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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서울경제]

우리 교육의 문제점이 공론화될 때마다 고착화된 대학 서열이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곤 한다. 왜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대학 서열 때문에 망국적 과열 경쟁과 지나친 사교육비 지출이 유발된다는 주장이 대부분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대학 서열은 어느 국가에나 있는 것이므로 그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대학 서열이 매년 요동치는 국가도 거의 없는 만큼 서열이 유지된다는 현상 자체도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우리가 주의 깊게 따져 보아야 할 점은 왜 대학 서열이 요지부동인가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 서열이 변화하지 않는 근본 원인은 대학들 간에 제대로 된 경쟁이 없다는 데 있다. 경쟁이 없는 것은 대부분 교육부 규제 때문인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 등록금 동결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서열은 좋은 학생들이 몰리는 순으로 결정되는데, 소비자가 물건을 고를 때 가성비를 따지듯 대학 입시에서도 학생과 학부모는 가성비를 따진다. 그런데 모든 대학의 등록금이 묶여 있으므로 가성비 순위도 기존의 대학 서열 순위와 일치할 수밖에 없다. 모든 학생이 세칭 스카이(SKY)에서 시작하는 기존 서열 순서로 진학을 희망하므로 대학 서열에는 변화가 없고, 입시는 학생을 성적순으로 배치하므로 입시 경쟁이 과열되고 사교육 지출은 늘어난다.

등록금이 동결되어도 대학이 교육의 질을 크게 개선하면 가성비 순위가 높아질 수 있다. 지금까지는 SKY가 최상위권을 고수하고 있었더라도, 명문 사학이 대폭적인 투자를 하여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면 순위가 뒤바뀌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런데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화되기에는 여건이 만만치 않다. 안 그래도 낮은 등록금이 15년 이상 동결되어 온 사학에서 그런 투자를 할 여력이 남아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이라면 당장 돈이 없어도 은행에서 빌려서 투자하고, 향상된 제품을 비싸게 많이 팔아 은행 빚을 갚으면 된다. 그러나 사학은 교육의 질을 높여도 입학 정원과 등록금이 묶인 탓에 등록금 수입에는 변화가 없다. 투자비용을 회수할 방법이 없으니 투자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가성비가 변하지 않으므로 대학 서열도 요지부동이다.

학교에서는 선의의 경쟁이 모든 학생의 성과를 높인다고 가르친다. 맞는 말이다. 등록금이 자율화되면 대학들 간에 공격적인 투자와 특성화로 높은 가성비를 제공하여 좋은 학생들을 더 많이 유치하려는 경쟁이 활성화될 수 있다. 규제가 아니라 이런 자율과 경쟁이 대학 발전의 핵심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그 수혜자는 우리 학생들이고, 이들이 이끌어 갈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정작 교육부는 등록금을 지속적으로 동결하여 선의의 경쟁을 억제하였고, 그만큼 사학의 발전이 저해되는 정책 오류를 범해 왔다. 등록금 규제의 명분은 가계에 부담이 된다는 것인데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라 자부하는 대한민국의 정부가 내놓기에는 참 초라한 명분이다. 우리 사립대 등록금은 하버드 대학의 8분의1 수준이다. 대한민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므로 단순하게는 명문 사학 등록금이 지금보다 3~4배는 높아져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등록금을 3배로 올리면 전체 학생의 3분의2, 4배로 올리면 4분의3에게 등록금을 면제해 줄 수 있다. 등록금을 인상하면 저소득층의 가계 부담은 오히려 더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정말 가계 부담을 걱정한다면 세금이나 덜 걷을 일이다.

등록금 동결이 지속되면서 얼마 안 되는 교육부의 지원금이라도 받지 못하면 재정이 흔들리는 사학들이 늘어났고 교육부의 사학에 대한 영향력은 그만큼 커지고 있다. 우리 명문 사학들이 교육부의 지시 없이는 제 구실을 못할 정도의 수준은 아닐 텐데, 사학의 입시와 교육에까지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오히려 자율성을 침해하여 사학의 발전을 저해할 뿐이다. 이런 구도에서 양산되는 것은 싸구려 교육뿐이며, 최상위권 인재를 필요로 하는 인공지능(AI)의 시대에도 역행한다. 그 피해자는 우리 청년들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다. 사학의 발전 없이는 교육의 미래도,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사학의 발목을 잡는 등록금 규제는 지금이라도 당장 철폐하고 사학에게 자율성을 돌려주어야 한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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