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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20대 그룹 총수 현황 분석

상속세·부채 돌려막기 재원 조달
의결권엔 영향 없어 많이 활용
담보 주식 주가 하락 땐 위험 커

국내 20대 그룹 중 지주회사 소유 지분의 절반 이상을 담보대출로 잡힌 총수가 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속세 납부를 위한 자금이나 부채 상환 돌려막기 용도로 주식담보대출(주담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총수들의 주담대 비중이 위험 수위에 도달하며 경영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는 경고음도 나온다.

10일 국민일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20대 그룹 총수의 지주사 지분 담보대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주사 지분의 절반 이상을 활용해 대출을 받은 총수는 5명이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우 롯데지주 보유 지분의 75%(1022만6000주)가 주담대에 묶였다. 이날 종가 기준 2587억원 규모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한화 보유 지분의 59%(약 2629억원 규모)를 담보로 대출받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58%), HD현대의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54%), 조원태 한진 회장(54%) 등도 보유 지분의 절반 이상을 담보 잡혀 대출을 받았다.

주담대는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대출이다. 대주주는 담보로 잡힌 주식에 대해서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다. 경영권을 유지하면서도 현금을 쉽게 마련할 수 있는 수단인 셈이다.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서도 주담대를 빼놓을 수 없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상속세 납부 과정에서 지난해 11월 280만주를 담보로 한국증권금융으로부터 1375억원을 대출받은 바 있다. 올해 2월에도 50만주를 담보로 210억원을 추가로 대출받았다. 2019년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별세하면서 한진 일가가 납부한 상속세는 총 2700억원 규모였다. 조원태 회장은 한진칼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등 상속세 납부를 위한 유동성 확보에 애를 써야 했다.

소수 지분으로 대기업 집단을 이끄는 국내 재벌들의 지배구조를 보면 주담대는 ‘양날의 검’이다. 담보 주식의 주가가 내려가면 치명적이다. 대출자는 주가가 떨어지면 추가로 담보를 설정해야 한다. 주담대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이는 이자 부담을 키우고 총수의 실질적인 자산 손실을 일으킨다. 최악은 증권사 반대매매로 이어지는 경우다. 총수의 지분이 껍데기로 전락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반대매매가 이뤄지면 시장에 주식이 대량으로 매물로 나오고, 외국계 헤지펀드 등이 지분을 사들여 기업 경영권을 흔들 수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지급해야 하는 1조3808억원을 확보할 수단으로 주담대가 꼽힌다. 그러나 최 회장은 이미 주담대를 일반적인 한도(지분 시세의 50~60%)까지 받은 상태라 주가가 급등하지 않는 한 여력이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주담대 금액을 가장 많이 늘린 곳은 삼성 일가였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 관장의 주담대는 1조7500억원으로 2022년 말 8500억원 대비 9000억원 늘었다. 이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각각 3870억원과 2017억원의 대출액을 늘렸다.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