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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왜 해?
붕어 낚시

유년기 대나무 낚싯대 쓰던 추억
아파트 주변 소류지 ‘붕어’ 발견
‘물리지 않는 맛’ 아이와 즐길 채비
이사 온 아파트 옆에서 발견한 조그만 낚시터의 밤 풍경. 붕어 낚시를 처음 배운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한겨울 거리에서 자주 접하는 붕어빵은 사실 일본의 도미빵이 한국으로 전파되면서 현지화된 간식이다. 낚시를 좋아하는 나는 ‘왜 하필 붕어를 이름에 썼을까?’라고 생각해봤다. 그 당시 나처럼 카피라이터 비슷한 일을 하는 누군가가 도미는 한국에선 너무 비싸고 귀한 생선이니 부담 없는 붕어로 이름을 바꾸자고 한 게 아닐까. ‘붕어빵’은 참 잘 지은 이름이다. 부담 없고, 통통하여 푸짐해 보이고, 친근한 이름이다. 붕어 낚시도 붕어빵처럼 친근하고, 부담 없고, 평생 물리지 않는 맛을 갖고 있다.

하루 용돈 탕진했던 ‘고급 취미’

초등학교 1~2학년 즈음에 붕어 낚시를 배운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살았던 전남 장흥의 집 뒤에는 탐진강 지류가 흘렀는데, 그곳에서 처음 동네 형들에게 붕어 낚시를 배웠다. 경찰관인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자주 다녔던 우리 형제는 동네마다 다른 놀이문화를 몸으로 부대끼며 배웠는데, 전남 장흥에서 연 만드는 방법과 쥐불 놓는 법, 그리고 낚시를 배운 것 같다.

당시엔 점심을 먹고 구구단을 외운 다음, 동네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다른 친구들이 숙제 끝내기를 기다렸다. 대여섯명 정도가 모이면 함께 마을 뒤 대나무밭으로 갔고, 너무 굵지 않아서 다루기 쉬우면서도 길게 쭉 뻗은 놈으로 각자 손에 맞는 대나무를 골랐다. 표고버섯을 기르는 집의 형들은 낫도 다룰 줄 알았는데, 어린아이들이 대나무를 고르면 형들이 와서 가지와 잎사귀를 정리해주었다. 잎사귀를 슥슥 훑어내어 깔끔해진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방문한 곳은 동네 문방구. 수수깡 찌와 바늘을 포함한 낚싯줄을 50원인가, 100원인가에 팔았다. 50원이었으면 나머지 50원으론 아마 하드를 사 먹었을 테고, 100원이었으면 하루치 용돈을 ‘탕진’하는 것이기에 붕어 낚시는 매일 하기엔 좀 부담되는 고급 취미였다.

대나무 낚싯대에 낚싯줄까지 묶은 뒤 들르는 곳은 동네 정미소. 정미소 뒤편엔 쌀의 등겨를 쌓아놓는 두엄더미가 있었는데 이곳을 파내면 낚시에 쓸 지렁이를 채집할 수 있었다. 분유 깡통에 지렁이를 충분히 담아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장소가 우리 집 뒤의 탐진강 강가다. 아이들의 그림자가 어른만큼 길어지는 해거름에 시작하여 더이상 찌가 보이지 않을 때쯤 엄마가 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하는 시간까지가 우리의 낚시 시간이었다. 작고 예쁜 각시붕어가 주로 잡혔는데, 가끔 찌를 쑥 밀어 올리는 손바닥만 한 붕어가 잡히기도 했다. 잘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붕어는 우리에게 인기 어종이었고, 월척에 가까운 걸 잡으면 다음날 학교에 바로 소문이 날 정도로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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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 낚시가 포켓몬 이길까

이곳은 오래전 낚시터로 운영되던 작은 소류지라서 낚시 자리도 남아있다.

어른이 되고 10년 전부터 낚시를 다시 시작했는데 붕어 낚시가 힘들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1970년대에 유입된 배스와 블루길이 붕어의 치어나 알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년시절의 기억으로만 간직하던 붕어 낚시를 올해, 집 근처에서 시작하게 됐다. 새로 이사 온 곳은 원래 논이 있던 땅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이라 직장 근처에선 절대 들을 일 없는 개구리 소리가 엄청나게 울려 퍼졌다. 그러다 불현듯 ‘개구리가 저렇게 많고, 농사를 짓던 곳이면 분명히 연못 하나쯤 있을 법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도를 열어봤더니 아파트 옆에 아주 작은 소류지(물이 저장돼있는 늪지나 못)가 하나 보였다. 지도에서 이걸 발견한 게 밤 9시께였는데,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아파트에서 500m쯤 떨어진 그곳을 향해 길을 나섰다. 개구리도 울고, 가끔 왜가리도 울고, 인적이라곤 아무도 없는 완전한 어둠. 나무 사이로 무덤도 몇 개 보이는 듯했고, 아내한테 함께 오자고 얘기한 걸 후회하고 있을 때쯤 아주 반가운 풍경이 펼쳐졌다.

물에 비친 달빛과 함께 고즈넉하게 펼쳐져 있는 찌 불빛 몇 개. 친구 사이라는 동네 어르신 두 분은 학교 운동장 절반 크기의 이곳이 원래 낚시터였는데, 지금은 아는 사람들끼리 조용히 와서 낚시하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다음날 나도 그분들처럼 조용히 오래된 낚싯대를 꺼내 그곳에 앉았다. 아무도 없는 적막. 조용한 찌 불빛. 어제 처음 왔던 무서웠던 오솔길은 기대에 찬 길이 되어 있었고, 저 멀리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아파트에서 축구 경기를 보며 즐거워하는 소리가 호젓하게 들리는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그러던 순간 찌가 올라왔다. 아주 예쁘게 쭈욱 올라오는 찌를 보며, 이 녀석은 배스도 아니고 블루길도 아니며 향어도 아니고 잉어도 아닌, 내 기억 속의 그 예쁘고 작은 붕어일 거라고 확신했다. 말 그대로 손바닥만 한 귀여운 녀석. 마치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미끼를 사러 낚시방에 들르고, 붕어 낚시꾼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요즘은 오히려 10년 전보다 상황이 좋아진 느낌이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외래어종의 개체 수 증가가 폭발기를 넘어 안정화되고 있었고 저수지마다 다시 조그만 붕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며칠 전 들른 경기도 포천의 국립수목원에서 인상적인 문구를 보았다. 숲의 한 공간에 태풍에 쓰러진 전나무들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둔 공간이 있었는데, 이 안에서 다시 생물이 자라나며 생태계가 스스로 치유하는 ‘천이’ 과정을 관찰하라는 것이었다. 붕어가 다시 흔한 물고기가 될 수 있을지 아닐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렸을 적 기억으로만 있는 각시붕어도 다시 보고 싶고, 버들치와 자라도 봤으면 좋겠다. 다음 주에는 아이들을 데려가 볼 생각이다. 피는 못 속인다고 아마도 좋아할 것 같긴 한데 과연 낚시가 포켓몬 게임을 이길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낚시든, 악기든, 오토바이든, 세차든, ‘너 좋아하는 게 뭐야?’ 라고 물었을 때 무언가 한가지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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