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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포 쏘면 민간인까지 피해
정부, 안전 어떻게 지켜주려는지”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한 9일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 연합뉴스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그저 전쟁만 안 터지길 바라는 거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오명춘(62)씨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와초리에 사는 그는 “어차피 이 동네는 전쟁 나면 다 죽는다. 수십년간 이런저런 일을 겪고 보니, 지금 상황이 특별히 무섭거나 불안하지는 않다. 굳이 우리 상태를 말하라면 ‘자포자기’에 가깝다”고 했다. 그가 사는 연천읍 와초리는 남과 북이 ‘상호 심리전 중단’에 합의한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 전까지만 해도 하루의 시작과 끝을 대북·대남 스피커 방송과 함께했던 마을이다.

대통령실이 대북 심리전용 확성기를 철거한 지 6년 만에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기로 결정한 9일, 군사분계선과 가까운 경기도와 강원도의 접경지역은 오전부터 종일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확성기 방송 재개에 대한 우려는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일대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 사이에서 두드러졌다. 민통선 마을인 파주시 군내면 통일촌의 이완배 이장은 “낼모레면 콩 파종을 해야 하는데, 상황이 더 나빠져 기약 없이 대피소에 갇혀 지내게 되면 큰일이다. 때를 놓치면 1년 농사 다 망치게 된다”고 푸념했다.

확성기 방송 재개 뒤 외지인의 발길이 뜸해질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와초리 오명춘씨는 “몇년 새 체험 농장과 캠핑장에 오는 서울 사람들 덕분에 지역 경제에 활기가 돌았는데, 이분들은 북한 쪽에서 조금만 나쁜 뉴스가 나와도 발길을 끊는다. 확성기 방송 재개로 예약 취소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웃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비무장지대(DMZ) 관광객을 상대로 여행상품을 파는 파주미래 디엠제트 윤도영 대표는 “이곳에 사는 분들이야 이런 상황을 한두해 봐온 게 아니라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관광객들은 다르다. 굳이 디엠제트까지 돈 내고 관광 올 이유가 사라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군사적 충돌에 따른 직접 피해를 우려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포천시 신읍동에 사는 김영철(68)씨는 “북한이 스피커 방송하면 포를 쏴 불바다 만들겠다고 위협한 게 불과 몇년 전이다. 북한이 정말로 포를 쏘면 그 피해는 군뿐 아니라 접경지 민간인들에게까지 미칠 텐데 정부는 우리 안전을 어떻게 지켜주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탈북민단체들과 이들의 행동을 막지 않은 정부를 향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완배 통일촌 이장은 “자기들이 접경지역에 안 사니까 (탈북민단체들이) 그런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라며 “그걸 막지 않는 정부도 문제다. 민통선 근처에 사는 우리는 대체 무슨 죄가 있나? 한동안 조용하다가 왜 다시 방송을 틀겠다고 해서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이날 오전 10시30분 장호진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를 열어 “오늘 중 대북 확성기를 설치하고 방송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군은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대북 확성기 방송 훈련을 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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