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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박아무개(30)씨가 지난 2월 통보받은 주택 경매 절차 개시 통보문. 박씨 제공

“임대인이 사업을 크게 하고 부동산이 많으니 보증금 반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박아무개(30)씨는 공인중개사의 설명을 듣고 2021년 6월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한 다가구주택에 보증금 8500만원 전세로 입주했다. 다가구주택인데다 근저당까지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임대인의 사업 규모를 강조하는 공인중개사의 설명에 안심했다. 지난 2월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통지 받고서야 큰 문제가 터졌음을 알았다. 대부분 20~30대인 이웃들도 같은 사정에 놓여있었다. 전세사기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지난해 초 인천 미추홀구를 시작으로 서울, 경기, 대전 등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전북 전주에서도 ‘도미노 전세사기’가 발생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전주 완산경찰서에 접수된 고발장 등을 보면, 박씨의 집주인 ㄱ씨는 본인의 어머니 명의로 다가구주택 한 동(18가구), 연립주택 39채를 매수했다. 이들 집 전세계약 대부분은 박씨를 안심시킨 공인중개사가 도맡았다고 한다.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이하늘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ㄱ씨는 2020년 11월 해당 다가구주택 한 동을 7억5000만원에 사들였는데 5억3800만원의 근저당이 잡혀있었다. 담보 여력은 2억100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ㄱ씨는 박씨와 전세계약을 체결하기 전 이미 4명의 임차인과 총 2억6500만원의 전세계약을 맺고 있었다. 박씨 계약 당시 이미 담보 여력을 넘어선 금액을 전세보증금으로 받고도, 박씨로부터 8500만원을 추가로 받았다는 뜻이다.

집마다 소유주가 다르고 등기가 따로 되어있는 다세대주택과 달리, 집주인이 1명인 다가구 주택 건물은 근저당 설정일과 각 세입자들의 확정일자에 따라 개별 세입자의 경매 배당 순위가 결정되는데, 세입자들이 서로의 확정일자를 확인하기가 까다롭다. 전세사기 피해가 다가구 주택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다. 박씨는 다가구 주택이 경매로 팔린다 해도 보증금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

집주인 ㄱ씨가 2021∼2022년 매수한 전주시 완산구 일대 연립 주택 39채도 문제가 많았다. 평균 매매대금은 2500만∼3500만원인데, 전세금은 7000만∼9000만원을 받았다. 이른바 ‘깡통주택’이었다. 이하늘 변호사는 “연립주택의 매수자금 출처는 다른 부동산 임차인의 보증금인 것으로 강력히 추정된다”며 “ㄱ씨 일당이 ‘돌려막기식’ 임대사업을 벌인 것”이라고 했다.

세입자 박아무개(30)씨가 임대인과 주고받은 문자. 박씨 제공

현재 ㄱ씨의 임차인 10여명이 모여 있는데, 올해 중반부터 차례로 전세계약이 만료되면 피해자는 더욱 늘 것으로 보인다. 이 변호사는 규모가 50~6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ㄱ씨는 보증금을 돌려달라는 세입자에게 ‘사업만 잘되면’, ‘전세시장이 좋아져 세입자가 구해지면’ 언제든 전세금을 돌려줄 수 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전주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 조짐이 포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모임이 만들어진 곳은 서울, 인천, 경기(수원), 대전, 대구, 부산, 제주 등이다. 전주에는 아직 피해자 모임조차 없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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