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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정명원의 사건 외곽의 풍경들

관할지에서 발견됐다는 보고
사람 뼈라면 사인·타살 밝혀야
2명의 유전자형·1950년대 물품
너무 오래돼 단서 없이 수사 종결
게티이미지뱅크

당직 검사가 보고서를 들고 들어온다. 주말에 좀 기이한 사건이 접수되었는데 지역에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동굴에서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 일부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사건은 동굴 탐험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새로 개척한 동굴을 탐험하는 과정에서 뼈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드러났다. 아니, 아직 사건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발견된 뼈는 사람의 정강이뼈처럼 생긴 것들이었으나 두개골이나 골반뼈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큰 동물의 뼈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아직 사람의 뼈라고 확정할 수는 없는 단계인 것이다. 당직 검사는 우선 발견된 뼈에 대한 분석 의뢰를 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사람 뼈가 아니기를…”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뼛조각들 옆에서 금속 재질의 램프 하나가 같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오래된 탐험 영화에서 본 적이 있을 법한 전통적인 모양의 램프인데 램프의 바닥에 ‘희망등’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래된 뼛조각과 희망등이라…. 이야기꾼 검사의 촉이 반짝 켜졌다.

뭘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희망처럼 램프 하나를 간신히 품고 동굴 속에 숨어들어야 했던 어떤 사람이 있었던 걸까? 사람의 형체도 흔적도 다 사라지고 희망등 하나가 남았다라…. 눈빛을 빛내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다 문득 옆을 보니 이 사건의 주임 검사가 곤란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부장님… 저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 뼈가 아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만….”

“아, 그렇지! 미안. 내가 잠시 신분을 망각하고 그만….”

비로소 정신을 차린 내가 서둘러 검사의 얼굴로 표정을 고쳐 쓰고 흥미를 감춘 채 사건 기록을 덮는다.

“그래 아직 무슨 뼈인지도 모르니까, 우선 분석 결과를 기다려봅시다.”

검사의 입장에서 오래된 백골 사체가 관할지에서 발견되는 일은 여러 어려운 일이 시작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일이다. 누군가 죽었고 백골이 된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면, 혹은 은닉되었다면 누가 어떻게 왜 죽었는지 밝혀야 할 것이며, 나아가 그의 죽음에 관여한 타인이 있는지 밝혀야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아주 오래전의 일일 것이므로 대부분 밝히기가 어렵다.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세상만사 중에 범죄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일을 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발견된 뼈가 어느 대형 동물의 뼈라는 분석 결과가 나와주는 것이 최선이다. 범죄와 관련된 아무런 의문도 의혹도 시작되지 않는 무탈한 나날을 검사는 기도한다.

그런가 하면 나는 이야기 애호가다. 등장인물들이 있고 갈등이 있어서 반응하고 조응하는 세계의 흐름에 흥미를 느낀다. 언젠가 전생에 나는 저잣거리에서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야기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관중의 마음을 추임새 하나로 쥐락펴락하는 최고의 이야기꾼이 되고 싶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해 이생에서도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인간. 그런 의미에서 검사란 제법 유리한 직업이다. 가만히 있어도 세상의 만사들이 기록으로 정리되어 검사 앞에 도착한다. 범죄는 삶의 전방위에 뻗어 있고 삶 속에는 언제나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다. 세상의 모든 스토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여다보는 일, 그것은 인생의 본질이 이야기의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에게 매우 매력적인 일이다.

실로, 검사가 되어 세상의 갖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검사가 되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을 만나고 검사가 되지 않았다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사람이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는지,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범죄 속에서 살아남는지, 범죄는 어떻게 드러나고 감추어지는지 그리고 또한 범죄 너머의 세상에는 무엇이 있는지…. 수많은 이야기가 내 안에 수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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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 2인의 최후

그런데 이상하게도, ‘당신이 본 많은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이야기해달라’는 요청 앞에서 나는 자주 말문이 막힌다. ‘천일야화’처럼 천날 밤을 지새우며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구체적인 이야기가 짚이지 않는다. 다른 말들은 또박또박 잘도 하면서 똑같은 질문 앞에 매번 답을 찾지 못하고 어버버하는 내 모습은 나조차도 낯설고 의아하다. 왜일까? 어떤 사건은 너무 무겁고 어떤 사건은 너무 슬프고 그렇지 않은 어떤 사건들은 또 그렇지 않은 어떤 이유들로 차마 이야기가 되어 나오지 못한다. 사건들은 하나같이 누군가의 아픔에 기대어 있다. 사건 속에는 누군가의 슬픔에 빚지지 않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그러므로 검사가 되어 온갖 범죄의 바닥을 헤집으며 세상의 오만가지 이야기를 모으면 최고의 이야기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애초에 틀렸다. 아무래도 전생에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에는 직업을 잘못 택했다는 사실을 이쯤 되어서야 겨우 깨닫는다.

그런데 어떤 사건, 이를테면 동굴에서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몇 조각의 뼈와 이름이 하필 ‘희망등’인 램프가 함께 발견된 사건 같은 것을 만나면 오래 잠들어 있던 이야기꾼 본능이 반짝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인생의 비밀이 담긴 오래된 이야기 상자를 열어보기 직전의 사람처럼 마른침을 꼴깍 삼킨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는 죽음의 비밀로부터 시작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는 밝혀지지 않은 죽음의 영역으로부터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렵고 흥미로운 것. 그것이 범죄거나 죽음이라 하더라도 어떤 스토리가 기어이 있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범죄와 죽음 앞에서도 무력한 인간이 품어보는 작은 희망등 같은 것이 아닐까.

그나저나 그래서 그 사건은 어떻게 되었냐고? 몇개월이 지나 받은 분석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동굴에서 발견된 뼈에서는 각각 다른 두명의 사람 유전자형이 확인되었다. 최소 두명 이상의 사람이 그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된 뼈가 신체의 극히 일부분인데다 오래되어서 사망의 원인이나 타살의 가능성을 확인할 단서는 찾지 못하였다. (…) 함께 발견된 희망등이라고 쓰인 램프는 우리나라에서 1950년대 초에 생산되어 사용되던 제품으로 확인된다.”

사람의 뼈이긴 하지만 더 이상 사건으로 수사할 의혹도 단서도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제 검사는 조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수사를 종결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이 두명이라는 말이지? 그들은 어떤 관계였을까? 50년대라면 전쟁을 피해 동굴에 숨은 걸까? 그들이 램프 하나에 담았을 희망이란 어떤 것일까? 수사가 끝난 지점에서도 어떤 이야기는 시작될 수 있다. 어떤 이야기를 읽을 것인지는 이제 당신 몫이다.

부산지검 부장검사

대한민국 검찰청의 귀퉁이에서 이끼처럼 자생하던 19년차 검사 정명원이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며 만난 세상과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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