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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법상 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우범소년' 규정에 따라 지난해 6개월간 감호시설에 위탁된 이예리(19·가명)씨가 지난 4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영근 기자

이예리(19·가명)씨는 지난해 4월 ‘우범소년’으로 통고돼 소년보호재판에 넘겨졌다. 이씨가 성인 남성과 교제해 임신했다가 중절한 바 있고 또 다른 남성에겐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은 송치서에서 “청소년의 성격과 환경에 비추어 형벌 법령에 저촉할 우려가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5월 열린 재판에서 가정법원은 이씨에게 6호 처분, 즉 6개월 동안의 민간시설 감호 위탁을 명령했다. 민간시설이긴 해도 외출 등 자유가 박탈된 셈이다.

이씨에겐 우범소년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다. 2022년 8월에도 경찰에 의해 우범소년으로 송치돼 6호 처분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다.

이씨는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미혼모에게 태어나 생후 3개월 만에 한 부부에게 입양됐지만 입양 부모의 지속적인 폭행에 시달렸다. 부친에게서는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2022년 이씨의 학대피해를 알게 된 고교 교사가 신고해 입양 부모와 분리 조치됐다. 부친은 아동학대와 친족 준강간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아동복지센터에 입소한 이씨가 적응하지 못하고 가출을 반복하며 음주·흡연 등을 하자 경찰이 우범소년이라며 소년부에 넘긴 것이다. 감호시설에선 생활규칙이 엄격해 외출도, 연락도 철저히 통제됐다고 한다.

이씨는 “첫 우범소년 송치는 나 때문에 경찰과 주변인이 힘들었으니까 어느 정도 납득이 됐다. 하지만 두 번째는 피해자인데 우려되는 환경에 노출됐다는 이유만으로 갇혀 억울했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범죄 저지를 우려있다고 인신 제약?
우범소년은 말 그대로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소년을 말한다. 1958년 소년법 제정 당시부터 존재한 규정이다. 소년법 제4조에 따르면 경찰서장·사회복지시설 기관장·보호관찰소장·보호자는 만 10세 이상(19세 미만)의 소년이 ①집단으로 몰려다니며 주위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성벽(性癖)이 있는 것 ②정당한 이유 없이 가출하는 것 ③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우거나 유해환경에 접하는 성벽 등을 발견하면 소년부에 송치(경찰) 또는 통고(보호자·학교·복지시설·보호관찰소)할 수 있다. 송치된 우범소년은 대개 범죄소년과 같은 보호관찰, 보호시설 위탁 등 처분을 받는다.

최근 우범소년 송치 사례는 급증하는 추세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2014년 131건에 불과했던 우범소년 접수 건수는 2020년 1446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에 1256건을 기록했다. 학교 폭력과 소년 강력범죄에 이목이 쏠리면서 경찰과 교육당국 등이 우범소년 조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교육부는 2020년 발표한 ‘제4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에서 “소년법 적용사건 수준의 학교폭력 발생 시 신속한 가해 학생 선도를 위해 우범소년 송치·통고 제도를 활용하라”고 주문했다.

법원행정처도 2018년 학교폭력 예방 대책으로 통고 제도를 활용하라는 안내 책자를 각 교육청에 배포했다. 서울 지역의 한 학대예방 경찰관(APO)은 “요즘 세대에 유독 우범소년이 많을 리 있겠냐”며 “교권이 추락하면서 비행 청소년을 직접 계도하려는 선생님은 별로 없고 대신 우범 규정을 개입 수단으로 활용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김주원 기자


“마이너리티 리포트냐” vs “대안 없이 폐지 섣불러”
문제는 우범소년 규정이 아동·청소년 인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을 낳는다는 점이다. 죄를 범하거나 형벌 법령을 저촉되는 행위를 한 소년이 아니라 “성격·환경 상 법령 저촉 행위를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예방적 처분을 하는 것이어서다.

엄선희 변호사(공익법 단체 두루)는 “예리씨뿐 아니라 아동보호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청소년이 관리와 통제가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우범소년으로 통고되는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는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추측에 따라 가둬 두고 자유를 크게 제약하는 규정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소년법을 연구한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범 규정은 범죄를 예측해 범죄자를 처벌하는 내용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와 유사하다”며 “우범소년이 범죄소년과 동일한 시설에서 머물며 갖는 낙인 효과의 폐해도 크다”고 비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 우범소년 제도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는 점 등 이유로 2021년 9월 법무부에 우범소년 규정 삭제를 권고하기도 했다.

이에 법무부는 2022년 10월 발표한 ‘소년범죄 종합대책’에서 “최소한의 사법적 개입은 유지하는 대신 장기보호관찰(5호)부터 소년원 송치처분(10호)까지의 과도한 보호처분은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소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1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위기 청소년 보호체계가 열악한 현실을 고려하면 사법적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실무에선 범죄를 저지른 소년의 추가 비행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적시에 위기 청소년에게 개입할 수단을 대안 없이 삭제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말했다. 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 윤지상 변호사(법무법인 존재)는 “판사로서 객관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놓인 청소년을 그대로 두기도 어려운 딜레마 상황이 있다”며 “자의적 판단을 최소화할 예외 규정 마련을 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미국 뉴욕주(州)와 일본은 법원 개입 전 아동 복지적 처우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고 있다. 뉴욕주는 우범소년 대신 가출, 무단결석, 음주 등 비행 청소년에 대해 경찰 차원에서 복지기관과 연계해 가정 상담, 비행예방프로그램 이수 등 다양한 ‘디버전(Diversion·전환)’ 조치를 받게 한다.

일본은 우범소년에 대해 지역사회와 경찰이 협력해 ‘소년보도센터’를 운영하고 가정방문 등을 지속해서 시도한다. 윤해성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아동복지시설뿐 아니라 학대예방 경찰관, 소년보호관찰관의 수가 턱없이 적다”며 “우범소년을 비난하기에 앞서 복지 체계 내에서 포섭하려는 노력을 다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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