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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의 Wild Korea ⑭ 흑산도·홍도·영산도
전남 신안 흑산도 칠락산의 일출 무렵. 흑산항 너머 하늘이 곱게 물들었다. 우렁찬 새들의 합창 속에서 해가 떠올랐다.
한국의 많은 섬 중에서 찬란한 절정을 하나 꼽으라면 ‘홍도’라는 붉은 점을 찍겠다. 전남 신안 홍도까지 갔는데 흑산도를 안 볼 수 없고, 흑산도 코앞에 떠 있는 영산도를 빼놓을 수 없다. 세 섬을 제대로 즐기려면, 천편일률적인 패키지여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산도는 풍요롭고 홍도는 수려하며 흑산도는 장쾌하다. 개성 다른 세 섬에서 1박씩 묵으며 섬의 정취를 원 없이 즐겼다.

국립공원 명품마을 영산도 목포항을 출발한 여객선이 비금도와 도초도를 벗어나자 바다가 거칠어졌다. 남도의 섬사람은 목포에서 비금도·도초도까지 섬으로 둘러싸인 바다를 ‘앞바다’, 비금도에서 흑산도까지 펼쳐진 망망대해는 ‘큰바다(먼바다)’라고 부른다. 큰 파도가 여객선을 가볍게 들어 올리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파도에 시달리는 일은 섬으로 가는 통과의례다.
흑산도와 영산도를 다니는 작은 여객선인 영산호.
흑산도에 도착하자마자 영산도로 향했다. 영산도는 2012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명품마을’로 지정된 섬이다. 미리 연락한 최성광 마을운영위원장이 24t짜리 여객선 ‘영산호’로 마중 나왔다. 10분 만에 도착한 섬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시장통 같았던 흑산도와 영 딴판이었다.

마을 식당에서 미역국으로 놀란 속을 진정시켰다. 뽀얗게 우러난 미역국은 육지에서 먹을 수 없는 감동적인 맛이었다. “저그 보이는 데가 전망대요. 거그서 섬이 한눈에 뵈요. 능선을 반 바퀴 돌아 내려오쇼. 저녁은 회 정식이요.” 최 위원장의 설명을 듣고 트레킹에 나섰다. ‘회 정식’이란 말에 침이 고였다.
영산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바위봉인 된볕산이 우뚝하고 산세가 부드럽게 마을을 감싼다. 우유를 섞은 듯한 바다의 빛이 오묘하다.
당산 숲 위로 난 나무 계단을 7분쯤 오르면 전망대에 올라선다. 여기서 영산도의 진가가 드러난다. 수려한 바위봉인 된볕산(241.6m)이 우뚝하고, 부드러운 능선이 마을과 백사장을 둥그렇게 감싼다. 바닷물 우유를 섞은 듯한 옥색 바다에서는 숭어가 튀어 올랐다.

능선을 따르면서 다시 감탄이 터졌다. 바닥에 바투 붙어 자라는 섬향나무, 노간주나무, 흰 꽃이 향기로운 다정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석위와 일엽초 등의 양치식물이 그득했다. 바위에 뿌리내린 소나무들은 굳건한 자태를 뽐내는데, 안타깝게도 소나무가루깍지벌레 때문에 많은 소나무가 고사했다. 영산도의 영산팔경(永山八景) 중 첫 번째가 ‘당산창송(堂山蒼松)’이다. 그만큼 난대림과 어우러진 소나무가 장관이었는데, 안타깝다. 그래도 능선에 이렇게 풍요로운 식생을 가진 산이 또 있을까 싶다. 깃대봉을 넘어 몇 개 봉우리를 더 오르내리면 된볕산이 지척이지만, 등산로가 이어지지 않아 입맛을 다시며 마을로 내려왔다.
영산도의 회정식. 앞에 보이는 해산물이 갯바위에서 딴 거북손이다. 영산도의 섬백반과 회정식, 그리고 전복홍합죽을 먹으면 영산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대망의 저녁 시간. 회 정식은 운이 크게 작용한다. 고기가 많이 잡혀야 풍성한 밥상이 차려지기 때문이다. 이날은 사람 운이 좋았다. 최 위원장의 지인이 많이 왔기 때문이다. 갑오징어회로 시작해 농어와 우럭회, 그게 부족하다며 내놓은 거북손 등으로 푸짐했다. 술이 불콰해지자 어디선가 자연산 전복이 등장했다. 영산도는 산도 바다도 인심도 풍요로웠다.
영산도의 최고 절경인 석주대문. 작은 배가 통과할 만큼 크다.
이튿날 아침, 해상 유람에 나섰다. 바다에서 본 영산도는 거칠고 야성적이었다. 사람 코처럼 생긴 비성석굴과 올빼미바위, 남근석 등이 멋졌는데 일명 코끼리바위인 석주대문 안으로 배가 통과하는 순간이 압권이었다.

홍도, 깃대봉과 일출전망대
깃대봉 오르는 길에 뒤돌아 본 홍도 1구. 구실잣밤나무꽃이 피어 산이 노릇노릇하다.
영산도 해상 유람을 마친 뒤 흑산도를 거쳐 홍도로 넘어갔다. 홍도는 거대한 고슴도치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댄 형국이다. 고슴도치의 바늘은 나무에 해당한다. 홍도 전체가 난대림으로 덮여 있다. 두 고슴도치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을 ‘목’이라 부른다. 평평한 목에 홍도 1구 마을과 초등학교가 자리 잡았다. 홍도 1구에 숙소를 마련하고, 곧바로 깃대봉(360.6m) 트레킹에 나섰다.

깃대봉은 홍도 최고봉으로 산길이 비교적 완만하다. 1시간쯤 걸려 도착한 깃대봉에서 거친 해무와 바람을 만났다. 섬을 통째로 날릴 기세로 부는 바람 속에서 나무들은 춤추고, 칼새로 보이는 새 한 쌍이 바람 타고 하늘 높이 올라 낄낄거렸다. 거친 자연환경에서 사는 생명에게는 놀라운 힘이 있다.
홍도 1구에서 내연발전소 가는 둘레길. 홍도 1구와 바다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사람들은 대개 오른 코스로 내려오지만, 내연발전소 쪽 둘레길을 추천한다. 잠시 급경사 계단을 내려오면, 길이 내연발전소 앞을 지나 산허리를 부드럽게 타고 돈다. 7월이면 만개하는 원추리 군락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섬 풍경이 일품이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일출전망대에 올랐다. 홍도생태전시관을 거쳐 15분쯤 오르면 전망대에 닿는다. 해는 섬 가장 오른쪽 바위봉에서 슬며시 떠올랐다. 해무가 무심하게 지나가면서 일출 풍경을 환상적으로 만들어줬다.
한 부부가 홍도유람선에서 기암절벽을 감상하고 있다.
홍도 해상 유람을 즐기고, 다시 흑산도로 넘어왔다. 오후 3시가 넘자 단체 관광객이 사라졌다. 비로소 섬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흑산도는 서해를 따라 이동하는 철새의 중간 기착지다. 이런 이유로 국립공원연구원 조류연구센터와 신안철새박물관이 자리한다. 박물관에서 흑산도를 거쳐 가는 거의 모든 새를 만날 수 있었다. 생생한 박제를 보면 새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
신안철새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박제된 새들. 흑산도를 찾는 다양한 새를 볼 수 있다.
마지막 일정은 칠락산(272m) 산행. 컴컴한 새벽, 랜턴 빛에 의지해 칠락산 정상에 닿았다. 야간 산행이었지만 길이 수월해 큰 고생은 없었다. 흑산도항에서는 불을 켠 고깃배가 출항하고, 시나브로 동편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새들의 합창은 시끄러울 정도로 우렁찼다. 새들의 교향곡을 들으며 맞는 일출은 특별했다.
여행정보
박경민 기자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흑산도행 쾌속선이 하루 3회 운항한다. 약 2시간 소요. 주중 편도 3만7500원. 흑산도에서 영산도는 10분, 홍도는 30분쯤 걸린다. 영산도는 숙식 예약이 필수다. 국립공원공단이 운영하는 ‘국립공원마을’ 홈페이지 참조. 영산도 트레킹은 마을~전망대~깃대봉~마을, 약 3.5㎞, 2시간. 홍도 트레킹은 홍도 1구~깃대봉~내연발전소~홍도 1구, 6㎞, 2시간 20분. 흑산도 트레킹은 흑산항~칠락산~큰재 삼거리~흑산항, 8㎞, 2시간 40분 소요.
진우석 여행작가 [email protected]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 학창시절 지리산 종주하고 산에 빠졌다. 등산잡지 기자를 거쳐 여행작가로 25년쯤 살며 지구 반 바퀴쯤(2만㎞)을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캠프 사이트에서 자는 게 꿈이다. 『대한민국 트레킹 가이드』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 책을 펴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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