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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25일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를 찾은 시민들이 중국으로 옮겨지는 판다 푸바오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국내에 불어닥친 푸바오 열풍은 펫 콘텐츠의 힘을 새삼 느끼게 해준 계기였다. 연합뉴스

동물들은 긴 시간 인류의 역사를 함께해오며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존재다. 그만큼 동물이 주인공인 동물 콘텐츠의 역사도 길다. 인류 최초의 그림이라 칭하는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에는 900개가 넘는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온라인 동영상 공유 플랫폼 유튜브의 첫 동영상은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 영상’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선사시대와 현대를 넘어 형식도 다르고 의미도 다른 두 콘텐츠. 지금의 우리는 ‘동물(펫) 콘텐츠’를 어떤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다 중국으로 떠난 아기 판다 ‘푸바오’ 열풍은 펫 콘텐츠의 힘을 새삼 느끼게 해준 계기였다. 한국에서 태어난 첫 판다로 유명해진 푸바오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출생부터 모든 일상이 생중계된 이른바 판다 버전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다. 2024년 2월 누적 조회수 5억 회를 넘기며 물만 마셔도 300만, 잠만 자도 500만이 나온다고 할 정도로 인기를 자랑했다. 푸바오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태어났다. 동물원 측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람객을 받을 수 없는 기간 동안 어쩔 수 없이 유튜브로 푸바오를 공개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큰 반응이 없었지만 아기 판다의 꾸밈없는 일상과 사육사와의 찰떡궁합에 ‘푸덕이’라 불리는 팬덤이 하나둘 생겨났다. 이들 팬덤을 통해 재생산된 다양한 콘텐츠들은 인터넷을 타고 퍼져나가며 푸바오는 일약 ‘국민 판다’로 거듭난다. 푸바오보다 몇십 년 전에 아기 판다의 위력을 몸소 느꼈던 일본의 조사에 따르면 아기 판다 한 마리가 주는 경제적 효과는 약 2400억원 정도다. 이제는 한국을 떠난 푸바오지만 여전히 다양한 굿즈나 이벤트, 도서 출간 등을 통해 드러나는 시들지 않는 영향력을 보면 영 근거 없는 수치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펫 콘텐츠가 가진 치유의 힘

이러한 푸바오 열풍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펫 콘텐츠가 가진 ‘치유의 힘’에 있다고 본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펫 비디오를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 수준이 낮아진다고 한다. 복슬복슬한 새끼 고양이와 개구쟁이 강아지들이 뒹구는 모습만 보더라도 뇌에서 도파민이 급증한다는 이야기다. 도파민은 알려진 대로 즐거움이나 보상에 관련된 호르몬으로 우리 몸에서 즐거움과 동기부여의 메커니즘에 큰 영향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이다.

거기에 더해 귀여운 펫 비디오의 시청이 일명 ‘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의 분비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옥시토신은 유대감이나 신뢰, 사랑의 감정과 관계되는 호르몬으로 사람들이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안정감을 얻을 때 주로 분비된다. 그 밖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를 낮추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이런 임상적 연구 결과만 보면 펫 비디오를 시청하는 것은 정신과 의사와 약속을 잡는 것보다 손쉬운 우울증 치료제다. 코로나19 시즌에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며 푸바오를 비롯한 펫 콘텐츠가 더욱 큰 사랑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에 갇혀 외로움을 겪는 이들에게 펫 영상들이 큰 치유가 됐기 때문이었다.

콘텐츠 효과적 측면에서 펫 콘텐츠가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펫 콘텐츠가 사람 사이의 단절된 소통을 증가시키고 공동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 형성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조금 과도한 해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려동물을 데리고 산책하다가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는 대목이다. 많은 사람이 소셜미디어에서 반려동물을 ‘프로필 사진’으로 내세우는 등 자신의 페르소나로 활용하는 현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동물이라는 ‘귀엽고 중립적인’ 매개체를 통해 자신의 일상, 취향, 심지어 가치관이나 정체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귀여운 동물 사진이나 비디오로 채우는 것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보는 사람들이 자신을 이들과 동일시해주기를 바라는 심리적인 바탕이 이런 행동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 사용자들의 45%가 펫에 관련된 콘텐츠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등록해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누구나 쉽고 맘 편하게 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는 가장 가까이 있는 소재가 바로 우리의 반려동물들이다.

무시 못할 동물 콘텐츠의 경제적 가치

이러한 펫 콘텐츠의 인기는 필연적으로 동물 스타들의 출현을 불러왔다. 미국의 ‘지프’라는 이름의 포메라니안 강아지는 거의 천만 명에 가까운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으며 기업에서 건당 4천만원 정도의 광고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날라 캣’이나 ‘더그 더 퍼그’ 같은 동물들도 포스팅당 2천만원 남짓한 광고료를 받는다. 이들 외에도 많은 ‘펫플루언서’라 불리는 동물 인플루언서들이 동물 브랜드 제품 판매, 광고 수수료, 기업 후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포메라니안 강아지 지프는 천만 명에 가까운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으며 건당 4천만원가량의 광고료를 받는다. 지프 인스타그램

이러한 펫플루언서들의 등장은 반려동물 시장인 ‘펫코노미'의 큰 성장세와 맞닿아 있다. 펫코노미는 반려동물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의미하는 신조어다. 국내 펫코노미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8조원에 달하고 있으며 농촌경제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매년 10%씩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단순히 반려동물의 의식주뿐만 아니라 동물 보험, 펫 호텔, 펫 용품 구독서비스, 펫 미용 등 신선한 아이디어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는 자식을 대신하거나 가족의 한 구성원이라는 느낌으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 즉 패밀리로 여긴다 해서 펫팸(Pet Fam) 문화라고 부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펫코노미의 성장에는 펫 콘텐츠의 역할이 크다고 보고 있다. 소셜미디어 등에 올라오는 펫 콘텐츠로 귀여운 동물들을 자주 접하면서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욕구가 증대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이 펫을 꾸며주는 것처럼 자신도 펫을 꾸며주는 경쟁심리나 새로운 정보의 확산이 필요와 수요를 창출하고 다양한 펫코노미 시장의 양적 질적 확대에 일조하고 있다고 본다. 펫코노미 관련 회사들이 펫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같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펫 콘텐츠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사 제품을 노출하고 관련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펫에 관심이 많은 핵심 고객층에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반려동물 문화를 위해

이렇게 늘어가는 펫코노미 시장 확대에 맞물려 펫 콘텐츠의 경제적 가치가 커지자 그에 따른 부작용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일명 '동물 구조 영상'으로 위장한 동물학대콘텐츠가 그 예다. 소셜미디어에서 동물 영상의 조회수가 높아지면서 동물들을 인위적인 위험 상황에 몰아넣은 뒤 이를 구조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식이다. 실제로 많은 수의 유명 펫플루언서들이 이런 구조 영상으로 유명해지고 ‘데뷔’를 했기에 이를 노린 ‘가짜 구조 영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가짜 연출 영상 외에도 다양한 동물 학대가 이뤄지고 있다. 큰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모 변경이나 장난을 치는 행위들도 사람 입장에서 보면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이런 행위가 반려동물에게 정서적인 학대가 될 수도 있다는 부분도 문제일 수 있다. 펫 콘텐츠가 재미를 우선시하다보면 동물들의 행복 추구와 다른 방향으로 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펫 콘텐츠의 부작용은 이뿐만 아니다. 일반인 사이에서도 특이한 애완동물 사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제3세계 지역에서 불법 동물 포획이 기승을 부리는 부작용도 발생한다. 과거에는 접하기 어려웠던 희귀동물을 키우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이른바 암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동남아시아 등 지역에서 밀렵꾼들이 각종 희귀동물을 포획해 유튜버들에게 비싼 돈을 받고 판매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일부 재미만을 추구하는 몰지각한 펫 콘텐츠로 인해 애완동물에 대한 잘못된 사육법이 유행하는 것도 우려되는 점이다. 전문 지식 없이 무분별하게 동물들을 사육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곧 반려동물 방치와 유기로 이어지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리나 인기만을 목적으로 생산된 펫 콘텐츠들이 동물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전파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매년 20%씩 증가하는 반려동물 유기 건수도 영상에서의 귀여움만 보고 사육의 현실적인 부분을 간과한 동물 콘텐츠의 인기가 불러온 어두운 면 중 하나다.

지난 22년 국내 반려동물의 인구가 전체 사람 인구의 30%를 넘었다고 한다. 이런 시점에 펫 콘텐츠가 가진 순기능과 역기능을 균형 있게 바라보고, 건전한 동물 문화를 조성해나가야 할 때다. 우리는 누구나 동물을 아끼고 사랑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반려동물 소유에 따르는 의무와 책임감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반려동물 문화를 정착시켜나가야 한다. 펫 콘텐츠는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행복과 즐거움 안겨주는 보물 같은 존재다. 이제 우리는 그 긍정적 순기능을 제대로 누리면서 동물 권리와 복지까지 지켜낼 수 있는 지혜로운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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