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난 5일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의 북한강변.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선 도로 한 쪽에 을씨년스러운 회색빛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었다. 기둥엔 벌겋게 녹슨 철근이 드러나 있었다. ‘위험’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안내판이 무색하게 정문은 활짝 열린 채 였다. 당초 이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에 51실의 객실을 갖춘 숙박업소로 계획됐다. 하지만 시행사 자금난으로 1990년 시작된 공사가 1994년 중단되며 30년째 흉가처럼 방치됐다. 주민 김모(68)씨는 “건물이 방치돼 지역 흉물이 되고 있다. 빨리 공사를 재개하거나 철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착공 신고 후 공사 중단 기간이 2년 이상 지난 ‘장기 방치 건축물’이 지자체와 주민들의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데다 청소년들의 탈선 장소로 악용될 우려가 있어서다. 10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2년 11월 기준 전국의 ‘장기 방치 건축물’은 286곳이다. 169곳은 공사가 중단된 지 15년 지난 건물이었다. 강원도가 41곳으로 가장 많고 이어 경기(34곳)·충남(33곳)·충북(27곳) 등이 뒤를 이었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 고림동의 한 아파트 단지. 2000년부터 공사를 시작했지만 건설사의 부도로 공정률 45%에서 공사가 멈췄다. 최모란 기자

장기 방치 건축물이 군락을 이룬 곳도 있다. 용인이 대표적이다. 장기 방치 건축물 11곳 가운데 10곳이 처인구 고림동에 몰려있다. 한 부지에서 2000년 11월 착공한 아파트 10개 동이 시공사 부도로 2002~2003년 공사가 멈췄다. 외관이 갖춰진 상태(공정률 45%)에서 공사가 중단돼 ‘흉가 체험’ 등 일탈 목적의 무단침입 사례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인근에 사는 한 60대 주민은 “동네 가장 위쪽에 여러 동의 아파트 건물이 방치되면서 동네 미관을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에서도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공사 중단 건축물 사유재산인데다 건축주·시행사·시공사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경우가 많아서다. 용인시 관계자는 “고림동 아파트는 단지 10개 동을 각각의 사업자가 한 동씩 맡아 공사를 진행해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우선 펜스를 설치하고 관리자를 두게 하는 등 안전 조치 명령을 내린 상태”라고 말했다. 남양주시 관계자도 “안전사고 위험에 대비해 장기 방치 건물에 정기 안전조치를 시행하고 있지만, 사유재산인 만큼 지자체가 나서 건축을 종용할 수도 없다”고 털어놨다.

다만, 중앙과 지방정부 개입으로 문제가 해결된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과천시 갈현동 우정병원 부지가 대표적이다. 1997년 공정률 60% 단계에서 시행사 부도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20년 넘게 방치된 부지는, 2015년 ‘장기방치 건축물 정비 특별법’ 제정 후 1호 사업 대상지가 되며 현재 174가구 규모 아파트로 변신했다.

경기 안양시는 안양역 앞에 장기 방치된 건축물(원스퀘어) 부지를 임시 공영주차장으로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안양시
경기 과천시는 장기 방치 건축물인 갈현동 우정병원 부지를 정비해 아파트 단지로 만들었다. 과천시

안양역 앞에 24년간 방치됐던 쇼핑몰 ‘원스퀘어’ 건물은 임시 공영주차장으로 탈바꿈한 사례다. 지하 8층, 지상 12층 규모의 쇼핑몰로 건설 도중 1998년 시행사가 부도나면서 골조공사만 끝낸 채(공정률 67%) 방치됐다. 경매를 거쳐 해당 건물을 인수한 건축주는 안양시와 협의해 자진 철거를 결정했다. 2025년 5월까지 해당 부지를 임시 공영주차장(75면)으로 사용하고 있다.

장희순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각 지자체가 전담 조정위원회를 구성하거나, 일정 요건을 충족한 방치 건물의 철거·활용 여부를 빠른 시일 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을 만드는 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중앙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4062 [에디터의 창] 윤석열 정권의 공모자들에게 랭크뉴스 2024.06.13
34061 ‘롤스로이스 男 마약처방·환자 성폭행’ 의사 징역 17년… “사회적 파장 큰 범죄” 랭크뉴스 2024.06.13
34060 현대차, 6년 만에 파업?…기본급 10만원, 성과금 350% 등 제안에 노조는 퇴장 랭크뉴스 2024.06.13
34059 밀양 사건 피해자 “응원 댓글에 힘이 나…관심 꺼지지 않았으면” [현장영상] 랭크뉴스 2024.06.13
34058 엔비디아에 가려진 또다른 AI 수혜주 브로드컴, 저평가 상태라 성장성 커 랭크뉴스 2024.06.13
34057 법원, ‘롤스로이스 마약 처방·환자 불법촬영’ 의사에 징역 17년 선고 랭크뉴스 2024.06.13
34056 내년 3월 공매도 재개… 불법으로 50억 이상 벌면 ‘무기 징역’ 랭크뉴스 2024.06.13
34055 “엄마, 휴대폰 액정 깨졌어”…95억 원대 피싱·사이버 사기 조직 검거 랭크뉴스 2024.06.13
34054 '부안 지진' 중대본 "향후 일주일, 큰 규모 여진 가능성" 랭크뉴스 2024.06.13
34053 “임성근, 채 상병 장례식도 못 가게…” 당시 대대장 ‘긴급구제’ 신청 랭크뉴스 2024.06.13
34052 채 상병 직속상관 “공동정범 임성근이 차별·학대···눈빛도 두려워” 랭크뉴스 2024.06.13
34051 노인 쓰러져도 "엘베 작동 못해줘"…소방관은 13층 계단 뛰었다 랭크뉴스 2024.06.13
34050 “韓, 환율·물가 우려에 서두를 이유 없어…美 인하 뒤 움직일 것” 랭크뉴스 2024.06.13
34049 민주, 김건희 여사 특검법·방송 3법 당론 채택‥입법 재추진 랭크뉴스 2024.06.13
34048 정신병원서 만난 70대와 동거…"아빠" 부르다 살해한 20대, 왜 랭크뉴스 2024.06.13
34047 밀양 성폭력 피해자 “잘못된 정보로 2차 피해 없어야” 랭크뉴스 2024.06.13
34046 현대차 노조, 올해 임협 교섭 결렬 선언…24일 파업찬반 투표(종합) 랭크뉴스 2024.06.13
34045 "PB 검색순위 조작" 쿠팡에 과징금 1천400억원…"즉각 항소"(종합) 랭크뉴스 2024.06.13
34044 지하철 3호선 치마 입은 거구 남성… 여성만 골라 금품 갈취 랭크뉴스 2024.06.13
34043 "각자도死 내몰려…집단휴진 결의 참담" 92개 환자단체 절규 랭크뉴스 2024.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