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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 부진엔 급속충전기 부족도 한몫
에어컨·고속 주행에 배터리 방전 가속
시중 설치된 충전기 88.8%는 ‘완속’
완충하려면 9~10시간 정도 걸려
한국의 전기차 제조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6, 기아 EV6·9에 쏟아지는 글로벌 시장의 좋은 평가들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올해 들어 한국산 전기차 판매가 부진하다. 업계에서는 전기차가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전기차는 왜 캐즘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것일까. 시승해보니 단박에 답이 나왔다.

코나 일렉트릭. 현대차 제공


얼마 전까지는 해도 전기차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강력한 출력에 멋진 배기음을 갖고 있어야 차답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아이오닉 5·6 등 전기차를 잇따라 시승하면서 전기차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뀌었다.

도서관처럼 조용한 아이오닉 5에서 잭슨 브라운의 ‘The Load Out/Stay’를 듣는 순간 멋진 엔진음과 배기음에 대한 ‘추앙’이 사라져 버렸다. 출력은 또 어떤가. 아이오닉 6 롱레인지 AWD 모델만 해도 3ℓ 6기통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 만큼의 출력이 나온다.

최근 시승한 코나 일렉트릭도 다르지 않았다. 엔진 소음이 없고, 고속도로주행보조(HDA)를 켜면 차가 알아서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밟아 주니 운전에 대한 스트레스도 덜했다. 이 정도면 굳이 엔진 차나 하이브리드차를 구매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문제가 터진 것은 1시간30분쯤 고속도로를 달려 경유지에 도착한 뒤부터였다. 전기차에 밥을 먹이는 ‘충전’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경유지 충전기는 일반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충전기 업체에 전화로 문의하니 회원 가입을 하거나 관련 앱을 스마트폰에 깔고 비회원 자격으로 충전을 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번거롭다고 생각해 경유지를 떠나 다른 충전기를 찾기로 했는데, 이 게 화근이 됐다. 오후가 되면서 기온이 급격히 올라가 에어컨을 켰더니 주행 거리가 뚝 떨어진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 안팎의 빠른 속도로 달린 데다 회생 제동을 할 기회가 없어 배터리 방전이 더 빨랐던 것 같았다.

경유지를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충전하라는 경고까지 계기판에 떴다. 심장이 철렁 내려 앉는 것 같았다. 주행 가능 거리를 확인하니 집에 겨우 도착하거나, 운이 없으면 길바닥에 차를 세워야 할 판이었다. 동승석에 앉은 승객이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최악의 경우는 피해야 했다. 바깥 기온이 30도를 웃돌았지만 에어컨을 껐다. 금세 찜통이 된 실내. 도저히 운전할 수 없어 창문을 열었더니 바람이 쏟아져 속도를 높이기가 어려웠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70~80㎞로 주행할 수는 없어 국도로 빠져 충전소를 찾았다. 하지만 급속충전기가 있는 곳은 드물었다. 동승석 승객이 충전기 업체에 문의하니 분당구청에 급속충전기가 있다는 안내를 해주었다.

방전량은 최소화하고, 회생 제동량은 최대치로 끌어내는 운전으로 급속충전기가 있는 분당구청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곧바로 플러그를 꽂고 충전을 할 수가 없었다. 급속충전기 2대 중 1대가 고장 나 있었고, 그나마 온전한 충전기 앞에는 포르쉐 전기차 타이칸이 주차해 있었다.

급속충전기에서 충전 중인 아이오닉 5 N. 현대차 제공


또 다른 급속충전기를 찾기 위해 충전소 안을 돌아 봤지만 모든 충전기 공간에 차가 주차돼 있었다. 타이칸이 충전을 마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충전 중인 타이칸이 부러웠다. 이 차는 충전플러그가 어디에 있나 궁금해 다가선 순간 충전 플러그가 충전기에 연결돼 있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됐다. 충전을 빙자한 급속충전기 앞 불법 주차였던 것이다.

쇠망치로 차 유리창을 박살 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다행히 고장 난 급속 충전기 자리가 비어 차를 대고 플러그를 옆으로 빼내 충전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충전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충전과 관련한 자세한 안내가 충전기에 붙어 있지 않았다. 신용카드를 갖다 대도, 비회원 자격으로 충전을 하려 해도 기계가 반응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충전기를 살펴보다 무심코 어떤 버튼을 눌렀는데, 그제야 모니터가 작동하더니 신용카드를 인식하고 충전이 됐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 이런 것일까. 완충까지 1시간30분이 걸린다는 안내가 떴다. 한 시간 이상 충전을 했더니 퇴근 시간이 돼 길이 밀렸다.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내연기관 차량이었으면 5분 만에 기름을 채우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 기분 좋게 달릴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전기차의 잘못은 아니다.

충전기 용량에 따라 다르지만 급속충전기는 30~40분 정도 충전하면 배터리 용량의 50% 정도는 채울 수 있다. 주행거리로는 200㎞ 안팎이 될 것이다. 하지만 완속충전기는 완충하려면 9~10시간 정도가 걸린다. 급하게 충전이 필요한 경우엔 무용지물인 셈이다.

문제는 시중에는 설치된 충전기 대부분이 완속충전기라는 점이다. 17일 환경부 등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전국에 설치된 완속충전기는 31만1951기로 전체 충전기의 88.8%를 차지한다. 반면 급속충전기가 3만9482기로 11.2%에 불과하다.

이처럼 급속충전기가 부족하다 보니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에서는 일반 전기차 운전자들이 급속충전기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에는 1t 전기 트럭이 보급되면서 고속도로 휴게소 급속충전기를 거의 점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부는 여전히 완속충전기 보급에만 공을 들이고 있는 것 같다. 정부가 전국의 충전기를 2030년까지 123만대 설치할 예정인데, 이 중 급속충전기는 14만5000대뿐이다. 무용지물에 가까운 완속충전기를 추가 설치 충전기의 88%에 이르는 분량만큼 깔겠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대부분의 대형마트에는 전기차 충전시설이 갖춰져 있다. 그런데 대다수가 완속충전기다. 45분 동안 쇼핑한 뒤 주행거리를 확인했더니 고작 4㎞가 늘어나 있었다. 이런 충전기를 도대체 왜 설치하는지.

환경부·국토교통부 장관이 전기차를 타다 고속도로에서 방전 일보 직전까지 가봐야 급속충전기가 늘어날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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