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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술 전 KAIST 이사장이 2014년 KAIST 기부금 양정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부(富)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며 515억 원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기부한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이 1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1938년 전북 임실군 강진면에서 태어난 고인은 남성고를 졸업했다. 군 복무 중 5·16을 맞았고 혁명군 인사·총무 담당 실무 멤버로 일하다 1962년 중앙정보부에 특채됐다. 직장을 다니면서 원광대 종교철학과를 나온 고인은 1980년 5월 중앙정보부 기조실 기획조정과장으로 있다가 실세로 바뀐 국군보안사령부에 의해 해직됐다.

사업을 준비하다 퇴직금을 사기당하고 어렵사리 설립한 풍전기공이라는 금형 업체도 대기업의 견제로 1년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1983년 반도체 장비 제조 업체인 미래산업을 창업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의 퇴역 엔지니어를 영입하고 반도체 검사 장비를 국산화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반도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70년 중앙정보부 근무 시절 일본에 갔다가 산 도시바의 트랜지스터 단파 라디오에 적힌 ‘IC’라는 글자를 보면서였다고 저서 ‘왜 벌써 절망합니까(1998)’에 썼다. 이후 무인 검사 장비의 개발에 도전했다가 벌어 놓은 돈을 몽땅 날리는 고비를 겪기도 했지만 국산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반도체 장비 ‘메모리 테스트 핸들러’로 자리를 잡은 뒤 1999년 11월 국내 최초로 미래산업을 나스닥에 상장해 ‘벤처 1세대’로 불렸다. 2001년 ‘착한 기업을 만들어 달라’는 말을 남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자녀들을 회사(미래산업)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인은 저서 ‘아름다운 경영:벤처 대부의 거꾸로 인생론(2004)’에서 “주식회사란 사장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어서 2세에게 경영권을 넘길 권리라는 게 사장에게 있을 턱이 없다”며 “역사가 가르치듯이 ‘세습 권력’은 대부분 실패한다”고 적었다. 또 은퇴를 선언하기 직전에 두 아들을 불러서 “미래산업은 아쉽게도 내 것이 아니다. 사사로이 물려줄 수가 없다”고 양해를 구하자 두 아들이 “아버님께서는 저희에게 정신적인 유산을 남겨주셨다. 저희는 언제까지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고인은 2001년 KAIST에 300억 원을 기부한 데 이어 2014년 다시 215억 원을 쾌척해 바이오·뇌공학과,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당시 개인의 고액 기부는 국내 최초였다. 카이스트정문술빌딩과 부인의 이름을 붙인 양분순빌딩도 지었다.

고인은 2014년 1월 기부금 약정식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과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개인적 약속 때문에 기부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또 “이번 기부는 개인적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소중한 기회여서 매우 기쁘다”고 했다.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과 2009~2013년 KAIST 이사장을 지냈다. 2014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의 ‘아시아태평양 자선가 48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받았다.

유족은 양분순 씨와 사이에 2남 3녀가 있다. 빈소는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202호실, 발인은 15일 오전 9시.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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