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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가 도청 본관과 신관 사이 정원 나무를 뽑고 있다. 충북도는 이곳에 대형 정화조를 묻고, 주차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오윤주 기자


오윤주 | 전국부 선임기자

충북도청에선 요즘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자고 나면 정원의 나무가 하나둘 사라진다. 지난달 주차공간 확보 등의 이유로 본관~신관 정원 소나무 50여그루를 뽑더니, 최근 서관 앞 향나무 울타리 90m를 걷어냈다. 충북도청을 수호신처럼 지키던 본관 좌우 향나무, 역대 충북지사 등이 심었던 기념수 등도 모두 사라졌다. 민원실 옆 70m, 동관 뒤 180m 향나무 울타리도 걷어낼 참이다. 이들 나무는 청주 외곽에 들어선 충북도로관리사업소·안전체험관 등으로 옮겨가거나 갈 계획이다. 영산홍 등 관목류, 섬잣나무 등은 베거나 캐내 버리기도 했다. 파묘하듯 파헤쳐진 정원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일제 강점기인 1937년 6월 지금 자리(청주시 문화동)에 도청과 정원을 조성했으니, 87년 된 정원과 100살 안팎의 나무가 사라지는 셈이다.

충북도청은 문화유산이다.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은 충북도청 본관을 등록문화재 55호 대한민국 근대유산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지금 충북도청은 문화재라 손 못 대는 본관만 빼고 온통 공사판이다. 옛 관청의 전형으로 남은 충북도청은 2022년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촬영으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지만, 이젠 ‘이상한 도청’이 됐다.

지난해엔 광장을 조성한다며 본관 오른쪽 정원의 연못을 메우고 모과나무 등을 치웠다. 나무 그늘은 사라졌고, 드문드문 심은 잔디는 아직 자리잡지 못해 반맨땅 벌판이 됐다. 충북도청 정원의 상징 향나무 수십그루는 중심가지 머리 부분이 잘려나간 채 장승처럼 서 있다. 충북도는 나무 자태(수형)를 바로잡기 위한 가지치기라고 했지만 수목관리전문가(아보리스트)는 나무 생명을 위협하는 막자르기라고 경고한다.

중심가지 머리 부분이 잘려나간 충북도청 향나무 정원수. 오윤주 기자

사라진 충북도청 서관 앞 향나무 울타리. 오윤주 기자

충북도청 동관 뒤 향나무 울타리 거리. 충북도는 이 울타리를 철거한 뒤 주차공간을 확보할 참이다. 오윤주 기자

이 같은 ‘충북도청 리모델링’ 파격은 김영환 충북지사의 지시로 출발했다. 지금은 그의 3색(레이크·마운틴·시티) 파크 시리즈 가운데 ‘시티 파크’ 사업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도청을 중심으로 청주 옛 도심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인데, 내년까지 200억원을 들여 350대의 주차공간을 갖춘 후생관을 짓고, 40여억원을 들여 도청 정원과 교통체계 등을 정비한다. 그는 “ 충북도청은 1천만명이 찾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공언하지만, ‘천만 도청’의 근거는 뚜렷하지 않다.

환경·시민단체 등은 김 지사의 도청 재단을 기후위기 시대를 역행하는 조처라고 비판한다. 청주 상당공원과 더불어 도심 허파 구실을 하던 도청 정원이 망가지면서 미세먼지 흡수원이 사라지고 대기질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대기질 수치를 보면 충북은 더는 ‘청풍명월의 고장’이 아니다.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를 하는 정부가 내놓은 초미세먼지(PM2.5) 기준으로 보면 충북은 지난 3차(2021년 12월~2022년 3월) 27㎍/㎥, 4차(2022년 12월~2023년 3월) 29㎍/㎥로 거푸 전국 꼴찌다. 5차인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3월까지 23.8㎍/㎥로 전국 13위지만, 여전히 전국 평균(21㎍/㎥)을 밑돈다.

충북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청주도 ‘미세먼지 도시’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서쪽은 낮고, 동쪽이 높은 지형적 영향으로 대기가 정체돼 서쪽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미세먼지 등에 취약하다. 특히 청주 북부권인 북이면 등엔 미세먼지 주범으로 꼽히는 폐기물 소각장 6곳이 밀집돼 있는데 이들의 하루 처리 용량은 전국 처리량의 20%에 가깝다.

충북도가 향나무 울타리를 철거하자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이 충북도청 앞 거리에 내건 펼침막. 오윤주 기자

환경단체는 나무·숲을 가볍게 여기는 충북도의 역환경 정책으로 청주를 포함한 충북이 ‘대프리카’ 대구를 앞서는 뜨거운 도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대구는 1996년 이후 5천만그루 안팎의 가로수를 심어 해마다 체감 온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4년짜리 단체장에게 100년 이상 된 나무를 제거할 권한은 없다. 나무·숲을 없애고 주차장·광장을 만든다고 관광객·시민이 모이지 않는다. 무모한 실험을 그만두라.” 이성우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의 일갈이 가슴에 닿는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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