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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철의 ‘좋은 죽음을 위하여’] ⑪ 돌봄 없는 존엄사는 불가능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문의였다. 85세 여성이 파킨슨병으로 3년째 입원 중이라고 했다. 최근 심한 폐렴을 겪은 후 상태가 더 악화돼 음식을 잘 삼킬 수 없게 됐다고 한다. 자녀 3남매는 콧줄(비위관) 삽입을 거부했다. 그래서 환자는 정맥영양제 주사로 연명했다. 콧줄만 꼽지 않으면 곧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한 달 두 달 지금의 상태가 지속됐다. 장기 휴가를 내고 미국에서 들어온 아들도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후배의 고민은 이러했다. 3남매가 찾아와 수액을 모두 중단해 달라며 화를 냈다고 했다. 또 무의미한 치료로 어머니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현재 환자의 의식상태를 물었다. 거동이 어려운 완전 와상 상태인데 묻는 말에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반응은 한다고 했다. 혈압이나 산소포화도 등 활력 징후도 안정적이라고 했다. 2016년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으로는 의식과 활력 징후가 급격히 악화돼 의사 2인이 모두 임종이 임박했다고 판단할 때만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일단 환자는 임종 과정이 아니므로 자녀들 요청대로 치료 중단은 불가능하다. 만약 임종 과정이더라도 연명의료결정법 19조 2항에서는 마지막까지 영양과 수분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으니 3남매의 요청은 애당초 들어주기 불가능한 것이었다. 당장 영양 수액을 중단하고 싶다면 환자를 퇴원하게 하고 가족들이 집에서 돌보는 방법이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병원에서만 적용될 뿐 집에서의 돌봄은 법 적용 바깥이다. 집에서 조금씩 물과 식사를 드려 보다 삼키지 못하면 자연스레 곡기를 끊고 자녀들 바람대로 편안한 임종에 이르게 될 것이다. 전통적인 자연사다.

후배는 내 조언을 곰곰이 들은 뒤 3남매를 다시 불러 모았다. 병원에서 수액 중단은 불법이니 원한다면 집으로 모시고 가는 방법뿐이고 대신 임종 후 경찰 조사 등 난처한 일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환자가 말기 파킨슨병 상태이며 가족 전체의 의견일치를 기재한 진단서를 미리 발급해 주겠다고 했다.

일주일 뒤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3남매 중 누구도 집으로 모시겠다는 사람이 없어 결국은 지금처럼 영양 수액으로 연명하며 입원을 유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노쇠해지거나 병이 깊으면 집에서 자연스럽게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던 자연사는 불가능한 대한민국이다.

박중철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교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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