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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에 최저 아닌 최최저 임금 주자는데 
수요자 지불능력 아닌 노동 가치를 봐야  
돌봄을 다시 '공짜노동'으로 만들 텐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4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 관련 항소심 변론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얼마 전 서울시가 내놓은 저출산 주택대책을 보고 번뜩 들었던 생각. 아, 애를 낳지 않으면 집에서 쫓겨나겠구나. 대책(장기전세주택Ⅱ)의 골자는 이렇다. 신혼부부에게 주변 시세의 80% 이하 보증금으로 입주 기회를 준다. 10년 내에 아이를 낳으면 이 집에서 10년 더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퇴거해야 한다. 20년 뒤에는 아이가 2명이면 10%, 3명이면 20% 싸게 이 집을 구매할 수 있다. 아이를 낳으면 오래 살 수 있게 해 주고, 많이 낳으면 싸게 구입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괄약근에 힘을 줘 근육을 강화하자는 이른바 '쪼이고 댄스'(서울시의원)나 여아를 1년 조기 입학시켜 남녀가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도록 하자(한국조세재정연구원)는 코믹한 저출생 대책과 같은 반열에 놓을 순 없다. 아이를 못 낳는 대표적 이유 중 하나가 주거인 건 틀림없다. 애초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는 신혼부부라면 괜찮은 선택지 하나가 더 생기는 것일 수도 있겠다. 대부분의 언론도 질책보다는 박수를 치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뜯어보면 ‘돈 1억 원 줄 테니 아이 낳아라’라는 정책보다 훨씬 투박하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10년 뒤에는 강제로 집을 나가라고 내쫓는 정책이다. 아이를 안 낳는지, 못 낳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양육과 돌봄의 어려움을 간과한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집으로 출산을 흥정하는 건 너무 잔인하다. 퇴거일이 째깍째깍 가까워오면서 애를 낳을까 말까 고민해야 되는 끔찍한 상황을 오세훈 시장은 상상해 봤을까.

내년도 최저임금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1만 원 돌파 여부 못지않게 중요한 쟁점은 업종별 구분 적용이다. 경영계에선 편의점이나 음식점 등에 더해 돌봄 업종에 차등적인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은행이 돌봄에 낮은 최저임금을 주자는 보고서를 내며 불을 지핀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구분 적용 주장이 힘을 얻는다. 9월에는 최저임금 차등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필리핀 육아도우미 100명도 들어온다.

따져보자. 양육과 돌봄은 주거보다도 출산을 기피하는 더 큰 이유다. 힘들고 고달프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사회생활에서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이 엄청나다. 그게 모두 돌봄의 가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1조 원대 재산분할이 인정된 데는 ‘300억 원 비자금’이 결정적이었지만 노 관장의 ‘양육 기여’도 있었다. 재판부는 “노 관장이 가사 및 양육을 담당하는 사이 이뤄진 최 회장의 경영활동이 SK 주식 가치 상승에 기여했다”고 봤다.

자신의 돌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조차 남에게 맡길 때는 다른 노동에 비해 낮은 대가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이중적이다. 최저임금은 노동의 공급자(노동자)들이 노동의 대가로 최소한 이만큼은 받아야 된다고 사회가 합의해 정해놓은 금액이다. 이런 공급자 입장은 아예 고려 대상에 없다. 왜 돌봄 노동자는 수요자의 지불능력만 감안해 가장 밑바닥보다도 더 낮은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건가. 논란의 한은 보고서도 돌봄의 인력난과 비용 부담만을 근거로 삼을 뿐, 돌봄 노동의 본질적인 가치를 언급하지 않는다.

돌봄을 비롯한 가사노동이 '공짜 노동' '그림자 노동'에서 벗어나 수면 위로 끌어올려진 게 불과 십수 년 전이다. 그런 돌봄 노동의 가치를 다시 깎아내리려 안달이다. 모성애를 담은 노 관장의 돌봄만큼은 아닐지라도, '필리핀 이모님'의 돌봄 가치가 '최최저'로 폄훼될 이유는 없지 않겠나.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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