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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다이소 매장 계산대 앞 모습. 사진=일본 다이소 홈페이지

일본의 이른바 ‘100엔 숍’의 연간 매출이 지난해 처음으로 1조 엔을 돌파했다. 원화로 9조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100엔 숍은 대부분 상품을 100엔(약 900원)에 판매해서 붙은 이름이다. 일본 디플레이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저가 소매업이다. 매출 1조 엔은 100엔짜리 상품 100억 개를 팔아야 달성할 수 있는 실적이다. 일본에서 높은 물가상승률이 이어지면서 ‘절약형 소비’가 확대된 영향이다.
절약형 소비 확대
일본의 100엔 숍은 한국에선 다이소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일본에는 종류가 더 많다. 업계 1위 다이소에 이어 세리아, 캔두, 와츠 등이 유명하다. 일본의 신용정보회사 데이코쿠데이터뱅크가 다이소 등 100엔 숍 업계 매출을 추산한 결과 2023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 기준 전년 대비 5% 증가한 약 1조200억 엔으로 집계됐다.

일본의 100엔 숍 시장은 10년간 무섭게 성장했다. 매출은 2013년 6530억 엔에서 10년 만에 1.6배로 늘었다. 점포 수는 지난해 기준 약 8900곳으로 10년간 1.5배 증가했다.

최근 100엔 숍이 급성장한 것은 일본이 오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물가가 꾸준히 오르는 반면, 소득은 그만큼 늘지 않으면서 국민들의 지갑이 얇아졌기 때문이다. 상품 가격이 변하지 않는 100엔 숍이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22년 4월 이후 올해 4월까지 한 차례도 2%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소비자물가가 3.1% 올라 1982년 이후 41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올해 4월엔 2.2% 상승하면서 2년 8개월 연속으로 전년 동월을 웃돌았다.

반면 임금 상승폭이 물가상승에 미치지 못하면서 실질임금은 2년 연속 감소했다. 지난해 물가상승을 반영한 실질임금은 전년 대비 2.2% 줄었다. 마이너스 폭은 2022년(-1.8%)보다 0.4%포인트 더 커졌다.

일본의 올해 1분기(1~3월) 성장률도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5%, 연율 기준 1.8% 감소했다. 1분기 일본의 성장률 부진은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개인소비가 위축된 영향이 컸다. 개인소비는 전분기보다 0.7% 감소해 네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네 분기 연속 개인소비가 감소한 것은 2009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쇼크’ 이후 15년 만이다.
다이소 등 실적 상승
일본 100엔 숍 시장을 이끄는 곳은 다이소다. 일본 다이소를 운영하는 곳은 다이소산업이다. 본사는 히로시마현 히가시히로시마시에 있다. 작년 매출은 5891억 엔, 점포는 5350개로 전체 100엔 숍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다이소에 이어 업계 2위인 세리아도 만만치 않다. 점포 수는 약 2000곳이다. 지난해 매출은 5% 증가한 2232억 엔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2328억 엔으로 전망된다. 순이익은 지난해 98억 엔에서 올해 99억 엔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세리아는 도쿄증시 상장사다. 주가는 올해 들어 지난 3월까지 크게 올랐다가 4월부터 주춤한 모습이다. 그래도 연초 이후 6월 11일까지 5%가량 올랐다.

캔두는 지난해 매출 803억 엔, 올해는 850억 엔으로 추정된다. 와츠는 593억 엔에서 602억 엔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캔두 주가는 올해 들어 6월 11일까지 16%가량, 와츠는 12%가량 상승했다.
다이소 창업자는 누구
일본 다이소를 창업한 사람은 야노 히로타케(矢野博丈) 전 다이소산업 회장이다. 지난 2월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201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이후 차남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야노 전 회장은 1943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전쟁 후 아버지의 고향인 히가시히로시마로 귀국했다. 결혼 후 처가의 방어 양식업을 물려받았다가 부도를 내고 700만 엔의 빚을 진 채 야반도주했다. 도쿄에서도 아홉 번이나 직장을 옮겨 다닌 끝에 1972년 생활용품을 트럭에 싣고 다니며 파는 ‘야노상점’을 차렸다. 도산했거나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의 재고상품을 싸게 사다가 싼값에 파는 형태였다.

야노 전 회장이 처음부터 100엔 균일가로 상품을 팔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고객들이 ‘이건 얼마예요. 저건 얼마예요’라고 계속 물어보는데 너무 바빠서 ‘모두 100엔’이라고 말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고객을 함부로 대한 것은 아니다. ‘하나에 100엔이라도 다섯 개를 사면 500엔이고 1년에 다섯 번을 오면 2500엔, 그렇게 10년이면 2만5000엔어치나 사는 헤비 유저’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특히 고객들이 ‘싼 게 비지떡’이라고 흉보는 데 충격을 받고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좋은 물건을 팔겠다’는 신념으로 원가 98엔짜리를 100엔에 팔기도 했다.

그는 1977년 다이소산업을 창업하고 1987년부터 일본 곳곳에 ‘100엔 숍 다이소’를 열기 시작했다.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진 뒤 장기불황 국면에 접어든 1990년대 후반에 급속도로 사세를 확장했다. 가만히 앉아 성장한 것은 아니다. 그는 경쟁업체 세리아, 캔두 등이 등장하자 “다이소는 곧 망할 것”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 위기감으로 상품의 다양화를 추진해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다이소는 유명하다. 운영사는 아성HMP다. 2001년 일본 다이소산업에서 지분 투자를 받고 한국 다이소를 열었다. 작년 12월 다이소산업의 지분 전량을 5000억원에 사들이면서 관계를 정리했다.
이젠 300엔 숍이 대세
최근 100엔 숍에는 100엔을 넘는 상품이 늘고 있다. 100엔 숍 상품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생산되는데 엔화 약세로 100엔에 팔 수 없는 상품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물가 상승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100엔 숍 업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다른 업계가 가격 전가를 진행하는 가운데 100엔을 고집하면 그만큼 소비자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고 손해를 볼 수는 없다는 것이 딜레마다.
그래서 100엔을 110엔, 120엔으로 올리기보다는 100엔짜리 상품은 일정 부분 유지하면서 부가가치를 높여 300엔짜리 상품도 내놓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100엔짜리와 300엔짜리 상품의 구성비를 조정하는 것이다. 상품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실제로 ‘300엔 숍’은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2019년 약 400곳이었던 300엔 숍은 지난해 1100곳으로 4년 만에 2.8배가량 급증했다. 다이소의 300엔 숍 ‘스탠더드 프로덕트’가 대표적이다. 2021년 도쿄 시부야에서 시작된 다이소의 새로운 브랜드다. ‘조금 더 나은 것이 훨씬 더 낫다’를 브랜드 콘셉트로 삼았다.

비용 절감을 위한 점포의 무인화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세리아는 지난해 말까지 전국 직영점 전체에 셀프 계산대를 도입했다. 엔저에 따른 원가 급등 부담을 낮추면서 일손 부족 문제도 함께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다른 업계와 손을 잡고 사업 확장을 노리기도 한다. 캔두는 일본 유통 대기업 이온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이온그룹의 마트, 슈퍼마켓 등 전국의 다양한 유통망을 활용하고 상품도 공동 개발하겠다는 전략이다.

도쿄=김일규 한국경제 특파원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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