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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로 듣는 ‘애도’] 박경임
박경임씨는 엄마와 오빠를 자살로 잃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37년이 걸렸다. 그는 자신이 거친 ‘애도’의 여정을 에세이집 ‘슬픔은 발효 중’에 담아 출간했다. 정다빈 기자




“저는 자살 유가족이에요.”

이 말을 내뱉을 수 있게 되기까지 37년이 걸렸다. 박경임(49)씨는 엄마와 오빠를 자살로 잃었다. 엄마는 그의 나이 다섯 살 때, 오빠는 그로부터 20년 뒤에 생을 마감했다. 피붙이를 잃는 상실, 이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은 그의 인생도 바꿔놓았다. 그는 현재 ‘박경임애도상담연구소’ 소장이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땐 영문도 모른 채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아침 밥상 앞에서 엄마는 무언가를 싸서 입에 넣고는 쓰러져 버렸다. 그러니까 그는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유일한 가족이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저니까, 제가 경찰에게 증언을 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온 동네에 바로 소문이 난 거죠. ‘다섯 살 애가 그렇게 말을 잘했다더라’부터 온갖 얘기가 돌았어요. 어른들이 저를 볼 때마다 ‘아이고, 너희 엄마가 너 버리고 죽었다며’, ‘몹쓸 사람이야. 네 엄마가 너 버리고 죽은 거야’ 같은 말들을 했어요. 자살이란 단어의 뜻은 잘 몰랐지만, 상황은 짐작했죠.”

다른 어른들도 엄마의 죽음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의 오빠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그는 아예 주위에 얘기조차 하지 않았다.

“오빠까지 그렇게 죽었다고 하면 얼마나 더 많은 언어폭력에 시달릴까, 얼마나 더 많은 낙인이 찍힐까 두려웠죠. 제가 원래 잘 웃는 얼굴이어서 아마 주변 사람들도 제 안에 어떤 슬픔이 있는지는 잘 몰랐을 거예요. 말하지 않았으니까, 위로받을 수도 없었죠.”

자신이 자살 유가족임을 인정하고, 주위에 말하기 시작한 건 필리핀 라살대학교(De La salle University)에서 심리상담학으로 박사 과정을 밟을 때다. ‘인생의 첫 상실(죽음)’이 그날 강의의 주제였다.

“당신이 경험한 첫 죽음은 무엇인가요”, “그때 상황은 어땠나요”, “옆에 누가 있었나요”, “그때 감정은 어땠나요” 같은 질문들을 받곤 그는 오열했다.

“생각해 보니 그 긴 세월을 지내오면서 그런 질문을 처음 받아보더라고요. ‘상실 이후의 나’를 처음 떠올려본 거죠. 그 경험을 얘기하면서 제가 통곡을 했어요.”

자신의 내면에 지금껏 어디에도 표출하지 못한 슬픔이 마치 휴화산처럼 고여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엄마와 오빠의 죽음을 응시하게 된 계기다. 37년이나 미뤄놨던 애도의 여정에 접어든 거다. 그 길에서 만난 감정을 그는 지난해 12월 에세이집 ‘슬픔은 발효 중’(훈훈)에 담아 출간했다.

그는 ‘슬픔은 발효 중’을 자살 유가족에게 보내는 ‘애도의 초대장’이라고 표현했다. 정다빈 기자


“제가 경험한 이 치유와 회복을 다른 자살 유가족과 나누고 싶었어요. 이 책은 유가족들을 애도로 초대한다는 의미로 썼어요. 자살 유가족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 상실 이후의 삶에서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시면 좋겠다고요. 겨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봄이 오고 여름도 오고 가을도 오는 인생을 잘 살아가실 수 있다고.”

사회에도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자살은 사회적인 죽음이에요. 그러니까 사회 구조를 어떻게 바꿔 나가야 될지를 고민해야 하죠. 자살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위로와 돌봄이에요. 그런데 되레 유가족이 수치심과 죄책감에 짓눌려서 자기 일상을 살아가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져야 돼요.”

애도의 여정에서 그가 깨달은 진리는 이것. “슬픔은 흘러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자살 유가족이 말할 곳이 없어 말하지 못하면 슬픔이 흘러가질 못해요. 이 인터뷰로 슬픔이 흘러가면 좋겠어요.”

‘슬픔의 통로’를 자처한 박경임씨의 인터뷰는 ‘애도’ 오디오 페이지에서 들어볼 수 있다.

박경임씨가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 스튜디오에서 김지은(왼쪽)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편집자주

‘자살 사별자(Suicide Bereaved)’. 심리적으로 가까운 이를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자살 사별의 아픔이 비단 가족에게 국한되는 일이 아님을 내포한 말이기도 합니다. 자살은 원인을 단정할 수 없는 죽음이라 남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고인을 쉬이 떠나보내지 못하고 ‘왜’라는 질문이 맴돕니다. 죄책감이나 원망이 들어차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애도’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난한 여정입니다. 한국일보는 올해 자살 사별자들의 그 마음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자살 사별자들이 마음으로 쓰는 부고, 애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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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엄마와 오빠를 잃은 자살 유가족이에요” 털어놓자 일어난 일 [애도]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0311030005170)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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