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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까뮈 ‘이방인’과 호모필리의 역설

‘오늘 엄마가 죽었다. 혹시 어제였는지 모르겠다.’

알베트르 카뮈의 <이방인>은 남의 얘기하듯 무심해 보이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한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강렬한 의미를 담고 있다. 영국의 텔레그라프는 <이방인>을 ‘세계 문학사상 가장 빛나는 첫 문장을 가진 30선’에 포함했다.

<이방인>은 알제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 뫼르소의 이야기다. 3년 전 어머니를 양로원에 모신 뫼르소는 오늘 오전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전보를 받는다. ‘모친 별세, 장례식은 명일’이라는 양로원에서 보낸 짧은 전보에는 어머니의 사망일이 적혀 있지 않다. 뫼르소는 굳이 어머니가 언제 사망했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료=새움, yes24


양로원은 알제에서 80km떨어진 외곽에 있다. 버스로도 2시간 거리. 뫼르소에게는 이날은 그저 ‘몹시 더웠고, 길에 강렬하게 반사된 햇빛에 눈까지 부신 오후’다. 영안실에 도착해서도 뫼르소는 별다른 감정의 변화가 없다. 양로원에서 관에 모셔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볼 것이냐 묻지만 “뭐 굳이” 이런 반응이다. 어머니 관을 앞에 두고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고 카페오레를 마신다. 엄마를 향한 울음은 없다. 주변의 시선이 약간 의식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하룻밤 새고 난 뒤의 피곤함, 장례 치를 때의 무더위가 괴로울 뿐이다. 마치 타인의 장례를 지켜보듯 어머니 장례의 모든 절차가 끝났을 때 그는 마침내 침대에서 열두 시간을 푹 잘 수 있다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다음날 그는 곧바로 수영장에서 마리를 만나 희극영화를 보며 껄껄 웃고, 자신의 집에 가서 같이 잠을 잔다. 이튿날에도 항상 가던 셀레스트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한다. 그런 다음 집으로 돌아와 거리를 내다보며 평온한 하루를 보낸다.

뫼르소의 ‘이상한’ 행동

엄마를 막 떠나보낸 뫼르소의 이런 행동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일반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뫼르소는 그런 남자다. 같은 층 이웃인 살라마노 영감, 같은 층의 또 다른 이웃인 창고관리인 레몽은 동네 사람들이 이상하다며 멀리하지만, 뫼르소는 친한 이웃이자 친구로 대한다. 그들의 절친이 된다고 해서, 그들을 돕는다고 해서 자신이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뫼르소는 사람들의 시선, 사회적 규범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자료=픽사베이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고 어울리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쉽게 말해 끼리끼리 어울리는 성향인데 이를 호모필리(homophily:동종선호)라고 부른다. 1950년대 사회학자 폴 라자스펠드와 로버트 머튼이 명명한 용어다.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나 직업, 성향이 비슷할 수록 서로 친근감을 느끼게 되고, 상대적으로 더 많이 상호작용을 하며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예컨대 같은 고교, 같은 대학, 같은 직종, 같은 지역에 산다면 손쉽게 친밀감을 느끼고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네트워크는 제도화되고 내부 소통을 강화해 동질성은 더 커지게 된다.

문제는 호모필리가 때로 자신과 다른 이종을 배척하고 나아가 제거하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 인종이 다른 사람, 문화가 다른 사람은 번번이 비주류로 전락한다.

당신은 “이방인”

뫼르소의 평범했던 삶은 레몽의 친구 마송의 바닷가 별장에서 격변한다. 자신들을 미행한 아랍인 무리와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아랍인이 꺼내든 칼날에 반사된 태양 빛에 현기증을 느낀 뫼르소는 자신도 모르게 총을 꺼내 그를 쏜다. 쓰러진 아랍인의 몸에 네발을 더 쏜다. 그는 마침내 법정에 선다. 아랍인 살해죄다.

아랍인 살해사건은 그 자체로는 큰 형량이 부여되지 않는 사건이다. 하지만 사건을 조사하던 검사는 돌연 ‘아랍인 살해 사건’이 아니라 ‘모친 살해 사건’으로 바꿔 뫼르소를 기소한다. 모친사망 때 뫼르소가 한 행동은 도저히 정상적이지 않아서 검사의 눈에는 모친살해사건이 더 의심스러워 보였다. 한마디로 ‘계획 살인사건’이 아니냐는 것이다.

뫼르소는 사회의 프로토콜을 따르지 않는 낯선 사람, 이방인이다. 파리에서 일하면 너무 좋겠다는 사장의 제안에 “내 삶이 별로 달라질 건 없다”며 거부한다. 마리가 청혼을 할 때도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심드렁해 한다. 사형이 결정됐지만 항소를 포기하고, 부속 사제의 면담은 거부한다. 검사 앞에서도 아랍인 살해에 대해 속죄하는 모습이 없다. 예심판사 앞에서도 죄 앞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없다. 그는 아랍인을 쏜 이유에 대해 “태양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을 하지 못하는 소시오 패스에 불과한 것일까. 생뚱맞은 뫼르소를 접한 사람들은 저마다 그를 불쾌해한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통념에 맞지 않아도 너무 맞지 않기 때문이다.

판사는 판결을 내린다. 그는 사형이었다. 사회와 다른 관념을 가진 사람을 검사도 판사도 용서할 수 없었다.

자료=픽사베이


대부분의 사회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방인을 불편해한다.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세계에 순응하지 않는 자는 불쾌함을 넘어 때론 위험요소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위기감은 곧잘 소수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 성 소수자,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혐오 역시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카뮈는 미국판 서문에서 “이방인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엄마의 장례식 때 울지 안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에 놓인다’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책의 주인공이 규범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옳았다. 계속, 언제나.

사회적 관념이 다른 사람을 퇴출시키고 나면 사회는 더 안전해질까? 우리끼리 더 친해지고 더 소통할수록 사회는 오히려 더 분열되고 파편화될 수 있는데 이를 ‘호모필리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끼리끼리만 뭉치면 새로운 정보와 경험을 얻을 기회를 잃고, 조직은 폐쇄화 돼 소통이 더 어려워진다. 비슷한 생각과 의견만 내부적으로 계속 돌고 도는 ‘에코챔버 현상’이 강화되고, 듣고 싶은 소리만 전달되는 ‘필터버블 현상’도 심해질 수 있다. 이 결과 사회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지고 국수주의나 파시즘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진다.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상승장을 믿어 의심치 않던 2007년 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던 누리엘 루비니 교수의 말을 귀담아들었더라면 2008년 금융위기는 피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형을 언도받은 뫼르소는 항소를 포기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독백한다.

“나는 옳았고, 나는 계속 옳았고, 나는 언제나 옳았어.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저렇게도 살수도 있는 거야.”라고.

자료=픽사베이


쏠릴수록 리스크가 커진다는 것은 수학적 모델을 앞세운 금융공학에서 증명됐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로 표현되는 포트폴리오 이론에 따르면 아무리 안정적인 금융상품도 한 상품에만 투자가 몰리면 리스크가 커진다. 아무리 좋은 종목이 있더라도 분산투자를 권고하는 것은 이때문이다.

까뮈는 “삶의 부조리란 개인적 욕구와 사회적 현실의 불일치에서 오는 것이며 이러한 부조리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기본 조건”이라고 말했다. 삶의 부조리가 누적되면 결국 사회적 부조리로 확대된다. 까뮈의 말에서 문득 한국 사회가 직면한 초저출산 문제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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