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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걸개그림 그렸다 안기부 연행’ 전승일 감독
전승일 감독이 10일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위반 재심개시청구 기자회견에서 심경을 밝히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19일간 밀실에서 구타당해

“고통과 두려움 매일 반복”

형제복지원 다큐 참여 등

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해와

“인간 존엄 위한 재판 필요”


‘1989년 여름…. 나는 남산 안기부 지하밀실에서 매일매일 구토를 했다…. 멈출 수가 없었다.’

한 청년이 변기에 구토를 하는 듯한 모습이 담긴 그림에 전승일 감독(59)이 토해내듯 적어둔 글귀다. 국가폭력을 당한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 곳곳에는 항상 고개를 푹 숙이고 웅크린 청년이 등장한다. 얼굴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국가폭력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오를 때면 언제나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전 감독은 대학생이던 1989년 3월 ‘민족해방운동사’ 대형 걸개그림 제작에 참여했다가 공안당국에 끌려갔다.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동참했는데 공안당국은 북한 주장과 활동에 동조해 이적표현물을 제작한 것이라고 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끌려갔을 당시 전 감독은 24세였다. 전 감독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돼 1991년 4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확정받았다.

어느덧 흰 수염이 자란 전 감독은 안기부에 연행됐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렸다. 국가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는 “매일 반복되는 고통이자 두려움”이라고 했다. 그는 “힘없는 대학생이 수사관 7명에게 연행돼 19일 동안 밀실에 갇힌 기억은 영혼까지 파괴하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말했다. 안기부 지하밀실에서는 무차별 폭행이 이뤄졌다. 구타당하는 동료들의 비명을 들으면서 잠도 자지 못한 채 그가 써내야 했던 자술서만 1000쪽이 넘었다.

전 감독은 2012년부터 ‘포스트 트라우마’라는 프로젝트를 벌였다. 국가폭력으로 받은 상처와 고통을 예술적으로 표현해 극복하려는 자신만의 방법이었다. 그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작업에도 참여하며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했다.

전 감독은 “스스로 저만의 서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시작했다”며 “작업하는 순간엔 트라우마를 잊을 수 있었지만 일상 곳곳에서 발생하는 고통은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치유를 위해 전 감독은 국가에 책임을 묻기로 했다. 국가폭력을 당한 날로부터 35년 만이다. 전 감독은 군사정권 독재에 저항한 6·10 민주항쟁 기념일에 맞춰 10일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전 감독은 이날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 이야기는 저만의 이야기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존엄과 권리에 대한 매우 보편적인 접근”이라며 “정당한 절차를 통해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부터가 올바른 치유의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당시 안기부가 체포영장 없이 전 감독을 불법 체포해 가혹행위를 일삼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구속 기한을 연장해 재심 사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황호준 민변 사무처장은 “국민의 신체 자유를 보장할 의무를 부담하는 국가기관이 중대한 기본권 제한을 수반하는 구속 기간 연장 결정을 하면서 절차적 요건을 준수하지 않았다”며 “검사의 막무가내식 구속 기간 연장 시도를 판사가 적법 요건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허가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서 재심 사유가 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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