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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지역 기자였던 사진·출판 전문가 쉬충마오
조선·일제강점기 390점 수록 사진집 출간

“역사는 흑백이 아냐…생생한 컬러로 복원”
역사 재밌게 만들어 많은 이들 즐기길 소망
1945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 김구. 서해문집 제공

동그란 안경을 쓰고 희끗희끗한 콧수염이 있는 백범 김구, 항일운동을 하던 독립투사들이 일본군에 끌려가 눈이 가려진 채 공개 처형 당하는 장면…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희귀 사진’을 모은 책을 대만의 사진 전문가와 국내 출판사가 손잡고 펴낸다. 20년 동안 기자생활을 한 쉬충마오(66)는 이라크-팔레스타인 전쟁 등 주요 분쟁 지역을 취재해왔고 은퇴 뒤 사진·출판 전문가로 변신했다. 그가 평생 모아온 희귀 사진 가운데 조선과 일제강점기 관련 사진 390여장을 선별 수록한 사진집 ‘당신이 보지 못한 희귀 사진’(서해문집)이 오는 26일 개막하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사진집 출간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쉬충마오는 13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외국인인 자신이 왜 한국 관련 희귀사진을 수집하게 됐는지 설명했다.

“1989년 천안문 사태를 취재하다가 목을 관통하는 총을 맞고 죽을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제가 다시 살아난 이유가 있다고, 세계를 위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만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보다 대만이 먼저 일본에 점령당했으니까요. 저는 동아시아에서 과거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더 알려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어요.”

‘세 명의 항일의사’. 쉬충마오는 ‘당신이 보지 못한 희귀사진’에서 “1904년 항일운동을 벌이던 세 명의 의사 김성산, 이춘근, 안순서가 일본 헌병에 체포돼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눈이 가려진 채 공개 처형된 그들은 한국의 애국자들에게 순국의 상징이 되었다. 일본군의 사진병들이 처형의 모든 과정을 촬영했다”고 썼다. 서해문집 제공

1920년 일본 군대가 점령군의 위용을 과시하고자 경복궁 안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서해문집 제공

‘한양 그리고 도시’ ‘전통과 사람들’ ‘망국과 광복’ 세 권으로 구성된 이 사진집은 가로 30㎝, 세로 30㎝로 판형이 크고, 흑백 사진이 아니라 모두 컬러다. 쉬충마오스튜디오의 복원 기술을 활용해 선명하게 복원했다. 쉬충마오는 “현실이 흑백이 아닌 것처럼, 역사는 흑백이 아니다. 흑백 사진을 컬러로 만들면 ‘이것이 과거가 아니라 나의 역사의 일부구나’ 하고 사람들이 느끼면서 감동의 깊이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 군인이 찍었다는 ‘세 명의 항일의사’라는 사진이나 서울 외곽에서 일본군이 사열하고 있는 모습, 일본군에서 해방된 ‘위안부’들의 모습들을 보면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가 얼마나 잔인했는지가 그대로 느껴진다.

3권 ‘망국과 광복’ 속 김구를 포함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인사 사진들은 중국 국민당에서 보관해온 것으로, 대부분이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사진들이다. 쉬충마오는 타이베이 시장(1998~2006)과 타이완 총통(12, 13대)을 역임한 마잉주(馬英九)가 국민당 주석(2005~2007)일 때 수석 연설문 작성자로 일했고, 그 인연으로 국민당 고위 인사들과 친분이 있다. 그 인연으로 국민당 내부 아카이브를 활용할 수 있다. 쉬충마오는 국민당 내부 아카이브 외에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세계 고서점이나 각종 경매 시장 등을 통해 희귀 사진을 구해왔다. ‘세 명의 항일의사’는 일본 고서점에서 구했는데, 원본 사진만 사들이는데 2천만원 정도가 들었다. “아내가 사도 괜찮다고 허락을 해주면서 원본 사진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부잣집 여인들의 활쏘기 시합’. 서해문집 제공

희귀 사진이지만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내로라하는 출판사 13곳이 사진집 출간을 검토했으나 제작 비용이 너무 비싸 모두 포기했다. 그러다 유럽 백과사전 모으기 등 수집을 취미로 가진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가 출판사의 사운을 걸고 출간을 결심했다. 김 대표는 “사진을 제법 보아왔고 조선 여성들이 총 쏘는 사진은 봤지만 활 쏘는 사진은 처음 봤다”며 “쉬충마오의 사진들은 대부분 희귀해서 대만이나 싱가포르에서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라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고서라도 출간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13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수집한 사진을 들고 기자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쉬충마오. 양선아 기자

평양 을밀대를 담은 사진. 서해문집 제공

지난 13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수집한 사진들을 보며 설명하고 있는 쉬충마오. 양선아 기자

“역사를 잘 안다는 것은 우리가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저는 역사책을 패션 잡지처럼 만들고 싶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요.”

‘역사를 잘 안다는 것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쉬충마오에게서 돌아온 답이다. 그저 과거일 뿐이고 지루한 것처럼 여겨지는 역사를 누구나 쉽고 즐겁게 알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하지 않게 해야한다고 쉬충마오는 강조했다. 앞으로 그는 6·25전쟁, 해양 실크로드 사진집 등 전 세계인이 공통으로 관심 있을 만한 주제를 선정해 계속 희귀 사진집을 펴낼 계획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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