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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탄핵심판 기각…재판관 9명 중 6명은 ‘공소권 남용’ 인정
“법원이 검찰권 통제에 소극적인데 탄핵심판 기각이 맞나” 지적
지난 5월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검찰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한수빈 기자


[주간경향] 헌법재판소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에 대한 ‘보복 기소’ 책임을 물어 안동완 검사를 파면해 달라는 국회의 청구를 지난 5월 30일 기각했다. 결론은 기각이지만 결정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6명의 헌법재판관이 안 검사가 공소권을 남용하거나 불합리한 공소제기를 했다고 인정했다. 검찰 수사에 대한 언론 보도와 시민단체 고발, 이어진 검찰의 재수사 등 유씨가 겪은 과정은 최근 몇 년간 검찰 수사를 둘러싸고 제기된 정치적 편향, 불공정성 논란과도 맞닿아 있다.

시작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은 그해 유씨의 대북 송금(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재판에 넘기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2013년 유씨를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혐의로 기소했는데, 재판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거센 비판에 직면했고, 관여 검사들은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2014년 안 검사가 애초 기소유예 처분했던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재수사해 유씨를 재판에 넘겼다. 국회는 이런 안 검사의 공소제기가 위법한 공소권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대법도 인정했는데…문제는 헌재

안 검사 측은 검찰이 자체적으로 유씨의 범죄혐의를 인지한 게 아니라 시민단체가 고발한 것이었다며 유씨에게 보복할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외부에서 수사 단서를 제공했고, 시민단체 고발장에 다양한 소스로 취재한 언론 기사 2건이 첨부돼 있어 수사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국회 측은 언론이 검찰 수사 내용을 보도하고, 시민단체가 그 언론 기사를 활용해 검찰에 고발하고, 검찰은 그 고발장을 기화로 재수사를 벌인 일련의 과정을 보면 보복 의도가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2021년 공소권 남용을 인정한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2심 재판부는 유씨를 고발한 시민단체가 중요 증거가 새로 발견된 점을 소명하지 못했기에 검찰이 각하로 종결했어야 하는데도 재수사를 한 것은 공소권 남용이라며 공소기각 판결했다. 문제는 헌재였다.

헌법재판관들이 지난 5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형사소송법은 범죄 피해자의 고소권, 제3자의 고발권을 규정한다. 오로지 검사만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국가소추주의와 기소독점주의 체제에서 범죄 피해자 등이 직접 국가에 가해자 처벌을 요구할 수 있게 제도를 둔 것이다. 그러나 고소·고발이 정치적 사건에서 악용된다는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고소·고발이 접수되면 피고소·고발인이 일단 수사 선상에 오른다는 점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한쪽에선 고소·고발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끝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선 검찰이 고소·고발을 발판삼아 정치적 사건 수사로 나아간다고 주장한다.

급기야 검찰 측과 고발인 측이 내통한 의혹인 이른바 ‘고발 사주’ 사건도 터졌다. 2020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던 손준성 검사가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측에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을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법원은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지난 4월 11일 ‘검찰의 수사가 야권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있다’는 취재진 질문에 “저희가 원해서 수사를 하는 게 아니고 고소·고발이나 국민적 의혹에 대한 수사 요청이 있어서 그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라며 “의도를 갖고 특정인을 수사한다고 오해하는 것은 없었으면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번 헌재 결정에서 공소권 남용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안 검사가 시민단체 고발 내용이 부실했음에도 고발 건을 배당받자마자 재수사에 착수했다며, 이는 공소제기를 통해 유씨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을 적극적으로 의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안 검사는 고발건을 배당받은 다음 날 기소유예건을 처리한 검찰청에 긴급 공문을 발송해 기록을 급히 송부받고 그날 바로 고발인을 불러 조사했다. 이들 재판관은 고발장에 첨부된 언론 기사 2건은 의혹 제기 수준이라고 했다. 다른 증거자료가 없었는데도 안 검사가 즉시 대검찰청에 계좌 추적이 필요하다며 수사관 2명 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재판관들은 “혐의를 다시 수사할 필요성과 상당성이 있다고 인정할 만한 뚜렷한 근거가 없는 상황임에도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것”이라며 “다른 어떤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재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이종석·이은애 재판관도 기소유예 이후 새로운 사정 변경이 없었다며 “현저히 불합리한 공소제기였다”고 판단했다. 두 재판관은 시민단체 고발 취지는 유씨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와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혐의의 연계성을 밝혀야 한다는 것인데 간첩 혐의가 모두 무죄였다며 기소유예를 번복할 만한 중요한 사정 변경이 아니라고 했다. 안 검사 측은 기소유예 때는 유씨가 탈북한 대학생 신분이고 모르는 사람인 ‘연길삼촌’ 지시를 받아 범행에 관여한 것으로 파악됐지만, 재수사를 통해 유씨가 재북 화교이고 연길삼촌은 그의 외당숙이라는 점이 밝혀졌다며 사정 변경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재판관은 이에 대해서도 “기소유예를 번복하고 유씨 기소를 정당화할 수 있는 중요한 사정은 아니다”라고 했다.

헌법재판소가 안동완 검사 탄핵심판 사건을 기각한 지난 5월 30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가 서울 종로구 헌재 앞에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성동훈 기자


전문가 “헌재 결정에 시민의 관점 빠져”

결과적으로 헌재는 국회의 검사 파면 청구를 기각했다. 공소권 남용을 아예 부인한 재판관 3명에 더해 이종석·이은애 재판관이 불합리한 공소제기여도 파면할 정도는 아니라는 입장에 섰기 때문이다. 두 재판관은 안 검사를 파면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대해 결정문에서 “헌법과 법률에는 검사의 법 위반을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라며 “그와 같은 제도적 장치들이 적절히 작동한다면 검사의 법 위반이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나 해악도 어느 정도 방지하거나 회복될 수 있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도 검찰권 견제를 법원이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법원이 검사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한 사례는 거의 없다. 대법원은 검사가 자의적으로 공소권을 행사해 피고인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을 줌으로써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했다고 보이는 경우를 공소권 남용으로 본다는 법리를 제시한 적이 있다. 하지만 공소권 남용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사례는 유씨 건이 최초였다. 법원이 검찰권 통제에 소극적인 마당에 정치적 책임추궁 절차인 탄핵 심판을 기각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법원 내부에선 검찰권 통제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김도균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4월 법원 내부 판례연구회에서 검찰의 수사 재량 남용을 법원이 통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했다. 김 부장판사는 효과적인 형사소추, 범죄 처벌과 형사소송에서의 진실 발견이라는 공익을 위해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수사가 허용되지만, 그러한 수사가 ‘비례성 원칙’에 어긋나는지 법원이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비례성 원칙은 수사의 목적·동기가 정당한지, 수단이 적합한지, 수사로 인해 개인의 기본권을 최소한으로 침해했는지, 기본권 침해보다 보호되는 공익이 더 큰지를 말한다. 그러면서 김 부장판사는 수사 목적의 정당성 심사와 관련해 “수사가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경우에 비해 급작스럽게 착수됐다거나 특정한 외부적 상황에서 개시됐다면, 그 외부적 상황과의 관련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헌재 결정에 ‘시민의 관점’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법원에 가서 혐의를 다툰다는 것 자체가 심적으로나 시간적·경제적으로 엄청난 부담과 고통이고, 바로 그런 점을 노리고 검찰이 공소권 남용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검사가 권한을 남용했는지, 남용으로 인해 개인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생활에 지장을 초래했는지, 이것이 사회 정의의 관점에서 용납되는지였다”라며 “권력형 검사들의 행태를 헌재가 제대로 지적해줬어야 했는데 아쉬운 결정”이라고 했다. 유씨는 안 검사의 공소제기로 법정에 25번 나가야 했고, 죄 없음을 항변하기 위해 8년여간 공력을 쏟아야 했다. 반면 안 검사는 아무런 징계나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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