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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친체로신공항 조감도. 자료 한국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한국공)가 지난 2019년 수주한 페루 친체로신공항의 사업총괄관리를 위해 현지에 지사를 설치하면서 지사장 인건비와 항공료·주거비의 80% 이상을 컨소시엄에 참여한 민간업체들에 부담시켜온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공은 인천공항을 제외한 김포·부산·제주공항 등 국내 14개 공항의 운영을 책임지는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이다.

특히 한국공은 이렇게 민간업체들로부터 받은 분담금을 지사장에게 지급하는 대신 공사의 수익으로 처리해온 사실도 확인됐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공기업이 민간업계의 해외사업을 지원하기는커녕 부당하게 갑질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1일 한국공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공과 도화엔지니어링·건원엔지니어링·한미글로벌 등 4개 기업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2019년 페루 정부가 발주한 친체로신공항의 사업총괄관리(PMO, Project Management Office)를 수주했다. 친체로신공항은 세계적인 관광지인 마추픽추로 가는 관문을 새로 건설하는 사업이다.

이 중 PMO는 발주처인 페루 정부를 대신해 ▶건설 참여 업체를 선정하는 계약관리 ▶사업의 공정 및 품질 관리 ▶설계 검토 ▶시운전 등 사업 전반에 대한 업무를 맡게 되며, 용역금액은 약 350억원이었다. 당시 계약은 페루 정부의 요청에 따라 정부 간 계약(G2G)으로 진행됐다.
손창완 전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2019년 11월에 페루 리마 교통통신부(MTC)에서 열린 쿠스코-친체로 신공항사업 착수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따라 공기업인 한국공이 컨소시엄을 대표해 관련 회계와 행정, 세무처리 등을 위한 별도의 지사를 페루 수도인 리마에 설치하게 됐다. 위치는 다른 컨소시엄 참여사들이 지사를 둔 건물과 같은 곳이었다. 한국공의 예민규 해외사업부 과장은 “당초 페루에 지사를 세울 계획이 없었는데 정부 간 계약으로 진행되면서 지사를 설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공 지사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이 걸림돌이 됐다. 논의 끝에 한국공의 페루지사 설립과 운영·관리·철수에 관련해 소요되는 재무회계·인력투입 등 제반비용을 컨소시엄 구성사들이 지분율에 따라 분담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컨소시엄 지분율은 도화 41%, 한미글로벌 21%, 건원 19%, 한국공 18%였다. 이렇게 보면 한국공 페루지사 운영비의 82%를 3개 민간기업이 부담하는 셈이다. 문제는 한국공이 요구하는 분담 내역이다. 한국공에 따르면 지난해 페루지사 운영경비는 3억여원이었다. 이 가운데 지사장 인건비가 1억 9700여만원으로 전체의 64%에 달했다.

여기에 지사장 주거비(3270여만원)와 중간귀국휴가 등에 소요된 항공료(1540여만원)까지 합하면 지사장 관련 비용이 전체 운영경비의 80%를 넘는다. 나머지 항목은 회계자문비(2340만원)와 통역행정자문비(3750만원)였다. 한국공은 여기에 부가세(18%)를 포함한 3억 6000여만원 중 82%인 2억 9600여만원을 3개 민간업체가 분담하라고 요구했다. 한국공의 부담금은 6500여만원이었다.
2021년 착공식 당시 페루 친체로신공항 건설현장 모습. 뉴스1

무엇보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한국공이 파견한 지사장의 인건비를 민간업체가 분담하는 게 적절하냐 여부다. 지사장은 한국공의 2급 간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임금을 한국공이 지급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사업을 많이 하는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나 국가철도공단은 지사를 설립한 경우 한국공과 달리 파견 임직원의 인건비와 항공료, 주거비 등을 자체 예산으로 충당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가철도공단 관계자는 “컨소시엄 협약에 따라 각종 비용을 분담할 수는 있겠지만, 파견 직원의 인건비까지 분담 대상에 넣는 사례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기업 관계자는 “굳이 인건비를 분담시키려면 통상적인 임금을 제외하고, 해외 파견으로 인해 추가된 비용에 대해서만 분담을 요구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한국공은 지사장 인건비 분담 명목으로 민간업체로부터 받은 돈을 지사장에게 지급한 게 아니라 공사의 ‘잡이익’으로 처리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지사장 인건비와 항공료, 주거비는 한국공이 이미 자체 예산에 편성해 지급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자체 예산으로 지사장 관련 비용을 충당해놓고서도 협약을 근거로 민간업체들로부터 따로 돈을 받아 수익으로 처리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분담금이 4년간 12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김포공항 옆에 자리한 한국공항공사 청사. 사진 한국공항공사
한국공의 하정인 해외사업실장은 “컨소시엄 구성사 간 협약에 따라서 비용을 분담한 거라 문제 될 게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직 국토부 고위관료는 “공기업으로서 기본적인 자세에 문제 있는 것 같다”며 “민간기업의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돕지는 못할망정 공기업임을 내세워 사실상 갑질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컨소시엄 구성사들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사업에 차질을 빚으면서 민간업체들은 적지 않은 손해를 보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협약만을 내세워 지사장 인건비 등의 분담을 요구하는 건 불합리한 처사”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논란이 불거지자 이정기 한국공 사장직무대행(부사장)은 “비용분담 항목이나 과정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조만간 해당 기업들과 논의해서 합리적인 방향으로 협약을 개정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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