’을 더 강하게 잡겠다. 인도주의, 다양한 문화 유입 목적이 아니라 국민의 현실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다”며 이민청 신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반 국민 인식도 다르지 않다. 지난 1월 이민정책연구원의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68%가 ‘출입국·이민관리청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는데, 이 가운데 66%는 이민청 필요 이유로 ‘체류 외국인 관리 강화’를 꼽았다.

다만, 이민청이 생기면 각 부처에 흩어진 이민정책을 한 기관에서 총괄하게 된다는 점 자체는 긍정적이다. 현재 이민정책은 여성가족부(결혼이민자 및 이주배경가족), 고용노동부(비전문취업 노동자), 행정안전부(외국인주민), 법무부(전문인력 및 재한외국인 전체) 등으로 나뉘어 있어 유사 업무 중복과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있었다.(이민정책연구원, 2023)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대표(왼쪽 넷째)가 지난겨울 경기 북부의 한 채소 농장에 있는 불법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이주민과 선주민의 밥상 나눔 모임인 ‘밥상 코이노니아’를 진행하고 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이민청을 어느 부처 아래에 두느냐도 고민해볼 대목이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대표는 “법무부(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그동안 해온 일은 이주민 감시와 처벌이다. 그 밑에 둔다는 건 이주민에 대한 통제만 강화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법무부 제주출입국·외국인청장 등을 지낸 김도균 제주한라대 특임교수도 “이민청을 법무부 산하로 고집할 필요는 없다”며 “지방시대를 주도하는 행안부나 정부가 신설하겠다고 한 저출생대응부가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다”고 했다.

이주민 사회 ‘내부 식민지’ 전락할 수도

인구절벽을 해결할 도구로 이주민을 바라보는 인식 변화가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크다. 저출생을 불러온 사회구조에 대한 고민이나 개혁 없이 이주민만 늘려서는 문제를 풀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달성 대표는 “지금 정부 정책은 (문제가 되는 여러) 구조는 그대로 두고 가장 밑바닥에 이주민을 더 많이 채워 넣겠다는 것”이라며 “이런 인식의 전환 없이 만들어진 이민청은 결국 ‘내부 식민지 관리청’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내국인들이 겪는 문제에서 이주민들도 자유롭지 않다. 긴 노동시간과 과도한 육아비용 등으로 출산과 육아가 힘겨운 사회에서는 이주민 역시 아이 낳기를 꺼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1년 다문화가정 출생아 수는 1만4322명으로 전년 대비 12.8% 줄었다. 5년 전(1만8440명)보다 20% 넘게 감소했다.

캄보디아 출신 결혼이주여성 이수민(앞줄 오른쪽 둘째)씨와 이주여성들로 이뤄진 맥파이스 어머니 농구단 회원들이 지난 4월18일 서울시 용산구 문배동 용산구문화체육센터 대강당에서 연습을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농구발전연구소 제공

정부가 고용허가제라는 불합리한 이주민 고용제도를 유지한 채 숫자만 늘리는 것도 문제란 지적이 나온다. 사업주 허가 없이는 일터를 옮길 수 없는 고용허가제 아래에서 사업주는 안정적으로 인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이주노동자는 열악한 노동환경도 참고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한윤수 소장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두는 (고용허가제 같은) 불합리한 제도부터 고쳐야 한다”고 했다. ‘우리 안의 인종주의’를 쓴 이주민 인권 활동가 정혜실 단원에프엠(FM) 본부장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고 아이를 낳아줄 도구화된 존재로 이주민을 바라보고 ‘우리가 필요하니까 체류 기간을 늘려준다’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구조 개혁이나 노동자의 처우 개선은 없이 이주민을 저임금으로 착취하고 학대하고 부려먹도록 우리를 가해의 공모자로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아시아권 이주 희망자들, 한국 기피 심화

이수민씨는 9년 동안의 한국 생활을 떠올리며 “좋은 한국인들이 많다”고 했다. 한국에 정착한 이씨 덕분에 두 동생이 한국에 와 일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고마운 나라”지만 “(이주민을) 깔보는 시선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제가 한국말을 못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한국 사람들이 아이를 안 낳고 인구가 부족하니까 외국인을 데려왔나 보다’라며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우리는 아이를 낳고 힘든 일을 대신 해주러 온 게 아니라 행복을 찾아서 온 똑같은 인간”이라고 했다.

이주민에 대한 이런 배타적인 태도는, 외국에서 한국인에 대한 기피, 한국행 외면으로 이어진다. 임금 착취, 여권 압류 등 차별이 만연해 있다는 이유로 지난 1월 한국으로의 계절근로자 송출을 중단한 필리핀 사례가 대표적이다. 2023년 1분기 유엔 국제이주기구(IOM) 조사를 보면, 일본이 1위로 조사된 베트남인이 선호하는 이주 희망 국가 순위에서 한국은 10위권 밖이었다. 한국 내 체류자 29만7999명으로 중국(96만2191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베트남에서조차 최근 한국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다는 얘기다.

지난 1월16일 저녁 경기도 포천의 한 시설채소 농장에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찬물로 그릇을 씻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이주민에 대한 배타적 시선은 공동체 내부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이 있는 1세대와 달리 자녀 세대는 자신들 또한 거주국 국민이라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주민과 토착민 사이 갈등은 세대를 거치며 더욱 강해진다는 얘기다. 실제 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이주민 2세대와 3세대가 부모 세대부터 이어져 온 차별에 반발하면서 폭동이 일어나는 등, 이주민과 토착민 사이 사회통합이 국가적 문제로 떠올랐다.

한국에서도 이주배경 주민의 변화 조짐은 뚜렷하다. 여성가족부 ‘2021년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를 보면, 다문화가정 자녀의 고등교육기관(대학 이상) 취학률은 40.5%로 전체 국민 평균(71.5%)보다 30%포인트 이상 낮다. 대학 진학 희망 비율은 85.3%에 달했는데 실제 취학률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더욱이 2018년 조사(49.6%) 때보다도 10%포인트 가까이 낮아졌다. 국내에서만 성장한 자녀 비중이 2018년 83.8%, 2021년 90.9%로 증가하는 등 토착화 현상은 강해졌지만, 같은 기간 불평등은 되레 심해진 것이다.

결국 이민정책의 중장기적 관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법인 지평 산하 지평법정책연구소 이춘희 선임연구위원은 “이민은 국가 정체성의 재구성과 같은 ‘사회적 안보’ 문제를 낳기 때문에 근시안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이민정책의 핵심을 출입국 및 체류 관리, 외국인 인력 활용, 인권(복지) 및 사회 통합 중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 및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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