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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악수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email protected]


이춘재 |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지휘한 ‘살권수’(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당시 문재인 정권 사람들은 ‘검찰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수사할 만한 사안이 전혀 아닌데도 오로지 정권에 타격을 가할 목적으로 검찰이 가진 권한을 악용한다고 본 것이다. 대표적인 게 2021년 11월 ‘탈원전 수사’다.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2019년 12월 월성 원전 1호기를 폐쇄한 것이 불법이라며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을 기소한 사건이다. ‘조국 사태’ 이후 문재인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강하게 충돌하던 때였다. 정치적 ‘사심’이 가득한 검찰총장이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검찰을 사유화한다는 게 당시 친문 인사들의 인식이었다. 하지만 ‘검찰 쿠데타론’은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여론은 검찰이 수사할 만하니까 나선 게 아니겠냐고 여겼다. 검찰 수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쿠데타라고 비난하는 여권에 오히려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런데 지난 5월9일 선고된 대법원의 산업부 공무원들에 대한 무죄 확정판결은 탈원전 수사를 검찰 쿠데타로 의심할 만한 충분한 근거를 제공한다. ‘윤석열 검찰’은 문재인 정권이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압박해 2022년까지 가동하기로 돼 있는 월성 1호기를 안전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앞당겨 폐쇄하도록 한 것을 직권남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월성 1호기는 2012년에 이미 설계수명이 끝나 박근혜 정권에서 가동을 10년 연장한 상태였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로 노후화된 원전의 안전에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은 날로 고조됐다. 지역 주민들은 월성 1호기 가동 연장에 매우 불안해했다. 원전 폐쇄는 이런 민심을 반영한 정책이었다. 검찰이 섣불리 수사에 나섰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었다.

이때 검찰 도우미로 나선 게 감사원이다. 감사원은 월성 1호기 폐쇄 과정을 감사하면서 산업부 공무원들이 핵심 자료를 폐기하면서 감사를 방해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감사원장이었던 최재형 전 국민의힘 의원은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감사 방해가 이렇게 심한 건 처음 겪어 본다”고 설레발을 쳤다. 그는 나중에 윤석열 검찰총장처럼 대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한 첫 감사원장이 된다. ‘감사 방해’라는 프레임은 산업부 공무원들이 마치 대단한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했다. 보수언론들은 ‘얼마나 불법을 저질렀길래 관련 자료를 몰래 없앴나’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검찰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추미애 장관에 의해 직무배제됐던 윤 총장은 법원의 ‘도움’으로 복귀하자마자 자료를 삭제한 산업부 공무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결재했다. 그는 앞서 대전지검을 방문해 “고생하는데 등 좀 두드려 주려고 왔다”며 탈원전 수사를 독려했었다.

하지만 산업부 공무원들에 대한 무죄 확정판결은 ‘감사 방해’가 조작된 것임을 암시한다. 사법부는 오히려 감사원이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위법 감사’를 했다고 판결했다. 원심인 고법 재판부는 산업부 공무원들이 무단 폐기했다는 자료가 모두 산업부 서버에 저장돼 있는데, 후임자를 위해 피시(PC)에 있는 개인 자료를 삭제한 걸 어떻게 감사 방해로 처벌할 수 있겠냐고 일갈했다. 해당 공무원은 삭제 전에 모든 자료를 산업부 서버에 등록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런 사정을 모두 알았을 텐데도 기소를 강행했다. 왜 그랬을까. 정권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 말고는 제대로 설명이 안 된다.

탈원전 수사의 불순한 의도는 백운규 전 장관 등의 재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검찰은 백 전 장관과 정재훈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의 100쪽에 이르는 공소장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월성 1호기 폐쇄로) 한수원에 1481억원 상당의 손해를 가하고, 국가로 하여금 이 손해액 상당을 보존해야 할 의무를 면하는 재산상 이득을 취득하게 했다.” 원전을 어떡해서든지 하루라도 더 돌려 돈을 벌려는 공기업 경영진에 국가 전체에 이익이 되는 결정을 하도록 압박한 것이 범죄라는 취지다. 국민의 안전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공기업의 일탈을 막는 건 공직자의 당연한 의무 아닌가. 아직도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이 사건은 검찰이 신청한 증인만 100명이 넘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사이 ‘성공한 쿠데타’에 참여한 검사들은 잘나가고, 기소된 이들의 고통은 계속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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