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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네스 모슬러(강미노) |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정치학과 교수

독일 대학에서 한국 정치사 수업은 교수와 대학생 모두에게 흥미진진하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로 인한 비동시성의 동시성에서 비롯된 갈등과 긴장이 한국사 강의실을 흔들기 때문이다. 특히 한-일 관계에 대한 내용이면 더욱 그렇다. 일단 학생들은 1907년 일본이 조선을 완전히 ‘병합’하기 직전, 고종 황제가 이를 막기 위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조선의 정당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당시 약육강식 시대정신 속에서 일제의 교묘한 외교 전술로 국제사회가 조선의 요청을 외면하는 바람에 조선이 침략자 일본의 칼날에 고스란히 넘겨졌다는 사실에 학생들은 충격을 받는다.

1945년 조선이 해방되고 20년 뒤인 1965년 한-일 기본조약 체결로 두 나라 외교관계가 공식적으로 정상화됐지만, 사실 한국은 어느 정도의 보상금을 받는 대신에 일본은 식민지와 전쟁 범죄에 대해 일종의 면죄부를 받은 셈이 됐다. 이는 기본조약 체결 4년 전인 1961년 박정희를 비롯한 군인들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강압에 의해 전복’하고 군사 독재정권을 수립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후의 공로와는 별개로, 일제 때 일본군에 입대한 이력까지 가진 ‘내란의 수괴’가 1961년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당시 형법(87조)에 따라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받기 충분했지만, 오히려 권력을 장악하고 시민의 열정적 저항을 짓밟은 채 또다시 한국에 불리한 일본과의 수교를 강행했다. 특히 이 조약이 오늘날까지도 진정성 있는 반성을 거부하는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을 정당화하는 법적 근거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더욱 어처구니없어 한다. 그때부터 딱 50년이 지난 2015년,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하필 그 독재자의 딸이 일본 정부와 ‘위안부’ 피해자 보상과 모든 청구권의 해소에 대한 합의를 했는데, 당시 예상되는 시민들의 거센 저항을 아예 피하기 위해 처음부터 일본과의 협상을 비밀로 진행시켜 결과만 발표하는, 즉 한 단계 더 교묘한 수법을 동원했다.

이처럼 해방 이후 두번이나 한-일 간의 역사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드는 권력자의 착오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도 역시 이 자충수 외교를 계승하고 있는 모양이다. 2023년 한국 정부는 일제 강제 징용에 관한 이른바 제3자 변제를 일본과 합의했는데, 이는 일본의 전범 기업이 아닌 한국 기업들이 자금을 대주는 기금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하는 대담한 외교정책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이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보상을 스스로 해준다”는 해외 언론들의 신문 헤드라인을 본 학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 대목에서 학생들과 함께 ‘절반 이상 찬 물컵’이라는 현 정부의 대일 외교 전략에 대해 살펴본다. 즉, 한국 정부가 먼저 호의를 베풀어 일본이 잔의 나머지 반쪽을 채우도록 유도하는 외교전술이다. 이러한 한국의 대일 외교 전략에 결국 일본 쪽은 수정주의 교과서를 계속 발간하고, 역사를 왜곡한 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계속 유지하거나 등재 신청하고, 야스쿠니신사의 전범을 공식 추모하고,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는 등 한국 쪽을 배려하거나 양보하는 최소한의 징후조차 보이지 않는다. 즉, 일본은 나머지 절반의 물을 채우기는커녕 몇 방울의 물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유리잔에 침을 뱉기만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놀라운 것은 현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 라인야후 네이버 지분 매각과 관련한 일본 정부의 부당한 압박, 정부 출판물인 ‘일본개황’에서 일본의 역사 왜곡 언급 사례에 대한 기록 삭제 등 일본의 악행을 봐주고 정당화까지 하는 모양새다.

한국 정치사 공부는 흥미진진하지만, 한국 정부의 반복되는 대일 자충수 외교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비극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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