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필리핀 여성 3명 인신매매 피해
유엔, 정부에 완전한 배상’ 권고에
“재심 결과 따라 조처” 계획 제출
유흥업소 밀집 지역의 모습. 연합뉴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강제 성매매에 내몰렸던 필리핀 여성 3명을 인신매매 피해자로 보호하지 못한 한국 정부에 이들의 피해를 ‘완전히 배상’하라고 권고했지만, 정부는 당장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유엔에 제출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가 지난해 발표한 권고에 대해 여성가족부는 법무부 등 관계부처 입장을 종합한 이행계획서를 지난달 10일 낸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를 보면, 피해자들에게 완전한 배상(full reparation)을 하라는 권고에 대해 정부는 “(피해자들의 2023년 재심 청구) 판결 결과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할 것”이고만 밝혔다. 피해자들은 지난해 유엔 권고를 근거로 강제퇴거·구금 명령을 내린 한국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법원 판결(2020년 확정)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인신매매 피해자로 보지 않은 탓에
기소유예 처분, 강제퇴거 확정판결
“범법자로 대한 일 되돌려야” 촉구에
“배상 여부, 법원 판단 따라” 되풀이

피해자 쪽은 유엔이 여성차별철폐협약상 권리 침해 피해에 대한 ‘완전한 배상’을 권고한 만큼, 정부가 자신들을 범법자로 대하면서 비롯된 모든 일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엔 총회가 2005년 국제인권협약이 보장하는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 구제를 위해 가입국이 해야 할 사항을 정한 원칙을 보면, 피해자를 권리 침해 이전 상황으로 회복시키는 조치와 금전 배상, 명예·권리 회복을 위한 사법적 결정이나 공식 사과 등 ‘완전하고 효과적인 배상’을 제공해야 한다고 돼 있다.

세 여성은 가수로 활동하기 위해 예술흥행(E-6) 비자를 받아 2014년 한국에 왔으나, 주한미군기지 인근 유흥업소에 끌려가 업주의 강요로 성매매를 하다 경찰 단속에 걸려 45일간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현 출입국·외국인청)에 구금된 뒤 강제퇴거 명령을 받았다. 당시 검찰은 성매매 혐의로 입건된 이들에 대해 기소유예(피의사실은 인정되나 불기소) 처분했다. 법원은 검찰이 유흥업주가 피해자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다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이들이 제기한 강제퇴거 명령 취소 소송,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모두 기각했다.

하지만 유엔 여성차별철폐위는 지난해 10월 세 여성이 낸 진정 사건(2018년 접수)을 검토한 결과, 성매매 강요 피해를 인정하지 않은 수사기관과 법원 잘못을 지적하며 “대한민국이 강제 성매매를 당한 이들을 인신매매 피해자로 확인·보호하는 데 실패하고 범법자로 대했다”고 판단했다.

정부가 지난달 10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한 이행보고서 내용 중 일부. 정부는 필리핀 여성 3명에게 ‘완전한 배상’을 제공하라는 권고에 대해 “(재심) 재판 결과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답변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김종철 변호사(공익인권법센터 어필)는 “유엔 원칙에 비추어 정부는 피해자들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고, 성매매를 강요한 유흥업주를 재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들이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 세 여성은 합법적 체류 자격 없이 불안정한 상태로 재심 재판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법무부는 국내에서 재판을 진행 중인 외국인이 체류 허가를 신청하는 경우 기타(G-1) 체류 자격을 부여하지만, 피해자들은 이 과정에서 강제퇴거당할 것을 우려해 허가 신청 자체를 못하고 있다.

법무부는 “진정인들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배해상 소송의 재심이 진행 중이므로 배상 여부는 법원 판단에 따라 검토돼야 할 사안”이라며 검찰이 성매매 강요 혐의가 없다고 본 유흥업주 재수사 요구에 대해서도 “법무부는 개별 사건에 대한 수사 재기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국내 체류 허가 여부에 대해선 “진정인들은 2022년 2월부터 체류 기간 연장 허가를 신청하지 않고 불법 체류 중”이라며 “체류 허가는 국내법 위반 여부와 제출 서류 등을 확인하고 심사해 결정하는 것으로 (이들에 대한) 허가 여부는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앞서 법무부는 피해자들이 청구한 재심을 심리 중인 법원 재판부에 “유엔 여성차별철폐위 결정이 어떤 법적 구속력 내지 영향력을 미치는지 의문”이라며 각하(내용 검토 없이 종료)해달라는 의견을 냈다. 김종철 변호사는 “재심을 청구한 건 유엔 권고를 한국 정부가 이행할 계기를 제공한 것”이라며 “그래서 인용 의견(손해배상 책임을 인정)을 낼 것을 기대했는데 각하 의견을 냈다는 건 유엔 권고를 이행할 의도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4146 “하남 사건은 ‘교제 살인’…스무살 동생 억울함 풀어 달라” 랭크뉴스 2024.06.13
34145 3호선서 돈 뜯은 '여장남자'…"또타지하철 앱 긴급신고 당부" 랭크뉴스 2024.06.13
34144 탐사수 1위 만든 알고리즘 조작… 공정위, 쿠팡에 1400억+α ‘철퇴’ 랭크뉴스 2024.06.13
34143 '휠체어 탄 손흥민'… 도 넘은 중국 합성 사진에 '부글부글' 랭크뉴스 2024.06.13
34142 새 대법관 후보 9명 압축…조한창·박영재·노경필·윤강열 등(종합) 랭크뉴스 2024.06.13
34141 한국인이 뽑은 '최애' 대통령 1위는 노무현…윤석열 대통령 순위는? 랭크뉴스 2024.06.13
34140 '유산은 독' 카이스트에 515억 기부한 정문술 전 회장 별세... 향년 86세 랭크뉴스 2024.06.13
34139 쿠팡 제재하면 로켓배송 축소?…공정위 "여론 오도" 반박 랭크뉴스 2024.06.13
34138 헌재, '이정섭 탄핵심판' 증인으로 처남·포렌식 업체 대표 채택 랭크뉴스 2024.06.13
34137 최저임금위 “현재로선 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 논의 어려워” 랭크뉴스 2024.06.13
34136 [단독] 두 아들 양육비 5500만 원 안 준 '나쁜 아빠' 법정구속...세번째 실형 랭크뉴스 2024.06.13
34135 [르포] 승강기 중단에 망가진 일상…'계단 공포증' 덮친 아파트 랭크뉴스 2024.06.13
34134 네이버 선 긋기 나선 라인야후… 日에서만 '라인페이' 서비스 종료 랭크뉴스 2024.06.13
34133 [단독]인권위원이 비판기사엔 “쓰레기”, 인권단체엔 “장사치”라 막말 랭크뉴스 2024.06.13
34132 쿠팡, 1400억 과징금 맞자 “로켓배송 막히면 소비자가 피해” 랭크뉴스 2024.06.13
34131 수원지검 "'이화영 1심' 비판한 민주당 주장은 사실왜곡·허위" 랭크뉴스 2024.06.13
34130 尹, 중앙亞 핵심 협력국 우즈벡 국빈방문…에너지·인프라 협력 나선다 랭크뉴스 2024.06.13
34129 이재용 "삼성답게 개척하자"…생산 최적화로 TSMC와 정면승부 랭크뉴스 2024.06.13
34128 [단독] 두 아들 양육비 5500만 원 안 준 '나쁜 아빠' 법정 구속...세번째 실형 랭크뉴스 2024.06.13
34127 롤스로이스男 마약 처방·환자 성폭행 의사, 1심 징역 17년 랭크뉴스 2024.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