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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한 9일 오전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에 기존 대북 방송 확성기가 있었던 군사 시설물(오른쪽)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시설물 안에 확성기가 설치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봉규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북쪽의 ‘오물 풍선’ 날리기가 맞물리며 이어지던 남과 북의 힘겨루기에 10일 ‘일단 멈춤’ 신호가 들어왔다. 북쪽은 ‘오물 풍선’ 날려보내기를 멈췄고, 남쪽도 이날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의 ‘일단 멈춤’은 국면 전환을 염두에 둔 방향 전환의 신호라기보다, 더 큰 갈등·충돌을 앞둔 폭풍 전야의 숨 고르기에 가까운 것 같다는 관측이 많다. 실제로 남과 북 모두 책임을 떠넘기려 할 뿐, 먼저 물러서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이날 북쪽이 군사분계선 이북 전방지역에 대남 방송용 확성기를 설치하는 동향이 식별됐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 사태의 불쏘시개 구실을 한 탈북민단체 등의 대북전단 살포를 단속·제어할 뜻이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단 등 살포 문제는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고려해 접근하고 있다는 기존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대북) 전단이 경찰관직무집행법상 제지할 수 있는 근거인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급박하고 심각한 위협’에 해당한다는 게 명확하지 않다고 본다”며 “제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시민들을 직접 상대하는 서울시·경기도와 같은 지방자치단체의 행보는 중앙정부와 사뭇 다르다. 국민의힘 소속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오후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서울경찰청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물 풍선’ 관련 서울시 통합방위회의를 열어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로 서울 시민들이 불쾌함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 군사 충돌 시 심각한 피해를 볼 위험이 큰 경기 북부 등 접경지역 주민을 챙겨야 할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 4일 “굳건한 안보 태세와 대화 노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주민 불안을 해결할 수 있다”며 정부에 정책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한달째 일파만파인 이번 사태에 시민들의 피로도가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방증이다. 탈북민단체 대북전단 1차 살포(5월10일)→북 ‘오물 풍선’ 1·2차 남하(5월28~29일, 6월1~2일)→정부, ‘9·19 군사합의’ 전부 효력 정지(6월4일)→탈북민단체 대북전단 살포 재개(6월6~7일)→북 ‘오물 풍선’ 3차 남하(6월8~9일)→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6월9일)→북 ‘오물 풍선’ 4차 남하(6월9~10일)로 이어지는 남과 북의 ‘책임’ 떠넘기기와 맞불 놓기는 악순환의 수렁으로 더 깊이 빨려들고 있다. 여러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여기서 한발짝만 더 내디디면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남과 북 모두 자제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군은 이날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하지 않았다. 전날엔 군이 운영하는 대북 라디오 ‘자유의 소리’를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최전방지역에서 고정식 확성기로 북쪽을 향해 방송했다. 합참은 2018년 4·27 판문점선언 채택 이후 중단한 대북 확성기 방송을 6년2개월 만에 재개한 직후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추가 실시 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북쪽은 9일 밤~10일 새벽에 걸쳐 310여개의 ‘오물 풍선’을 날려 보냈고, 그 가운데 50개 이상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에 떨어졌다. 북쪽이 합참의 경고를 ‘무시’한 셈인데, 합참은 일단 확성기 방송 재개로 맞대응하지 않은 것이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군은 전략적·작전적 상황에 따라서 융통성 있게 작전을 시행하고 있다”며 직답을 피했다. “군은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고 명령이 하달되면 시행한다”는 합참의 평소 태도에 비춰, 이날 확성기 방송 중단은 군보다 높은 ‘상부’의 지침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사태 초기부터 강경 대응을 주도해온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특별한 추가 언급 없이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3국 순방길에 나섰다. 대북 대응 통제지휘소 구실을 해온 장호진 국가안보실장과 김태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도 동행했다.

윤석열 정부의 이례적 ‘자제 모드’에 관해서는 분석이 엇갈린다. 이성준 공보실장은 “어제 김여정 담화는 기존과 약간 수사적 위협의 수준에 차이가 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남 발언 수위가 ‘예상보다 낮다’는 뜻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북쪽의 내부 동향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일단 숨 고르기를 하는 것일 수 있다”고 남북관계에 오래 관여해온 원로 인사가 말했다.

앞서 북쪽은 남쪽의 확성기 방송 재개 직후인 9일 밤 11시 넘어 발표한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담화’로 “서울이 더 이상의 대결 위기를 불러오는 위험한 짓을 당장 중지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 한국이 국경 너머로 삐라(전단) 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쪽은 이 담화에서 “쉴 새 없이 휴지를 주워 담아야 하는 곤혹은 대한민국의 일상이 될 것”이라며 기존의 “백배 오물” 대응 기조를 재확인하면서도 “새로운 대응”이라는 표현으로 ‘오물 풍선’을 넘어서는 대남 대응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북쪽은 지난 5월26일 ‘김강일 국방성 부상(차관) 담화’를 통해 “한국 괴뢰 해군과 해양경찰의 각종 함선들이 우리의 해상국경선을 침범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어느 순간에 수상·수중에서 자위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며 ‘군사적 대응’의 여지를 일찌감치 열어뒀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도 지난 1월15일 최고인민회의 14기 10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북방한계선’에 대해 “불법무법”이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곧 전쟁 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책임 소재를 따지기 전에 국민의 생명·안전을 위해서라도 윤석열 정부가 상황을 이쯤에서 멈춰 세워야 한다”며 “그러자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일찍이 지적했듯이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을 근거로 대북전단 추가 살포를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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