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세계 하수도 흐르는 의약품, 생태 위협
고통받는 물고기… 성전환·약물중독 증세 등
“폐수처리시설 정비·약물 설계 재고해야”
브라운송어.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pixabay

필로폰(메스암페타민)에 중독돼 금단 증세를 보이는 브라운송어. 항우울제 영향으로 천적에 대한 겁을 상실한 민물 농어. 피임약을 먹고 성전환을 일으킨 피라미. 지금 세계 곳곳 하천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가 먹는 유기체(물고기)와 전 세계 하수도에서 활성 의약품 성분이 발견됐다”는 연구 결과가 지난 5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속가능성’에 발표됐다. 최근 전 세계 104개국 1053개 하천 중 43.5%에서 인체에 해로운 수준의 약물이 한 가지 이상 검출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약물에 의한 하천 오염이 몇몇 지역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2019년 킹스 칼리지 런던 연구진은 영국 시골 지역 5개 하천에 사는 민물새우에서 코카인, 케타민 등 마약류 성분을 검출했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세계 각지 하천에서 검출된 약물의 출처는 대부분 불법 약물과 의약품 폐기물이다. 연구에 참여한 마이클 버트럼 스웨덴 농업과학대학 교수는 “적절한 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버려진 의약품, 체내에서 덜 분해된 채로 배출된 마약 성분 등이 환경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생에 유출된 화학성분이 자연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미 수차례 반복된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캐나다 수산해양부가 2007년 진행한 연구에서는 미량의 피임약 성분 ‘합성 에스트로젠’에 장기간 노출된 수컷 피라미들이 성전환을 일으켜 해당 지역 호수에서 종 전체가 절멸 수준에 이르기도 했다.

파벨 호키 체코 생명과학대학 교수는 2021년 연구에서 하천 생태계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음을 증명했다.

당시 실험 대상이던 브라운송어는 체코 하천에서 검출된 것과 같은 농도의 필로폰에 한 차례 노출된 뒤 다시는 맑은 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마약이 섞인 물에 계속 머무르려 하는 일종의 중독 증상을 보인 것이다. 호키 교수는 논문에서 “해양 생태계에 작용하는 악영향은 틀림없이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사정은 어떨까. 지난 4년간 전국 하수처리장에서는 해마다 한 곳도 빠짐없이 필로폰 성분이 검출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하수 역학 기반 불법 마약류 사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검출된 마약 성분의 농도는 지역별로 달랐다. 인천과 경기 시화에서는 필로폰이, 광주와 충북 청주에서는 암페타민이 주로 검출됐다. 엑스터시는 경기 시화와 전남 목포, 코카인은 서울 난지와 세종에서 상대적으로 검출량이 많았다.

4년간(2020∼2023년) 시도별 주요 마약류 검출 여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제공

이런 약물이 국내 하천과 해양 생태계로 흘러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미지수다.

오정은 부산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1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마약류를 비롯한 의약물질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해외에서 보고되고 있다”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하천수 속 불법 마약류에 대한 모니터링이 수행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다만 “일부 하천수를 대상으로 분석했을 때는 (하수와 달리) 필로폰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며 “향후 국내 마약 사용량이 더 늘면 하천수에서의 (마약) 검출 빈도와 농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추후 하천이나 해양에서의 불법 마약류 모니터링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 하수처리장에 설치된 정화 장치는 대부분 마약 성분 유입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졌다. 적은 용량으로도 인체에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의약품과 마약의 특성상 야생동물들은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의약품 설계 단계에서부터 야생동물에 대한 잠재적 위험을 고려하고, 각종 화학성분을 걸러낼 수 있도록 폐수처리시설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5848 4년 만의 재격돌 바이든·트럼프…무관중에도 열띤 토론 랭크뉴스 2024.06.28
35847 [영상]합참 "北 주장 다탄두 미사일 발사 실패 명백"… TOD 영상 공개 랭크뉴스 2024.06.28
35846 ‘탄핵’ 김홍일 방통위, MBC 방문진·KBS·EBS 이사선임 속도전 랭크뉴스 2024.06.28
35845 "여기선 조심하자" "미안해"‥'후배-이해인' 대화 봤더니 랭크뉴스 2024.06.28
35844 韓, 이태원 음모론에 “尹 그런말 했을 리 없다” 랭크뉴스 2024.06.28
35843 임영웅, 차승원·유해진과 '삼시세끼' 짓는다.. 나영석이 꾸린 '깜짝 밥상' 랭크뉴스 2024.06.28
35842 [속보] '위원장 탄핵' 앞둔 방통위, KBS·방문진·EBS 이사 선임계획 의결 랭크뉴스 2024.06.28
35841 박홍근 “윤, ‘좌파언론이 이태원에 사람 몰리게 유도 방송’ 의혹 제기” 랭크뉴스 2024.06.28
35840 '후배 성추행' 이해인, "연인 증거" 대화록 공개… 피해자 "정신과 치료 중" 랭크뉴스 2024.06.28
35839 바가지 없고 너무 싼데 외국같은 '이곳'…알면 제주도·일본 절대 안 간다 랭크뉴스 2024.06.28
35838 일본 여행서 ‘전동 캐리어’ 주의… 中유학생 검찰 송치 랭크뉴스 2024.06.28
35837 지난달 주담대 금리 3.91%로 ‘뚝’… 2년 만에 최저 수준 랭크뉴스 2024.06.28
35836 방통위, 공영방송 이사 선임 절차 돌입 랭크뉴스 2024.06.28
35835 "5억 아깝냐, 20억 안부른게 어디냐"…손흥민父 협상 녹취록 공개 랭크뉴스 2024.06.28
35834 [단독] 노동부, 아리셀 ‘고위험 사업장’ 지정하고 손놨다 랭크뉴스 2024.06.28
35833 “한국판 디즈니 꿈꾼다”...네이버웹툰 美서 성공 데뷔 ‘몸값 4조’ 랭크뉴스 2024.06.28
35832 野 "김진표 회고록 사실이면 충격…尹, 지금도 극우유튜브 보나" 랭크뉴스 2024.06.28
35831 "내 나라는 한국"… '난민 복서' 이흑산이 말하는 한국 정착기 랭크뉴스 2024.06.28
35830 한동훈·나경원, ‘동탄 화장실 성범죄 논란’ 강압 수사 비판 랭크뉴스 2024.06.28
35829 "사귀면 100만원" 당장 사하구로?…자격조건 직접 물어봤습니다 랭크뉴스 2024.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