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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욱 정치에디터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24회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3.6.13


당신들은 권력 곳곳에 여러 이름으로 존재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국민의힘 윤핵관, 검찰·감사원 등 사정기관 관계자, 혹은 공영방송 고위 간부 등으로 불린다. 호칭과 역할은 제각각이지만, 대통령 주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망토를 걸쳐주기는커녕 ‘멋있다’를 외쳤다는 원죄도 나눠 가졌다. 대통령의 격노만 잘 버티면 떨어질 떡고물을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여, 현재의 국정난맥 책임은 대통령과 당신들이 함께 져야 한다.

당신들이 험한 민심에 눈감은 채 대통령 기 살리기에만 온 힘을 다하는 것도 당연하다. 권력을 잃었을 때 닥쳐올 공허감과 막막함, 대통령 주변에서 그간 저지른 잘못된 행동들에 대한 뒷감당이 두려워서일 것이다. 총선 참패, 압도적인 특검 찬성 여론 등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 대통령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지켜내려는 것도 충성심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당신들의 안위와 관계됐기 때문일 터다.

대통령 부인의 명품가방 수수에 대해 “위반사항 없다”며 종결처리한 국민권익위 결정권자들을 보면서 당신들의 해악을 곱씹게 됐다. 증거가 분명하고,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사건에 ‘배우자 처벌 규정은 없다’고 말하는 파렴치함은 어디서 왔는가. 국민의 분노와 상실감은 외면한 채 대통령 입맛에 맞추느라 얼토당토않은 판정을 내린 당신들에게 간신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동해 심해의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밝힌 대통령 브리핑을 보면서는 당신들의 직무유기가 떠올랐다. 사실이라면 박수칠 일이지만, 충분한 사전검토 작업이 선행됐어야 한다. 대통령의 일방적 발표 뒤 산업부가 뒷감당을 하는 모습은 급조된 인상을 줬다. 당신들 중 누군가 제안했고, 국면전환이 필요한 대통령이 앞뒤 따지지 않고 수용했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일 터다. 만약 대통령이 천공 등 비선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라면 당신들이 말려야 했다. 석유가 안 나오거나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될 경우 뒷감당은 누가 할 건가.

채 상병 사건 수사외압 사건에 대한 대응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통령 격노설’을 잡아뗐던 당신들은 정황들이 쌓이자 “대통령이 관여하긴 했지만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며 말을 바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이름을 빌려 국민들을 계속 우롱했다. 채 상병 특검법을 부결시키고 환호한 여당 의원들은 또 어떤가. 당신들은 연찬회를 찾은 대통령과 특검법 부결을 자축하고, 대통령이 건네는 술잔을 받았으며, 대통령의 어퍼컷 세리머니에 박수쳤다. 당신들에게 불꽃같은 직언을 기대한 적은 없었지만, 역사적 참패 후에도 용비어천가를 부르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내가 또 졌다.

안다. 당신들은 막막하고 답답할 것이다. 탄핵 직후 느꼈던 고단함과 외로움을 다시 겪어야 하나 한숨도 쉴 것이다. 그러니 힘 빠진 대통령일지언정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대통령이 호위무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당신들이 느꼈을 일말의 안도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정기조 바꾸라는 총선 민심을 외면하고 자신과 아내 보호를 위해 거부권을 남발하는 대통령에게 권위와 명분은 없다. 오히려 대통령은 “특검만은 막아달라”며 당신들에게 매달리고 있다. 대통령은 “여러분과 한 몸으로 뼈가 빠지게 뛰겠다”고 했다. 그러나 총선 참패와 지지율 폭락으로 가루가 된 대통령과 당신들에게 남은 뼈가 어딨단 말인가. 당신들이 의욕을 부릴수록 국민들의 뼈만 갈릴 판이다.

국민들이 서슴지 않고 탄핵을 말하는 험한 민심을 돌아봐야 한다. 국정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은 침대축구 한다며 드러눕고, 뒷받침해야 할 당신들은 대통령 발에 걸려 넘어졌다. 당신들 같은 집권세력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경은 얼마나 참담하겠는가. 당신들의 주장처럼 탄핵은 불행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하는 대통령과 당신들에게 남은 3년 나라를 맡기는 것을 더 큰 불행으로 느끼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어차피 대통령이 박수받고 물러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당신들은 탄핵으로 깊은 수렁을 경험했지만, 대통령이 파놓은 구덩이는 그보다 훨씬 깊고 질척인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에게 망토를 걸치라고 직언하고, 채 상병 특검과 김건희 특검을 받아들여야 그나마 몸을 뺄 여지가 생길 것이다. 대통령과 당신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덜 망하는 길이다. 대통령의 업보는 당신들의 업보이기도 하다. 방탄에만 모든 것을 건다면 구덩이에 묻힐 것이다.

이용욱 정치에디터


<이용욱 정치에디터>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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