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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의 미세 기공이 산화 작용 일으켜 술 맛 바꿔
흙에 있는 미네랄 성분, 숙성 중 술에 스며들기도
전통 증류주 숙성에 어울리는 최적의 옹기 찾아내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에 있는 화요 제2공장의 숙성실. 화요는 오크통을 이용하는 '화요 XP'를 제외하고 모든 제품을 3개월 동안 옹기에 담아서 숙성한다./화요


화요는 국내 증류식 소주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도자 브랜드를 운영하는 광주요그룹이 2003년 설립한 같은 이름의 화요에서 만든다. 화요의 작년 매출은 359억원이다. 2014년 매출액이 36억원이었는데 10년 만에 매출이 10배나 뛴 것이다. 매출이 매년 20% 정도 성장했다.

증류식 소주 시장을 이끄는 화요는 어떻게 만들까. 지난 11일 경기도 여주시의 화요 제2공장에서 만난 문세희 화요 대표는 공장을 보여주며 화요 제조법을 설명했다.

화요 제조는 고두밥을 찌는 것부터 시작이다. 하루에 사용하는 쌀은 5~7t에 달한다. 증기로 고두밥을 찌고 한 차례 냉각한 뒤에 종국(누룩종균)을 뿌리면 쌀누룩이 된다. 이후 발효조에 물과 효모, 쌀누룩을 함께 넣어서 7일 동안 발효한다. 발효가 끝나면 끓는점의 차이를 이용해 술을 분리하는 증류를 한다.

여기까지는 다른 증류식 소주와 큰 차이는 없다. 화요가 다른 증류식 소주와 크게 차별화되는 부분은 숙성을 하는 용기인 ‘옹기’다. 화요의 대표 제품인 ‘화요 25′와 ‘화요 41′은 같은 원주로 만든다. 증류를 끝낸 화요 원주의 알코올 도수는 45도 정도인데, 여기에 물을 타서 도수를 41도와 25도로 맞춘다. 이후 화요는 옹기에서 3개월 동안 숙성을 진행한다.

문 대표는 “술의 맛과 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숙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공기 중의 산소가 알코올과 결합해서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산화 작용이 일어나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술을 보관할 때 쓰는 스테인리스 용기는 공기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산화 작용이 일어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옹기는 진흙이나 찰흙을 이용해 만드는 도기의 한 종류다. 자기는 유약을 발라 구워 미세 기공이 생기지 않지만, 도기인 옹기는 흙과 흙 사이에 미세 기공이 만들어져 공기가 드나들 수 있다. 흔히 ‘옹기가 숨을 쉰다’고 표현하는 게 이런 미세 기공 때문이다. 옹기도 유약을 바를 수 있지만, 유약을 많이 바를 경우 옹기의 특징인 미세 기공이 사라진다.

문 대표는 “공기 접촉이 과도하면 산화에 의한 부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미세한 공기 구멍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며 “화요는 도자기를 만드는 광주요의 기술자들과 함께 술에 적합한 기공의 흙과 유약을 선택해 증류주에 적합한 옹기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요가 작년 12월 준공한 제2 공장의 2층에는 증류주를 옹기에 담아 숙성하는 숙성실이 있다. 첫 화요를 생산한 2004년에 들어온 옹기를 비롯해 350여개가 숙성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옹기는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만들기 때문에 크기가 조금씩 달랐다. 2004년 11월 24일에 검정을 받은 1호 숙성 옹기의 용량은 364L였다. 박준성 화요 생산본부장(이사)은 “제2 공장은 설계부터 옹기에 술을 숙성하기 좋은 공정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며 “술을 숙성하는 옹기 하나를 만드는 데 수백만원이 들 정도로 비싸고, 쉽게 깨질 수 있어서 관리도 무척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윤복의 그림 '주사거배(酒肆擧盃)'. 18세기 한양의 선술집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옹기는 청주를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간송미술문화재단

한국식품연구원과 한국세라믹연구원, 화요는 2018년부터 5년 동안 전통 증류주 현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전통 증류주의 산업화를 위해 발효 균주, 증류, 숙성법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로 전통 증류주에 맞는 숙성용 옹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목표였다.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김태완 한국식품연구원 전통식품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증류가 끝난 원주를 맛 보면 술 맛이 전반적으로 강하고 뾰족한 느낌이 나는데, 숙성을 통해 술 맛을 부드럽고 둥글둥글하게 바꿔준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다른 숙성 용기에 비해 옹기를 사용하면 숙성 중에 일어나는 술의 여러 성분 변화가 가속화된다”고 말했다.

특히 옹기의 특성상 흙에 있는 다양한 미네랄 성분도 숙성 중에 술에 스며든다고 김 책임연구원은 설명했다. 그는 100L 옹기를 이용해 1, 3, 6개월 동안 증류주를 숙성했을 때 미네랄 성분의 변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나트륨 성분은 처음 1L당 291㎍(마이크로그램, 1㎍은 100만분의 1g)에서 3개월 숙성 후에는 360㎍까지 늘었다. 마그네슘은 8㎍에서 26.4㎍로 늘었고, 원주에서는 전혀 검출되지 않았던 칼슘은 251㎍까지 증가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전통 증류주 현대화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술 숙성에 가장 잘 맞는 옹기를 찾아냈다. 연구진은 옹기의 기공률과 유약 바르는 방식, 굽는 방식을 저마다 다르게 해서 10가지 종류를 만들었다. 김 책임연구원은 “공기가 잘 통하면 증류주가 빨리 휘발하기 때문에 기공율을 최적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100㎛(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 이상의 규석(이산화규소) 입자 함량을 5~10% 범위로 제한해 기공율을 3~7% 수준으로 조절했다. 또 유약을 바르지 않아 옹기의 미세 기공을 최대한 살렸다. 옹기를 구울 때는 전통적인 장작불 대신 가스를 이용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장작불은 열이 고르게 퍼지지 않아 불량률이 높아 옹기 현대화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태완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의 한국식품연구원 숙성실에서 옹기를 이용한 증류주 숙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완주=이종현 기자

문 대표와 김 책임연구원은 우리 술의 산업화를 위해서는 숙성 용기인 옹기에 대한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통 저장 용기인 옹기는 부피가 크고, 냉장고 보관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퇴출됐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 술을 숙성하는 데 옹기만큼 좋은 숙성조가 없다고 했다.

문 대표는 보다 못해 본인이 직접 연구를 하고 논문까지 썼다. 문 대표는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에서 발효식품·양조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땄다. 문 대표는 “옹기를 이용한 술 숙성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거의 연구가 전무하다”며 “연구기관이나 대학이 우리 술 산업화를 위해 숙성 용기에 대해서도 더 많은 연구를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전통 증류주 현대화 프로젝트는 숙성 기술 현대화를 통한 ‘K-스피리츠(증류주)’ 기술을 확보하는 게 목표였다”며 “증류주 인기가 높아지면서 국내에서도 증류주를 만드는 양조장이 늘고 있는데, 해외에서 가져오는 숙성 용기나 증류기를 국산화해서 지속가능한 국내 산업 생태계를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

참고 자료

한국식품과학회지(2019), DOI : https://doi.org/10.9721/KJFST.2019.51.6.543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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